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선경 연재소설 ‘위선의 시대’ [71] 야수의 눈, 독사의 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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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선경 필진페이지 + 입력 2025-03-26 06:30:02

변태섭도 작은 거울로 희숙을 훔쳐보긴 마찬가지였다. 오히려 거울을 통해 그녀가 얼마나 절망하는지 확인하려는 눈치였다. 그녀가 절망할수록 변태섭의 희열은 걷잡을 수 없이 뜨거웠다. 변태섭은 희한한 자세를 유지하게 하면서 무릎 꿇어 희숙의 다리 사이로 들어갔다.

변태섭이 머리를 쳐들면 희숙의 그곳을 감상하는 꼴이었다. 변태섭은 희숙의 두 손을 묶기도 했다. 희숙이 움직일 수 없는 상태에서 변태섭은 눈으로, 혀로 자신의 욕정을 배출했다. 변태섭의 동공은 마약한 사람처럼 풀려 있었고 희숙이 거부할수록 눈에서 독기를 뿜어 냈다. 야수의 눈이었고, 독사의 혀였다.

희숙은 전혀 즐겁지 않았다. 변태섭이 좋아하고 요구하니까 응할 뿐이었다. 부끄러워 견딜 수가 없었다. 변태섭은 희숙의 가슴이 양쪽, 위아래로 원을 그리며 출렁거릴 때마다 야수의 신음 소릴 냈다. 고문을 견디지 못한 남자가 고통에 무릎 꿇은 자신을 자학하다 울부짖는 소리와 비슷했다.

희숙이 부끄러워 고개를 숙이면 변태섭은 그녀의 머리채를 붙잡아 거울을 응시하게 했다. 거울 속 남녀는 사람이 아니었다. 욕정으로 가득한 한 쌍의 동물이었다. 가느다란 목구멍을 타고 희숙이 아, 아, 아, 신음 소릴 내면 변태섭은 손으로 희숙의 입을 막았다. 희숙의 엉덩이와 변태섭의 사타구니가 맞닿는 소리가 철벅 철벅 크게 났지만, 변태섭은 그것에 주의하지 않았다.

변태섭이 절정에 이르게 되면 희숙의 가슴을 터질 듯이 쥐어짜고 귀밑 목덜미를 이로 깨물곤 했는데 희숙은 소스라치게 놀라면서도 비명을 지르지 않았다. 그의 몰두와 집중을 깨고 싶지 않아서였다. 한바탕 격정이 지나고 나면 변태섭은 몹시 피곤한 듯 벌거벗은 채로 곯아떨어졌다. 희숙은 그런 변태섭의 모습을 안쓰럽게 바라봤다. 조금 전의 모멸감도 원망도, 그를 향한 연민 앞에서 연기처럼 사라졌다. 희숙은 변태섭의 나신을 이불로 가려 주었다. 팔베개도 내어주었다. 그가 희숙의 품 안에서 곤히 잘 수 있도록.

변태섭은 일요일 아침 희숙이 차려준 밥을 먹고 나갔다. 희숙은 설거지와 방 뒷정리 후 방문 열쇠를 대문 밖 화분 아래 두고 갔다. 책상엔 변태섭이 다음에 읽어 올 책을 메모지에 남기고 나갔는데 희숙은 메모지를 볼 때마다 쓴웃음을 지었다. 알아서 읽어 오라는 게지. 어차피 학교 세미나에서 공부할 줄 아니까. 그래도 희숙은 변태섭이 적어 두고 간 책은 반드시 선배들이나 동기한테 빌려 읽었다. 탈춤반 활동도 게을리하지 않았다.

주일 예배도 거르지 않았다. 변태섭이 교회에 발을 끊은 건 안타까웠지만 그에게 주일 성수를 권하지는 않았다. 그에게 부담 주는 일은 하고 싶지 않았고 그가 하는 일은 하나님의 주관이라고 믿었다.

변태섭은 희숙을 만나면 섹스부터 했고 섹스가 끝나면 왕의 하사품처럼 서울대 지하서클에서 기획하고 있는 작전의 일부를 흘리곤 했다. 희숙은 그것을 들고 학교로 가 은밀하게 전달하곤 했는데 희숙으로부터 얻은 정보가 중요하고 적확해서 선배들로부터 각별한 관리를 받았다.

[글 박선경 일러스트 임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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