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중국은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가 벌인 관세전쟁에 맞서 빠르게 ‘보복 카드’를 내놓으며 맞대응 중이다. 이런 태도엔 트럼프 1기 행정부 때 이래의 무역전쟁 경험을 바탕으로 키워 온 자신감이 깔려 있다고 분석된다. 동남아3국 순방을 앞둔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14일 베트남 노동당 기관지 인민보 기고문에서 “무역전쟁과 관세전쟁에 승자 없고 보호주의엔 출구 없다”는 논지를 내세워 미국을 겨냥해 공격의 목소리를 높였다.
2∼3월 미국이 두 차례 걸쳐 총 20% 보편관세를 부과했을 때만 해도 중국은 특정 품목이나 기업을 노린 ‘표적 보복’에 집중하며 전면전 확전을 자제했다. 하지만 이달 초 트럼프 행정부가 중국에 34% 관세를 추가로 물리자 중국은 곧바로 34% 보편 관세를 추가 부과하는 것으로 받아쳤다. 맞불 관세를 주고받으면서 중국의 대미 관세율은 12일부터 125%로 높아졌다. 중국에 매긴 누적 관세율 145% 재산정 소식이 나온 바로 다음날이었다.
또 중국은 트럼프2기 행정부와의 관세전쟁 시작 이후 미국 기업 수십 곳을 제재했으며 2월엔 희소금속 5대 원료 관련 제품 25종, 이달 초 희토류 7종에 대한 수출통제 조치를 내렸다. 이밖에 미국 여행 및 유학 자제령, 미국영화 수입 축소 등 비관세 조치에도 나섰다. 중국 지도부와 당국이 미국을 향해 발신한 메시지의 어조 역시 강경해졌다.
시 주석은 11일 중국을 방문한 페드로 산체스 스페인 총리와의 정상회담에서 “세계와 대립하면 스스로를 고립시키게 될 것”이라며 중국과 유럽이 “일방적 괴롭힘을 함께 막아내야 한다”고 말했다. 이날 시 주석이 미국과의 관세전쟁을 직접 비판한 것은 트럼프2기 들어 현 상황 발발 이후 처음이었다. 지난달 28일 글로벌 최고경영자(CEO)들과의 회동 때 시 주석은 “남의 길 가로막기란 결국 자기 길을 막는 것이다. 다른 사람의 불빛을 꺼뜨림으로써 자신의 불빛이 밝아지진 않는다” 등 비유적 표현을 구사하기도 했다.
중국 상무부는 10일 정례 브리핑에서 “대화하고자 하면 문을 열어 놓겠지만 싸우겠다면 끝까지 가겠다”고 선언한 상태다. 외교수장인 왕이 중국공산당 중앙외사판공실 주임(외교부장 겸임)도 이달 들어 “미국이 위협을 가한다면 반드시 단호히 반격할 것” 등 경고 발언을 내놓았다. 트럼프1기 당시 갑작스러운 미·중 무역전쟁 선포로 놀라 허둥지둥 끌려가는 듯하던 것과 상당히 달라진 모습이다.
그 배경으로 우선 중국의 수출시장 상황 변화가 꼽힌다. 중국은 트럼프1기 무역전쟁 이후 대외무역 포트폴리오를 상당 부분 다변화해 대미 의존도를 줄였다. 이게 이번 무역전쟁에서 큰 이점으로 작용할 것이라는 분석이다. 대외경제정책연구원의 작년 보고서에 따르면 중국의 전체 수출액에서 대미 수출이 차지하는 비중은 2018년 19.2%에서 2023년 14.8%로 하락했다. 주요국 가운데 가장 큰 하락 폭이다. 반면 베트남·말레이시아·싱가포르 등 대(對)아세안 수출 비중이 최근 5년간 12.9%에서 15.7%로 상승했다. 미국은 여전히 중국의 최대 수출국이지만 대미 수출의 전체 국내총생산(GDP) 내 비중이 트럼프1기를 거치며 3%대에서 2%대로 낮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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