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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자녀들에게 좋은 것 유익한 것만 주고 싶은 게 부모 마음이다. 방학을 맞아 공부도 되면서 여행의 즐거움도 누릴 수 있는 장소로 서울 종로구 창신동을 꼽을 수 있다.
광화문 서울역사박물관 전시와 연계해 창신동을 둘러보면 시간도 아끼고 돈도 아끼면서 배울 것도 많은 체험학습으로 즐길 수 있다. 또 어른에게는 아스라한 추억의 한 페이지를 소환하는 시간이 될 것이며 아동에게는 새로운 세계에 눈뜨는 오감 자극의 기회가 될 것이다.
시민의 생활과 밀접한 서울 인장포 문화
광화문 서울역사박물관 1층 로비전시실에서는 1일부터 얕은 새김 안에 담긴 깊은 삶의 이야기 ‘글자의 깊이 1.5㎜’ 전을 운영 중이다. 이 전시는 ‘서울미래유산기록’ 조사를 바탕으로 시민의 생활과 밀접한 서울의 인장포(도장가게) 문화를 조명한다.
서울에서 인장포가 모여 있는 곳이 종로구 창신동이다. 창신동은 조선시대부터 도성과 가까운 지리적 이점으로 양반과 부자들이 많이 살던 부촌이었다. 백남준의 부친이자 대한민국 최초의 재벌 태창그룹 창업자인 백낙승의 집도 창신동에 있었다. 백남준기념관(백남준을 기억하는 집)이 바로 그 집 일부를 개조한 것이다.
대한민국을 호령하던 부자들의 동네였지만 6·25전쟁을 계기로 낙산과 청계천 일대에 피난민들이 정착하면서 서민들의 생활 무대가 되었다.
인근에 동대문시장이 있다 보니 봉제공장 등 가내수공업 형태의 소규모 공장이 많이 들어서게 되었다. 인장포 거리가 생긴 것도 공장 운영자와 소비자 간에 사업적 계약 관계가 늘어났기 때문이다.
1960년을 전후해 형성된 창신동 인장포 거리는 1980~90년대 가장 호황을 이루었다. 한때 창신동에는 100여 개가 넘는 인장포가 자리했다. 하지만 2000년대 들어 컴퓨터 인장의 등장으로 많은 인장포가 문을 닫거나 규모를 줄였다.
2023년 10월 기준 창신동에는 30여 곳의 인장 관련 업체가 존재한다. 1990년대에 비해 40% 규모로 축소됐지만 창신동은 현재까지 우리나라 유일의 인장업체 밀집 지역이다.
손재주와 책상만 있으면 개업 오케이
인장포는 손재주와 책상만 있으면 개업이 가능해 서울에 상경한 지방민에게 상당히 매력적인 사업이었다. 실제로 서울에서 가장 오래된 인장포로 꼽히는 △인예랑(황보근 사장) △여원전인방(최병훈 사장) △옥새당(이동일 사장) △박인당(박호영 사장) △거인당(유태흥 사장) 5곳 모두 전쟁이 끝난 직후 상경한 지방민 사장이 운영하는 곳이다.
인장 명장인 유태흥 거인당 사장은 강원도 춘천에서 처음 인장기술을 접했다. 상경하여 동화백화점(신세계백화점) 인장부에 취직했는데 첫 봉급으로 공무원 월급의 3배를 받았다. 프리랜서로 독립한 후 충무로·종각에서 사업체를 운영하다가 1983년 창신동에 자리 잡았다.
이동일 옥새당 사장은 경북 봉화에서 인장포를 운영하는 친척 형님에게 마무리칼을 쓰지 않고 호수칼로만 입체감 있게 새기는 기술을 배웠다. 그에게 인장업은 좋아하는 일이라기보다 잘하는 일에 가까웠다.
공부를 포기하면서까지 인장업을 하는 것이 맞는지에 대한 회의감이 일 때 ‘전각입문’이라는 책을 읽게 되었고, 인장의 역사성과 예술성을 알게 되면서 인장업을 대하는 태도가 달라졌다. 이후 인장에 대해 공부하면서 ‘인각교본’의 한국 인장사 부분을 집필하기도 했다.
