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가 진보한다고 믿는 지식인들은 인간 사회의 무결성을 꿈꾼다. 숱한 시행착오를 거치고서도 여전히 그런 결정론적 사고에 머물러 있는 것을 보면 참 딱하다는 생각이 든다.
“정치란 선악의 투쟁이 아니라, 차악과 최악 사이의 선택”이라고들 한다. 하지만 레몽 아롱의 훈수는 내란 세력 발본색원을 외치는 자들에게 그다지 설득력 있어 보이진 않는다.
초법적인 일들이 난무하고 이해할 수 없는 인사(人事)가 거리낌 없이 자행되어도 우리 지식인들의 침묵은 여전하다. 이미 한배를 탄 족속들인지는 모르겠으나 랭보의 싯귀를 연상케 하는 그들만의 찌질 연대를 예상 못 했던 바는 아니다.
우리 사회의 지식인들을 보면 2차 세계대전 직후 프랑스의 못난 꼴을 보는 것 같다. 행동하는 지식인, 참여하는 지식인이라는 시건방은 살롱 혁명가들을 한껏 양산했다. 텀블러 손에 들고 머리를 쓸어 올리는 그 자존감의 원형이 되었던 것이다.
역사학자 토니 주트는 세상을 그렇게 이분법적으로 나눠서 보는 사고방식을 마니교적 유산(Manichaeism heritage)으로 설명한 바 있다. 그 정의로운 세상의 함의가 “모두가 잘사는 세상”으로 귀결되고 마는 것은 결국 저 위쪽 광활한 추운 나라나 어느 중남미의 땟국물이 줄줄 흐르는 서정(敍情)을 따라가자는 소리로밖에 들리지 않는다.
알만한 프랑스 지식인들 중에는 공산주의에 경도된 사람들이 많았다. 사르트르, 보부아르, 메를로 퐁티 같은 사람들이다. 그들은 “좋은 편에 서려는” 열망에 눈이 뒤집혀 어처구니없는 오판을 저지르고도 끝없는 궤변을 쏟아 냈다. 에드가 모랭 같은 이는 “나는 틀렸어도 옳았고, 당신은 옳았어도 틀렸다”는 식으로 비판자들의 말문을 막았다. 안타깝게도 오늘날 우리 사회의 지식인들을 보면 모랭의 억지를 닮아 가고 있는 것 같다.
지적 오만이 정도를 넘어 확신의 경지에 이른 것은 어쩌면 진영에 가담한 자들의 공통된 현상이기도 하다. 하지만 토마스 파벨의 표현처럼 '듣기를 거부한 자'들은 지식인이 아니라 이념가(ideologist)일 뿐이다.
철학적으로 사유하고 비판을 수용하고, 생산적인 토론을 하는 게 아니라 좌표 찍은 곳으로 몰려다니며 악다구니 쓰는 잡배들과 하등 다를 바가 없어지는 것이다. 무엇보다 참을 수 없는 것은 권력자의 식객 노릇을 자처하면서 그들의 논리에 부역하는 자들이다. 이들의 행위는 개인의 패가망신에 그치지 않고 많은 사람에게 돌이킬 수 없는 피해를 준다는 점에서 그 죄질이 가볍지 않다.
스탈린 체제하에서 벌어진 리센코주의는 바로 그런 전형적인 예에 속한다. 권력자에게 환심을 사기 위해 실험 결과를 조작하고, 과학적으로 입증되지 않은 이론을 강행하여 수많은 사람을 기아의 고통 속으로 몰아넣은 것이다.
이런 일은 중국에서도 있었다. 대약진운동 당시 국가적 재앙을 초래한 심경밀식(深耕密植)파종법이나, 제사해운동이 그렇고, 토법고로(土法高爐, 뒤뜰 용광로) 소동이 역시 그렇다. 이 모든 삽질이야말로 지식인들이 앞장서 나발 불고 장단 맞춘 참극이었다. 참새를 저주하는 시를 써서 바치고 살아남은 곽말약(郭沫若)은 그런 부끄러운 지식인 중 한 명이었다.
불과 몇 년 전 소득주도 경제성장론에 적극 가담했던 학자들은 한때 그럴싸한 말로 방송에 불려 다니며 책을 쓰고 대중적 인기를 누리던 스타들이었다. 현실 세계에서 통하지 않는 이론으로 재미를 보았으면 그 실패에 대한 뒷감당은 해야 하지 않겠는가.
하지만 그 누구도 책임을 졌다는 소리를 들어 본 적이 없다. 사방에서 우려의 목소리가 들릴 때에도 그들은 이를 “명현 현상”으로 간주하는 뻔뻔함을 보였다. 최저임금 논란, 국가부채 문제, 두 배로 상승한 주택 가격 등 일일이 거론하기도 힘든 망한 성적표를 들고 와서, 통계까지 조작하는 파렴치한 짓을 일삼았다. 사초에 손대는 중죄를 저지르고도 무사한 사람들은 이들 뿐이다.
이제 우리 사회에서 더 이상 인과응보나 사필귀정이라는 말은 통용되지 않는 것 같다. 앞으로 그보다 더한 일들이 벌어질 것을 생각하면 억장이 무너질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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