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멕시코가 미국의 ‘물 압박’을 어떻게 헤쳐나갈지 주목된다. 80여년 전 맺어져 지난 30년간 유명무실해진 양국 간 강물공급협약을 이행하도록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이 요구하고 나선 가운데 멕시코는 자국 북부의 댐 방류량을 약 7배 늘렸다. 양국 국경지대 수자원 관리를 위해 설립된 국제국경·수역위원회(CILA·영어 약칭 IBWC)가 15일(현지시간) 멕시코 코아우일라주(州) 아쿠냐의 아미스타드 댐 방류량을 초당 18㎥에서 120㎥로 늘렸다고 밝혔다.
물 공급 불이행을 트럼프가 문제 삼으면서 멕시코 정부는 관세협상에 불리하게 작용할 것을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작년 10월 취임한 클라우디아 셰인바움 멕시코 대통령이 11일 정례 기자회견에서 “이 문제를 해결하고자 매우 단기적 조처를 포함해 전반적인 우리의 제안을 미국 측에 전달했다”며 “여기엔 미 텍사스 농민들을 위한 즉각적 방류량 증대도 들어간다”고 말한 바 있다.
브라보(미국명 리오그란데)강 유역의 아미스타드(La Amistad) 댐은 1969년 리처드 닉슨 미 대통령과 구스타보 디아스 오르다스 멕시코 대통령이 모두 준공식에 참석했을 만큼 양국 우호의 상징물이며 댐 이름 자체가 ‘우정’(라 아미스타드)이다. 그러나 이곳이 최근 수년 동안 강물공급 문제 관련해 외교분쟁의 중심에 서게 됐다.
1944년 체결된 협약에 따라 매년 멕시코 브라보 강물 3분의1가량인 4억3000만㎥가량을 미국으로, 미국 콜로라도강에서 약 19억㎥가량을 멕시코로 흘리기로 돼 있으나 최근 30년 제대로 이뤄지지 못했다. 멕시코 측 가뭄과 자동차·전자제품 생산 시설 증가에 의한 산업용수 수요 때문이 컸다. 멕시코정부가 현재 관세 협상팀과 별개로 ‘물 갈등 협상팀’을 꾸려 미국 측과 접촉 중이라고 현지 일간 엘피난시에로에서 보도했다.
한편 댐 방류량 급격 증가에 멕시코 북부 지역 지방자치단체에서 반발하고 있다. 댐 관할 자치단체인 아쿠냐의 에밀리오 데 오요스 시장은 성명을 내 “저수량이 사상 최저 수준(12.7%)인데 연방 정부가 23일까지 계속 물을 흘려보낸다고 알려 왔다. 미국의 정치적·경제적 압력이 가해진 줄은 알지만 이번 조처가 지역 식수공급과 생산활동을 위험에 빠뜨리며 생태계에 심대한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목소리 높였다. 마놀로 히메네스 코아우일라 주지사 역시 오요스 시장에 지지를 표하며 근본적인 대책 마련을 촉구했다.
트럼프1기 때도 멕시코 정부는 다른 지역 댐 방류량을 늘려가며 할당량을 맞추고자 애썼으나 농민들의 격렬한 반대 시위로 사망자가 1명 발생하기도 했었다. 강물 문제란 멕시코 정부에게 또 하나의 중대한 국내적·대외적 사안인 것이다. 셰인바움 대통령이 이날 아침 정례 기자회견에서 “미국으로 보낼 수량을 결정하고자 연방 정부가 북부 주들과 협상하고 있다”고 짚었다. 트럼프2기 출범 이래 여러모로 비교적 선방 중인 멕시코의 향후 대응이 주목된다.
6일 트럼프는 셰인바움과 통화한 후 멕시코·캐나다산 대상 25% 관세 상당 부분을 ‘추가 한 달 유예’ 하기로 하면서 “셰인바움 대통령을 존중하는 마음에서 결정했다”고 트루스소셜에 적었다. 이어 “우린 관계가 매우 좋다. 불법이민과 펜타닐 유입 중단을 위해 국경 문제에 관해 함께 열심히 노력한다”고 밝혔다. 셰인바움도 엑스 글로 “트럼프 대통령과 훌륭한, 존중어린 통화를 했다. 주권을 상호 존중한 틀 안에서 우리 노력과 협력이 전례 없는 결과를 가져왔다”며 화답했다.
이번 글로벌 관세전쟁 시작 초기만 해도 멕시코가 큰 피해자 중 하나일 것으로 보였다.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과 그 후신인 미국·멕시코·캐나다무역협정(USMCA)을 통해 멕시코는 미국을 상대로 저렴한 상품을 무관세로 수출해 왔다. 멕시코 전체 수출에서 대미 수출이 75%다. 트럼프의 25% 관세부과 계획은 멕시코 경제의 근간을 뒤흔들 사태였으나 이게 일단 유보된 것이며 셰인바움 대통령 전략이 잘 통한 것으로 평가된다. 기후과학자 출신이자 정치 경력 일천한 인물이지만 최고의 수완을 발휘하고 있다.
셰인바움은 당선인 신분의 트럼프가 작년 말 대(對)멕시코·캐나다 25% 관세’를 처음 언급했을 때, 지난달 1일 관련 행정명령 서명과 4일 시행일까지 “평온함과 인내심을 가지고 임한다”는 메시지를 반복하며 ‘즉각 보복’ 등의 발언을 극력 삼갔다. 대신 “플랜 B·C·D가 있다”는 우회적 표현을 썼다. 대처 가능성으로 국민 불안감을 다독이면서도 험한 말이 언론 머리기사에 오르지 않도록 했고 트럼프의 진의 파악을 우선시했다.
협상 막판에 등장해 트럼프와 직접 소통하고 마지막 결정을 이끌어내는 셰인바움의 수완이 돋보였다. 작년 12월, 올해 2월3일, 3월6일 트럼프과 통화할 때 영어·스페인어를 필요에 맞춰 구사하면서 병력 1만 명 국경 배치와 국경 펜타닐 적발 41.5% 감소 등 마약의 미국 유입 차단 노력 및 성과를 적극 설명했다. 또 멕시코의 마약 카르텔 관계자 29명을 미국 측에 넘겨 성의를 표시했다. 냉철한 계산적·기술적 접근이 트럼프 다루기에서 빛을 발하는 모습이다.
셰인바움은 ‘멕시코의 트럼프’로 불리던 안드레스 마누엘 로페스 오브라도르 전 대통령의 후계자로, 현재 지지율 76~85%다. 트럼프 압박에 일방적으로 밀리지 않으면서 마약·갱단 등 고질적인 문제에 과감하게 맞선 모습이 지지율 고공행진의 이유로 꼽힌다. 1월 ‘멕시코만(灣)’을 ‘미국만’으로 부르자는 트럼프에게 “미국을 ‘멕시코 아메리카’로 바꾸면 어떠냐” 응수하기도 했다. 그런 셰인바움에게 2월 트럼프는 “놀라운 여성”이라며 찬사를 보낸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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