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지러운 요즘 세상, 그래도 지난 2·3년 새 국민 마음에 새겨진 멋진 이름이 있다. 과학자 김재관(1933~2017) 박사가 그분이다. 김재관 하면 “처음 듣는데, 누구지?”라고 묻던 이들도 이젠 “아, 그분”이라고 답한다. 주로 과학자의 세계에서 회자되던 그가 개발연대 대한민국 산업화의 숨은 일꾼이자 과학 영웅의 한 명으로 우뚝 섰다는 얘기다.
그걸 상징하는 게 지난해 가을 김재관 박사의 국립현충원 안장이다. 김재관 추모 열기를 윤석열정부가 선제적으로 받아들인 결정이었다. 이례적이었다. 국립현충원에는 본래 국가에 헌신한 군인·경찰 등이 주로 묻히지만, 정부는 과학기술자 중 일곱 번째로 김재관 박사를 모셨다. 이런 변화는 3년 전에 출간된 평전 ‘뮌헨에서 시작된 대한민국의 기적’(홍하상 지음·백년동안)이 기폭제가 되었다.
‘한국 산업화의 설계자 김재관’이란 부제대로 그 책은 왜 김재관인가를 설득력 있게 보여줬다. 지구촌 최빈국이 여기까지 온 건 거저가 아니었으며, 김재관 같은 숨은 영웅이 철강·조선·자동차·방산 등 중화학공업 전반에 걸쳐 어떤 창의적 역할을 했는지를 설명했다. 직후 김재관기념사업회(이사장 김명자)도 출현했지만, 요즘 그는 젊은층에 ‘K방산의 아버지’로 널리 알려졌다.
K방산은 1972년 박격포·수류탄·로켓포를 만드는 1차 번개사업과 그 뒤 2차 번개사업을 김재관이 성공시키며 시작됐다. 조선산업·자동차산업 태동도 그의 머리에서 나온 아이디어에 의한 것이었다. 완성차 사업이야말로 미래의 먹거리라며 그가 박정희 대통령과 정세영 현대자동차 회장을 설득했기에 자동차산업 강국 대한민국이 출현했다. 즉 첫 한국 고유모델 승용차인 포니도 김재관에게서 비롯된 셈이다.
결정적으로 종합제철의 꿈도 그가 꿨다. ‘포스코(포항제철) 신화’를 상징하는 박태준의 뒤에는 김재관이 있었다는 얘기다. 박태준, 엄청 중요한 인물이 맞지만 전체적으로 보아 그의 역할은 현장소장이었다. 행정 역량을 뒷받침했던 당시 김학렬 부총리가 사장이었으며, 오너는 당연히 박정희 대통령이다. 김재관은 뭐지? 종합제철의 꿈을 박정희에게 심어 준 주인공이다. 당시 박정희도 철강의 중요성을 알았으나 여러 가지 이유로 포기 직전이었다.
그런 상황에서 유학생 출신의 청년이 1964년 독일을 방문했던 박정희의 가슴에 불을 당긴 것이다. 유명한 그 스토리야말로 현대사의 명장면이고 영화감이다. 당시 파독 간호사·광부를 만나 눈물을 줄줄 흘리던 박정희를 만나 갓 서른한 살 청년 김재관이 철강산업 육성 방안을 제시한 역사적 장면이다. 왜 명장면인가? 꿈이 컸던 정치 지도자와 젊은 과학도의 첫 만남에서 불꽃이 튀었고, 이후 대한민국은 농업국가에서 산업국가로 완전히 바뀌었다.
그 가슴 뛰는 스토리는 3년 뒤 박정희가 김재관을 제1호 해외 유치 과학자로 불러들이면서 현실로 이어졌고, 그게 끝내 제조업 강국 대한민국의 탄생을 가져왔다. 또 하나 잊을 수 없는 건 김 박사가 표준연구소장으로 있으면서 국가표준의 확립에 진력한 점이다. 산업 발전의 기초가 표준이라는 것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삼성전자가 나노미터급 낸드플래시 메모리 분야의 최강자로 군림하는 것도, 자동차·조선·철강산업의 막강 경쟁력도 한국표준과학원의 뒷받침 덕분이다.
실은 2년 전 스카이데일리 지면에서 나는 김재관 이야기의 보따리를 푼 적이 있다. 오늘 다시 김재관을 언급하는 건 오는 19일 멋진 행사 때문이다. 그의 고향인 경기도 화성시에서 첫 김재관 공적비를 건립한다.

화성 남양도서관이 공적비가 놓이는 자리다. 그 행사는 과학 영웅 김재관의 이름이 더 깊이, 굳게 뿌리내리는 계기가 될 것임은 물론이다. 이미 전국적 인물로 뜬 마당에 그를 고향에서 떠받드는 건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이다. 그런데 이게 새삼 멋진 건 경기도 화성은 김재관 기념사업과 별도로 작곡가 홍난파(1897~1941)를 화성이 낳은 인재로 띄우고 있기 때문이다. 더욱이 그걸 민간 부문이 주도한다.
화성 지킴이로 유명한 송호·지학장학재단의 정희준(88) 이사장이 주역이다. 그는 “화성이 공업도시를 넘어서려면 올바른 현대사를 품어야 한다”는 소신을 가지고 있다. 화성이 낳은 인물 홍난파·김재관 추모사업은 위력있는 문화사업의 카드가 맞다. 단 이왕 시작했다면 보다 파급력 있는 방안도 검토하기 바란다. 공적비와 함께 추후 동상 건립도 검토해 보자. 그리고 화성의 큰 도로를 각각 ‘홍난파로’ ‘김재관로’로 명명하는 방안도 파급력이 클 것이다.
하지만 김재관을 더 띄우려면 이 나라 지식사회의 인식 변화가 절실하다. 이를 테면 최근에 뜬 조선시대 과학자 장영실은 빛과 그늘이 함께 있는 인물이다. 100년 전만 해도 장영실을 조선시대 과학자라고 말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조선시대 과학자를 든다면 이순지·이천·정인지 등 천문학을 필두로 자연영역을 탐구한 학자들이 있을 뿐 장영실을 영화·TV드라마로 띄우는 건 절반 이상이 허구다.
그에 비하면 김재관은 실체가 분명하고 우리 동시대의 과학자로 손색없다. 오해 말라. 그를 띄운다고 개발연대의 스타인 최형섭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 초대 연구소장이나 한국중화학공업의 건설자 오원철이 빛바래는 건 아니다. 단 그들이 행정가·기술 관료(테크노크라트)인데 비해 김재관은 순수 과학자다. 그런 김재관이 개발연대의 과학자·국민 영웅으로 떴지만 한 걸음 더 나가자. 차제에 그를 국가 상징 인물로 키워 낼 때 대한민국이 더욱 크게 발전한다. 우린 아직 갈 길이 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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