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규나 연재소설 ‘최초의 당신’ [195] 흥분도 기대도 그리움도 없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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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체되고 분해되고 파괴되기 위해

김규나 필진페이지 + 입력 2024-10-22 06:30:10

“써 볼까?” 동우가 원할 때도 완강히 거부했다. 섹스에 있어 하운의 상상력은 폐쇄적이었다. 섹스는 다만 사랑의 표현일 뿐이라고 믿었다. 웨이트리스 복장이나 세일러복이 없어도, 호르몬이 베수비오 화산처럼 치솟으며 제멋대로 날뛰는 날이 아니어도 사랑하는 사람이 옆에 누워 몸을 쓰다듬어 주는 상상만으로도 여자는 충분하다는 것을, 동우는 이해하지 못하는 것 같았다. 섹스에 있어서 여자가 남자보다 정신적으로 발달되어 있는 것도 사실이었지만, 몸 안으로 이물질을 넣는 것을 하운은 생각조차 하기 싫었다.

시체를 치운 뒤 서랍에서 딜도를 발견하게 되면 가족들은 어떤 표정을 지을까, 상상만으로도 수치스러워져서 하운은 얼굴이 붉어졌다. 신문지에 꼭꼭 싸서 쓰레기봉투에 버려야겠다고 생각한 하운이 딜도를 들고 일어났다. 하지만, 다시 침대에 앉아 한참을 골똘히 생각했다.

오줌을 눌 때도, 샤워하며 알몸을 거울에 비춰 볼 때도, 어둠 속에 눈을 감고 누울 때도, 문득문득 수술실이 떠올랐다. 제일 먼저 떠오르는 것은 김밥 냄새였다. 첫 수술을 앞둔 간호사들이 수술실 한편에 마련된 탈의실에서 김밥으로 아침을 때운 것 같았다. 의료진들이 수술을 준비하며 그녀의 슬픔과 상관없는 이야기들을 나누는 동안 짐승처럼 사지를 묶인 하운은 혼자 버려진 것 같았다. 그녀가 느껴야 할 감정이 수치심인지 슬픔인지 두려움인지 확신할 수 없었다. 소독 거즈로 음부가 닦이던 기억, “이름을 말해 보세요. 나이가 어떻게 되시죠?” 마취과 의사의 질문, 그러고 나서 곧 마스크가 코와 입을 덮었다. 전날 자궁경부를 확대하기 위해 삽입했던 라미나리아가 빠져나가는 것 같았다. 하운은 무겁게 눈을 감았다. 그리고 암전.

수술대 위에 누웠던 것처럼 하운은 옷을 모두 벗고 침대 위에 똑바로 누웠다. 한 번도 사용해 본 적 없는 딜도를 손에 집어 들었다. 그리고 수술용 장갑을 낀 의사가 흡입기를 삽입하듯 단번에, 꽂았다. 발가락에서부터 종아리에 연결된 근육들이 팽팽히 잡아당겨졌다. 메마른 문은 열리지 않았다. 손가락으로 입구를 벌려 깊이 쑤셔 넣었다. 흥분도 없고 기대도 없고 그리움도 없었다. 그녀의 몸이 원하는 건 끝내 채우지 못한 포만감이었다. 더 이상 빼앗기고 싶지 않은 생명에 대한 소유욕이었다. 전신마취로 통감하지 못하던 그날의 아픔이었다.

두 다리 사이, 안으로 감추어진 피부 중 가장 연하고 부드러운 살이 찢어지는 것 같았다. 쇠꼬챙이가 살을 꿰뚫는 것 같았지만 무엇도 빠져나오지 못하도록 하운은 막았다. 막았다. 틈을 막으려는 행위는 필사적이었다. 아이를 잃던 날, 사랑에 대한 열망과 삶에 대한 욕구, 살아야 할 이유도 함께 유산되었다. 그런데도 왜 살아 있는지 이해되지 않았다.

하운은 해체되고 싶었고 분해되고 싶었으며 무참히 파괴되고 싶었다. 칼을 움켜쥔 살인마처럼, 하운은 살을 가르고 꽂고 빼고 찌르며 자신을 찢었다. 그때마다 죽었다가 깨어나고 다시 살아난 것에 절망했으며 기어이 죽기를 희망했다.

[글 김규나 일러스트 임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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