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정근의 경제포커스] 삼성의 ‘잃어버린 9년’… 기업 족쇄 풀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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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당초 검찰의 무리한 기소라는 평가였던 사건
“중요한 시기에 최고경영자의 부재 뼈아팠다”

오정근 필진페이지 + 입력 2025-02-10 00:02:59

삼성 이재용 회장의 발목을 잡았던 9년간의 사법리스크가 항소심 무죄 선고로 거의 해소되었다. 서울고등법원은 2015년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 과정에서의 부당 합병·회계 부정 혐의로 기소된 이재용 회장과 경영진 13명에게 지난해 1심에 이어 검찰이 주장한 19개 혐의 모두를 인정하지 않고 무죄를 선고했다.

이 회장은 2016년 말 박근혜정부 국정농단 사건 관련 뇌물공여 혐의로 기소돼 560일간 구속 수감됐다. 박근혜 전 대통령과 그의 측근 최순실(개명 후 최서원) 측에 총 86억8000만 원의 뇌물을 제공하고 경영권 승계와 관련된 부정한 청탁을 했다는 혐의였다. 이 회장은 2017년 구속되어 560일간 수감됐다. 2년 6개월의 실형이 선고됐다가 2021년 8월에 가석방된 것이다.

검찰은 삼성물산의 합병 건을 문제로 봤다. 참여연대와 금융위원회 산하 증권선물위원회의 고발로 검찰은 2018년 수사에 착수했고, 2020년 9월 이 회장과 전·현직 임직원 11명을 재판에 넘겼다. 검찰은 삼성전자 등 10개 계열사를 37회, 임직원 주거지 등을 13회 압수수색했고 300여 명에 대해 860여 차례 소환 조사를 진행했다. 기소 이후 1심 선고까지는 3년 5개월이 걸렸다.

2020년 검찰 기소의 적정성을 따지는 대검찰청 수사심의위원회가 수사를 중단하라는 결정을 내렸으나 검찰은 무시했다. 이 회장은 2020년 9월1일 불구속 기소된 후 총 113차례(1심 107회·2심 6회) 열렸던 재판에서 대통령 해외순방 동행 일정 등이 있었던 11번만 빼고 모두 출석했다. 재판에 넘겨진 4년 5개월의 기간 동안 매달 두 번꼴로 법정에 출석한 셈이다. 공판기일을 앞두고는 증거 대응이나 심문 등을 위한 준비가 필요해 회사 경영에 완전히 집중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우려가 제기되었다.

이번 2심 재판에서도 이 회장에게 징역 5년을 구형했던 검찰이 무죄 판결에 불복해 7일 대법원에 상고했다. 하지만 하급심의 법리상 해석이 잘못되지 않았다면 무죄로 매듭을 짓게 된다. 재계 관계자는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로 촉발된 9년간의 법적 리스크가 마무리되는 상황”이라고 평가했다. 수사심의위원회의 결론처럼 애당초 무리한 기소라는 평가가 많았다. 특히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으로 탄생한 삼성바이오로직스는 한국 바이오산업을 신성장동력 산업으로 키워 냈다.

삼성이 어떤 기업인가. 특히 반도체가 산업의 핵심이 되고 있는 상황에서 대한민국에서 삼성을 빼놓고는 경제를 논하기 힘들다는 얘기가 나올 정도다. 기업분석전문 한국CXO연구소에 따르면 2023년 기준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이끄는 삼성그룹은 그룹 전체 매출 규모 358조9158억 원·당기순익 43조5071억 원·국내 전체 고용 인원 27만8284명으로 모든 항목에서 최고 자리를 지킨 것으로 조사됐다. 2위인 정의선 회장의 현대차그룹은 매출 285조2336억 원·당기순익 20조5149억 원·고용 19만7727명으로 삼성이 큰 차이로 앞서고 있다.

정부는 글로벌 반도체 패권 경쟁에서 반도체산업 생태계를 근본적으로 혁신해 대한민국이 주도권을 잡기 위해 총 480조 원 규모의 용인 반도체 메가클러스터를 건설을 핵심 전략으로 추진하고 있다. 대한민국 반도체산업의 미래가 걸린 이 국가적 프로젝트에는 삼성전자가 360조 원·SK하이닉스가 120조 원을 투자한다. 한 마디로 삼성전자는 대한민국 반도체산업의 미래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이 회장이 지난 9년 동안 경영에 집중할 수 없었던 파장이 작지 않다. 인공지능(AI) 시대가 급속히 도래하면서 경쟁사인 대만 TSMC는 날아다니는데 삼성전자는 SK하이닉스에 밀리는 신세가 되고 있고, 메모리 반도체 영업이익에서도 삼성전자는 SK하이닉스에 추월당했다. 주식도 2021년 500조 원이었던 시가총액이 현재 300조 원으로 쪼그라들었다. 재계는 “경영적으로 중요한 시기에 최고경영자의 부재가 뼈아팠다”고 진단한다.

삼성은 2017년 미국 오디오 전문기업 하만을 인수합병한 후 이렇다 할 기술기업의 인수합병도 없이 사실상 기술 도입도 중단되다시피 했다. 급물살을 타는 글로벌 정치·경제 지형을 보면 삼성의 9년 사법리스크는 더 안타까운 측면이 크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재집권으로 미국의 자국 반도체 산업 보호망이 한층 더 공고해질 전망이다. 설상가상으로 중국의 딥시크가 챗GPT에 버금가는 인공지능을 선보이면서 미·중 간 AI 패권 경쟁은 가열되고 있다. 삼성의 잃어버린 9년은 글로벌 반도체 질서 재편 과정에서 속절없이 초격차 추락을 감내해야 하는 시간이었다.

삼성은 재도약의 발판 마련이 시급한 상황이다. 과감한 신기술 투자로 신사업 발굴에 전력 질주해 가열되고 있는 반도체 기술 패권 전쟁에서 경쟁력을 빠르게 회복해야 한다. 기업이 양질의 일자리를 창출하지 않으면 대한민국의 미래가 없다. 이번 일을 교훈으로 기업 투자를 옥죄고 있는 족쇄들을 과감하게 풀어 주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