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문형의 만사만감(萬事萬感)] ‘영원의 도시’ 로마와 K기초자치단체 학술 한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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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 고대 로마 연구 부활로 지역학 연구 본격화
영영학, 특정 지역 모든 면을 종합적으로 연구하는 학문

최문형 필진페이지 + 입력 2025-03-28 00:02:50

1380년에 이탈리아 토스카나 지역의 테라누오바에서 태어난 포조 브라촐리니는 교황청의 서기로 일한 인물이다. 로마 교황 니콜라오 5세는 로마를 기독교 세계의 중심으로 만들기 위해 고대 로마 연구를 장려했다. 교황은 바티칸 도서관을 설립하여 로마사 연구의 기초를 닦았다. 이탈리아에서는 고대 로마 연구가 다시 부활하면서 본격적인 지역학 연구가 시작되었는데, 주로 고전 문헌과 유적 연구를 중심으로 이루어졌다.

당시 ‘영원의 도시’ 로마 문화에 크게 기여한 사람이 바로 포조 브라촐리니였다. 그는 고문서학자이기도 했다. 포조는 중세 수도원의 도서관에서 방치된 고전 문헌들을 직접 찾아내고 복사하여 보존하는 일을 했다. 당시 인쇄 기술이 없었기 때문에 많은 고전 문헌들은 수도원의 필사본 형태로 보관되다가 점차 사라지고 있었다. 그는 단순한 학자가 아니라 ‘문헌 탐험가’였다.

포조는 유럽 전역의 수도원과 도서관을 탐사하며 고대 로마와 그리스 문헌을 발견하고 복원했는데, 특히 라틴 문학과 철학을 르네상스 시대에 부활시키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그의 노력 덕분에 많은 고전 텍스트들이 빛을 보게 되었고, 르네상스 인문주의의 발전에도 큰 영향을 주었다. 그는 1415년부터 독일·프랑스·스위스 등의 수도원을 방문하여 라틴 문헌을 조사하기 시작했다. 수도사들이 관심을 두지 않은 탓에 소중한 문헌들이 먼지에 덮여 있거나 방치되어 있었다. 그는 발굴한 문헌을 직접 필사하거나 교황청 서기들에게 복사하도록 지시했다. 그리고 중요한 일부 문헌은 번역하여 유럽 학자들에게 배포했다.

그가 발굴한 대표적인 고대 로마 문헌으로 루크레티우스의 ‘사물의 본성에 관하여(De Rerum Natura)’와 키케로의 ‘연설집(Orationes)’이 있다. ‘사물의 본성에 관하여’는 원자론과 자연철학을 설명한 서사시로서 에피쿠로스의 원자론을 바탕으로 하여 우주와 자연에 대한 철학적 설명을 담고 있다.

신이 세상을 창조한 것이 아니라 원자들이 결합하고 흩어지면서 모든 것이 형성된다는 개념을 제시했다. 이 저서는 신학 중심의 세계관을 넘어 과학적 사고를 촉진했다. 이 책의 발굴은 과학적 사고와 합리주의에 큰 영향을 주었다. 포조가 이 책을 찾아내서 복사하지 않았다면 원자론에 대한 이해는 르네상스 시대까지 이어지지 못했을 것이다.

키케로의 ‘연설집’은 웅변술과 철학의 대표 문헌이다. 키케로는 로마 공화정 시대 가장 위대한 웅변가이자 철학자로 평가받는 인물이다. 키케로의 문장이 발굴되어 중세 라틴어 대신 고전 라틴어 사용이 확대되고 라틴어 문체 개선이 이루어졌다. 르네상스 인문주의자들은 그의 연구를 바탕으로 고전 라틴어를 복원하고 학문적으로 활용하기 시작했다. 포조가 키케로의 여러 연설과 철학 서적을 발견하여 보급함으로써, 르네상스 인문주의자들은 키케로의 문체와 논리를 본받아 정치·철학 논문을 집필할 수 있었다. 키케로 연구는 공화정 이론과 근대 민주주의 이론 발전에 기여했다.

포조 브라촐리니의 영향력은 매우 컸다. 그의 문헌 발굴 덕분에 르네상스 시대 인문주의가 꽃필 수 있었다. 즉 잊혀진 고대 사상이 르네상스 시대에 부활했고, 인문주의 학풍이 확산되어 피렌체·로마·파리 등에서 고전 연구 붐이 조성되면서 철학·과학·문학·정치학이 발전했다.

19세기 이래 로마는 근대 역사학과 지역학을 정립했다. 근대 역사학이 확립되면서 로마 연구도 학문적으로 체계화되었다. 이 시기부터 로마 연구는 단순한 역사 서술을 넘어 지역학적 접근을 포함하게 되었다. 테오도어 몸젠은 ‘로마사’를 집필하여 로마 연구의 기초를 마련하고 로마 법과 행정 연구를 통해 유럽 법제도 발전에 기여했으며, 크리스티안 후센은 고대 로마 유적과 지리 연구를 통해 도시 역사를 발전시켰다.

이탈리아 정부와 연구 기관도 적극적이었다. 1870년 로마가 이탈리아 왕국의 수도가 된 후 로마를 체계적으로 연구하는 기관이 설립되었다. 로마 국립 고고학 연구소·이탈리아 역사 연구소 등이다.

현대에 들어서는 학제 간 연구와 글로벌 로마 연구가 한창이다. 지역학·역사학·고고학·문화 연구 등 다양한 학문이 융합된 형태로 진행되고 있으며, 특히 글로벌 연구 기관과 협력하면서 로마 지역학은 세계적으로 확장되었다. 바티칸 도서관 및 로마 사피엔자 대학교는 고대 로마사뿐만 아니라 로마와 관련된 종교·문화·법학 연구에 열심이다.

얼마 전 경북 영덕 지역에서 영영학(盈寧學·영덕군으로 합쳐지기 전 조선시대 영해도호부와 영덕현의 머릿글자를 딴 명칭)연구소 주관 ‘영영문헌총집’ 편찬 사무실 개소식이 있었다. 이 사업은 대한민국 기초자치단체로는 최초의 일이라 의미가 크다. 대중문화로부터 시작된 한류 열풍이 지구촌을 달구는 가운데, 그 안에 담긴 정신과 가치관을 찾아내는 학술 한류의 중요성과 필요성이 절실하다. 고려시대 이 지역의 명칭이 예주(禮州)였다고 한다. 거리에선 지금도 예주란 명칭이 친숙하게 사용되고 있었다. 예(禮)와 선비의 고향에서 출범한 지역학으로서의 ‘영영학’이 학술 한류의 발전에 크게 기여하리라 본다. 영영학은 영덕 지역의 정치·경제·역사·사회·문화 등 모든 면을 종합적으로 연구하는 학문을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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