서울역 앞 교통센터(서울스퀘어)에 유신문화사를 개업했다가 1975년 신세계백화점에 입점해 2009년까지 35년간 자리를 지켰다. 백화점에서는 컴플레인 없는 코너로 유명했는데 2002년에는 명장에 선정되기도 했다.
창신동 인장포 사장님들은 서울의 높은 임대료를 감당하는 방법으로 다른 업종과 공간을 공유하는 방식을 생각해 냈다. 그중에서도 관련 업종인 인쇄소나 문구점 등의 한쪽 공간을 이용해 영업하는 경우가 많았다. 인장업에서는 이를 ‘겹살이’라고 부른다. 말하자면 ‘숍인숍’인 셈이다.
독립 점포의 경우에도 여타 상점이 자리하기 힘든 빌딩 사이의 틈새, 건물 계단참이나 지하의 작은 공간, 모퉁이의 뾰족하게 잘린 필지를 점유한 곳이 대부분이다.
인장은 인면(이름 새기는 면)의 모양, 도장 길이, 뚜껑의 유무에 따라 부르는 이름이 다르다. 가장 흔한 형태인 소판은 우리가 막도장이라고 부르는 것이다. 인면이 타원형이고 길이는 6cm다. 환봉은 인감도장으로 많이 쓰는 도장으로 인면이 원형으로 되어 있다.
장소판은 학교 선생님들이 주로 사용하는 길쭉한 도장을 가리킨다. 인면이 타원형이면서 좁아서 성만 새기는 게 보통이다. 세봉·정정도장·콩도장이라고도 부른다.
천환은 뚜껑이 있으면서 허리가 잘록한 모양의 도장이다. 전체적인 모양이 ‘天’ 자를 닮았다 하여 천환이라 한다. 천환은 인장포의 상징과 같은 도장이다. 창신동에서 빨간색 천환 형상물을 따라가면 여지없이 인장포와 만날 수 있다.
환천은 천환처럼 뚜껑이 있으나 손잡이 없이 원기둥 모양이다. 전체적으로 매끈하다 보니 보통 조각으로 장식성을 더한다. 각인은 천환처럼 손잡이가 잘록하지만 인면이 사각형인 도장이다.
고무인은 고무로 만든 인장으로 요즘 스탬프(stamp)라고 부르는 것들이다. 1970년대까지 고무인은 인장처럼 고무판에 글씨를 써서 손으로 직접 조각했지만 이후 금속 틀로 찍어내는 방식을 거쳐 현재는 레이저 각인기가 보급돼 있다.
서울역사관박물관 전시장에서는 인장포의 역사와 함께 나무도장 만드는 방법을 상세히 소개하고 있다. 전시 관람의 마무리는 당연히 창신동 인장포 골목에서 해야 한다.
도장가게 옆 장난감가게
아이들과 창신동 인장포 골목을 찾았다면 완구 골목을 피해 갈 수 없다. 인장포는 문구점과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인데 문구점은 또 완구점과 한 몸이다. 이런 이유로 창신동에는 인장·문구·완구가 혼재돼 있다.
창신동 카카리코 카페는 카피바라 캐릭터를 활용한 아기자기한 인테리어의 완구 카페다. 카피바라는 현존 설치류 중 가장 큰 동물로 평균 체중이 35~66kg에 이른다.
외모가 거의 흡사하지만 뉴트리아가 ‘괴물 쥐’라는 명예롭지 못한 별명으로 불리는 데 비해 카피바라는 커다란 덩치, 짧은 다리, 동그란 눈, 뭉툭한 코가 귀여운 인상을 주는 데다 평화를 사랑하는 이미지 때문에 인형과 이모티콘 등 다양한 콘텐츠에서 활용되고 있다.
카카리코 카페 옆 승진완구는 각종 장난감과 각종 캐릭터 제품을 시중가보다 저렴하게 판매하는 전문 완구매장이다. 매장이 넓다 보니, 없는 물건이 없는 것으로 유명하다. 입구에 세워진 고릴라와 곰 조형물은 외국인 여행객의 인기 포토존으로 활용되고 있다.
한편 광화문 서울역사박물관의 ‘글자의 깊이 1.5㎜’ 전은 27일까지 운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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