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규나 연재소설 ‘최초의 당신’ [219] 새의 무덤에 꽃을 바치고

이 시간 주요기사

뉴스 > 연재소설

불꽃처럼 타오르는 피의 흔적

김규나 필진페이지 + 입력 2024-11-25 06:20:45

수십 대의 자전거가 일렬로 바람을 일으키며 지나갔다. 죽은 새를 발견하는 순간 움찔, 놀라는 것 같았지만 그들은 넘어지지 않았다. 맨 앞의 리더가 길을 열었고 뒤에 따르는 자들도 요령껏 피하고 안전하게 우회하며 자신들의 길을 향해 달렸다.

새들은 페루에 가서 죽는다던가. 비둘기는 그 먼 데까진 갈 시간이 없었던 것일까. 나는 새의 주검과 죽음을 피해 지나가는 사람들을 지켜보았다. 아무도 새의 죽음을 애도하지 않았다. 삶이 죽음보다 낫다는 증거가 없는 것처럼, 삶보다 나은 죽음이 가능한가에 대한 확신은 없었다. 죽은 새는 머잖아 자전거 바퀴에 밟힐 것이다. 살이 터지고 내장이 쏟아질 것이다. 아스팔트 위에서 흉하게 해체되고 분해되겠구나. 사람들이 눈살을 찌푸리겠지. 관리인 눈에 먼저 발견되면 쓰레기통에 버려지겠지만 그대로 남겨진다면, 납작해져서 아스팔트와 하나가 될 것이다.

나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자전거도, 인라인도, 산책하는 사람도 뜸한 사이, 잽싸게 달려가 길바닥에 누워 있는 새를 덥석 주워들었다. 도둑질하다가 들킨 사람처럼 누가 볼세라 새를 품에 꼭 끌어안았다. 차가운 촉감이었지만 새의 무게를 느끼는 순간, 나를 망설이게 했던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나 거리낌은 사라졌다. 대신 겨우 가라앉았던 나의 맥박이 높이 뛰어오르는 연어처럼 다시 팔딱거렸다. 나와 똑같은 리듬으로 새의 맥박이 뛰는 것만 같았다.

새를 가슴에 끌어안고 나무 밑으로 돌아왔다. 내 품에 안긴 새의 몸이 따뜻하게 느껴졌다. 딱딱하게 굳어 있던 감촉도 말랑해져서 눈을 감은 새는 노곤하게 잠든 듯 보였다. 하지만 새는 다시 날지 못할 것이다. 저 강을 바라보지 못할 것이다. 다시는 나뭇가지 위에 앉을 수 없고, 구구구 노래할 수 없으며, 사랑할 수도 없을 것이다.

새는 쓰레기통을 뒤져도 행복했을지 몰랐다. 살아서 하늘을 날 수만 있다면 허기와 치욕쯤은 견딜 수 있었을 것이다. 언젠가는 더 높이, 더 멀리 날아가는 꿈을 꿀 수만 있다면 시린 발을 동동거리며 잠 못 들던 겨울밤도 견딜 수 있었으리라. 그러나 새는 죽었다. 그 모든 기회와 가능성을 실현할 내일과 함께 죽. 었. 다.

나무 아래 꿇어앉아 새를 내려놓았다. 두리번거리고 더듬거리며, 모서리가 납작한 돌을 찾았다. 흙 삽 대신 돌을 손에 쥐고 땅을 팠다. 언 땅은 쉽게 몸을 열어 주지 않았다. 두 그루의 앙상한 벚나무 사이에 구덩이를 파고 새를 묻는 일은 생각보다 오래 걸렸다.

화닥화닥 열이 오르고 이마와 등줄기에 땀이 흐를 때까지 파고 또 팠다. 손가락마다 살이 까지고 피가 났지만 상관없었다. 이윽고 움푹 파인 구덩이에 새를 눕히고 깃털을 쓰다듬었다. 흙을 덮어 주고 들고양이가 파먹지 못하도록 멀찍이 있던 큰 돌을 옮겨와 단단히 올려놓았다. 그 위에 마른 풀을 한 포기 뽑아 꽃처럼 올려 주었다.

무덤을 파느라 너무 더웠다. 목도리를 풀어 바닥에 집어 던졌다. 몸이 뜨거웠다. 새의 무덤에서 솟구친 것 같은 불덩이가 내 발가락을 심지 삼아 심장까지 단번에 태울 기세였다.

[글 김규나 일러스트 임유이]

김규나 필진페이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