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문형의 만사만감(萬事萬感)] 하늘과 인간은 서로 돕는 존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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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문형 필진페이지 + 입력 2024-12-27 00:02:50

2024년이 며칠 남지 않았다. 모두 분주하다. 나라는 나라대로 회사는 회사대로 가정은 가정대로 개인은 개인대로 바쁘다. 후배나 제자·지인들의 궁금증을 풀어 주느라 나도 제법 시간을 쪼갰다. 내년 운세가 어떤지, 새로 만난 친구는 자신과 잘 맞는지, 사업 파트너는 어떤 성격의 사람인지, 이런저런 질문이 날아들었다. 조용한 주말이 되자 문득 나의 운세가 궁금해졌다. ‘나의 2025년은 어떨까?’ 한가한 틈을 내어 공부해 보아야겠다고 생각했다.

우리가 살면서 가장 궁금한 것은 ‘사람을 아는 것’이다. 그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 내가 어떤 사람인가를 생각해도 잘 모르겠는데 남을 어찌 알 수 있을까. 상대가 좋은 사람인지 나쁜 사람인지는 그저 나에게 친절한지 혹은 해를 끼치는지의 문제와, 나에게 솔직한지 아니면 숨기는 게 있는지 정도일 것이다. 공자님도 앎의 주요 대상은 ‘사람’이라고 했다. 사람을 알고 사람에게 제대로 대하는 일이 유학의 기본 가르침의 대부분을 점하고 있다. 지금으로 치면 인간 과학, 즉 인문학에 해당한다.

하지만 호기심 많은 우리는 살면서 겪는 불가사의한 일들을 상기하고는 의문을 떨치지 못한다. 왜 하필 그때 그런 큰 사고가 일어났는지. 왜 잠깐의 실수로 큰 일을 그르쳤는지. 의문은 꼬리를 문다. 사람들은 점집이나 역술인을 찾기도 한다. 이미 일어난 일이 문제가 되어 그 일의 향방을 알고 싶어 한다. 인간계에서 일어난 일을 신령계의 힘을 빌어 해결하려는 것이다.

공자 제자들도 비슷했다. 그들도 스승께 죽은 후의 앎을 물었다. 하지만 공자는 스승의 입장에서 합리적인 이유를 들어 그러한 호기심에 대응했다. 사후의 일(신령계)에 관심을 두기 전에 현세의 일(인간계)에 집중하라고 일렀다. 공자는 신령계를 인간계의 일상과 분리해 주변화했다.

인간과 인간 행위의 의미는 인지(人智)를 통해 본성과 도덕을 탐구하는 일이다. 이때의 바른 자세는 ‘귀신을 공경하면서 동시에 멀리하는’ 것이다. 그런 공자 또한 ‘지천(知天)’, 즉 하늘을 아는 일에도 관심이 있었다. “귀신에게 물어 의심을 없애는 것은 하늘을 아는 지식이다”고 함으로써 귀신에게서 신지(神智)를 빌릴 수 있는 틈을 열어 두었다.

따라서 ‘지천’이란 ‘귀신을 공경스럽게 가까이 모시는 것’을 의미한다. 지천은 인간의 지식인 인지로 알 수 없는 영역이므로 신을 멀리하는 것이 아니라 가까이 모시고는 신에게 묻고 물음에 대한 답을 구한다. 즉 인간이 살아가는 올바른 태도와 방식은 인간이 힘쓰면 충분히 얻을 수 있는 지인(知人)과 지물(知物)은 스스로 구하되 하늘의 명인 천명과 운명은 인지로 구하지 않는 것이다.

소크라테스 또한 인지로 알 수 있는 일들까지 신에게 묻고 점치는 사람들을 미망에 빠진 불경한 자들이라고 비판하면서, 우리가 배울 수 있다고 여기는 일에 관해서는 스스로 알아내야 한다고 했다. 또한 그는 인간에게 분명하지 않은 일의 경우는 점을 쳐서 신에게서 배우려 해야 한다고도 했다.

존 로크의 경우도 인간이 알 수 있는 일에서조차 ‘본질적 계시’인 인간의 이성을 도외시하고 신적 계시에만 호소하는 일의 부작용을 거론했다. 그렇게 되면 이성과 계시 둘을 다 잃어버린다는 것이다. 따라서 인간이 인식 가능한 일에서는 이성을 우선적으로 활용함으로써 이성과 신의 계시 둘 다를 확보하라고 했다.

뒤숭숭한 한 해를 보내며 인지와 신지 사이에서 방황하는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 다행히도 동양의 지혜 속에는 소리도 없고 냄새도 없는 무형의 존재인 ‘하늘’이 있다. 이 하늘은 밝고도 밝게 땅을 비추어 준다. 동양의 역사서인 ‘서경’에는 이런 말이 있다. “하늘은 눈과 귀가 밝다. 성군은 이를 본받는다. 신하들은 흠모하여 따르고 백성은 순종하니 편안하다.”

‘중용’의 유명한 구절을 보자. “오직 하늘과 땅만이 지성스러워 그 본성을 다할 수 있게 한다. 천지의 본성을 다할 수 있다면 사람의 본성도 다할 수 있다. 사람의 본성을 다할 수 있다면 사물(동식물과 무생물)의 본성도 다 할 수 있다. 사물의 본성을 다할 수 있으면 하늘과 땅(천지)의 화육(化育)을 도울 수 있고, 하늘과 땅의 화육을 도울 수 있다면 천지와 더불어 (천지의 일에) 참여할 수 있다.”

하늘과 인간은 서로 공감하면서 서로 돕는 존재다. 하늘과 신이 인간을 돕기도 하지만 인간 또한 신성한 덕행으로 신과 교감하면서 하늘을 돕는다. 그토록 인간은 거룩한 존재다. 우리 스스로 어떤 존재인지를 잘 알고 마음속의 본성인 덕성에 귀 기울여 잘 키워 낸다면 크게 두려울 일도 크게 궁금할 일도 없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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