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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법기관의 신뢰가 무너지고 있다. 검찰을 사칭한 보이스피싱이 폭발적으로 늘고 있다. 피해자는 매일 쏟아지지만 대응 체계는 여전히 상담 수준에 머물러 있다. 대검찰청의 ‘찐센터’가 진위를 확인해주는 창구로 기능하고 있지만 범죄의 속도는 그 확인 절차보다 훨씬 빠르다. 상담이 끝나는 순간, 피해자의 계좌는 비워지고 범인은 사라진다.
문제의 본질은 단순하지 않다. 수사기관의 속도는 느리고 시스템은 분절돼 있다. 찐센터에는 단 두 명의 수사관이 하루 200건이 넘는 신고를 처리하고 있다. 전담 수사관은 단 한 명뿐이다. 범죄 조직은 실존 검사 이름과 영장을 위조하고 전자송달 시스템까지 악용하는데 국가는 여전히 ‘전화 받아주는 창구’ 하나로 맞서고 있다. 이쯤 되면 대응이 아니라 방관이다.
보이스피싱은 더 이상 단순한 금융사기가 아니다. 국민의 공포와 사법기관의 권위를 이용하는 심리전이다. 검찰이나 법원을 사칭한다는 것은 곧 국가 신뢰를 정조준한 공격이다. 그럼에도 정부의 대응은 여전히 관료적이다.
‘검찰은 진위만 확인, 수사는 경찰, 피해금은 금융당국’이라는 칸막이식 구조 속에서 정보는 끊기고 범죄자는 그 틈을 파고든다. 시스템이 아니라 분업표가 범죄의 방패가 되고 있다.
올해 찐센터 상담 건수는 8개월 만에 5만 건을 돌파했다. 지난해보다 85% 급증했지만 인력은 그대로다. 범죄의 진화 속도와 대응 속도의 간극이 벌어지면서 공권력은 매번 뒤쫓기만 한다. 예방 중심이라는 구호는 현실에서는 이미 사후 보고로 변질됐다. 범죄는 하루가 다르게 발전하지만 대응 체계는 여전히 회의와 보고서에 갇혀 있다.
이제는 근본적인 전환이 필요하다. 보이스피싱은 초국가적이고 디지털화된 범죄다. 대응도 그것에 맞게 진화해야 한다. 검찰과 경찰, 금융당국, 통신사, IT보안기관을 하나의 데이터 네트워크로 묶는 통합 대응 체계가 시급하다.
피해 신고 즉시 의심 계좌를 동결하고 사칭된 검사 이름이나 위조 영장 정보가 실시간으로 공유돼야 한다. 찐센터가 단순한 상담 창구가 아니라 수사와 정보가 연결되는 허브로 재편되어야 한다.
사칭범은 공권력의 느림을 정확히 계산한다. 그들이 믿는 것은 기술이 아니라 시스템의 무력함이다. 오늘도 피해자는 “검찰에서 전화가 왔다”는 한마디에 인생을 잃고 국가는 “진위 확인 중”이라 답한다. 이 늦은 응답 속에서 국민의 신뢰는 서서히 무너진다.
범죄는 이미 기관 간 경계 밖에서 움직이고 있다. 그렇다면 공권력도 그 경계를 넘어야 한다. 지금처럼 각 기관이 자기 영역만 지키는 방식으로는 사칭범을 잡을 수도 국민을 보호할 수도 없다.
사법기관의 이름을 도용한 범죄는 단순한 전화사기가 아니라 국가 권위의 절도 행위다. 국민이 더 이상 검찰이라는 이름에 안심하지 못한다면 법치는 껍데기에 불과하다. 찐센터는 시작일 뿐이다. 진짜 필요한 것은 공권력의 통합된 속도다. 사칭범보다 느린 국가라면 그 누구의 신뢰도 받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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