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희숙의 영을 부르는 행위라도 하는 양, 나는 눈을 지그시 감고 고개를 180도로 빙그르 돌리더니 감았던 눈을 부릅떴다. 접신하는 무당 같았다. “아뇨, 별말 없어요. 희숙 씨는 제 꿈에서 항상 찬송가를 불렀어요. 매번 같은 찬송이었어요. 하도 생생해서 나중엔 제가 그 찬송가를 외울 정도였지요.”
‘주님이 홀로 가신 그 길, 나도 따라가오. 모든 물과 피를 흘리신 그 길을 나도 가오. 험한 산도 나는 괜찮소 바다 끝이라도 나는 괜찮소. 죽어 가는 저들을 위해 나를 버리길 바라오.’
“그 대목만 반복해서 부르더군요. 고장 난 턴테이블 바늘처럼. 그런 복음송이 있나 찾아봤어요. 사명이란 곡이더라고요. 윤희숙 씨가 왜 사명이란 찬송가를 반복해서 불렀을까. 자기에게 부여된 사명을 말하고 싶었을까, 아니면 우리에게 다른 사명을 주려는 것이었을까.” 나는 잠시 말을 끊고 뜸을 들였다가 다시 말을 이어 갔다.
“윤희숙을 버티게 한 건 놀랍게도 신앙이었어요. 그녀는 지독한 고독과 싸웠어요. 단지 사랑이 필요했을 뿐인데 사랑을 주는 사람이 없어서 고독했고 고독할 때마다 기도했지요. 자신은 계속 파멸되어 가면서도 하나님 말씀을 붙잡았으니 어리석다고 해야 하나, 순수하다고 해야 하나. 성경에서 믿음, 소망, 사랑 그중의 제일은 사랑이라 강조했다죠. 윤희숙은 변태섭을 진심으로 사랑했어요. 혁명 의식이나 소명 의식, 그런 거 없었어요. 진실한 사랑이 그녀의 사명이었던 거예요. 처음엔 변태섭을 순수하게 사랑했고 그다음은 연민이었어요. 나는 그런 확신이 들더라고요. 변태섭이 아니었으면 그녀가 행복했을 거라는. 이제 와 무슨 소용이 있겠느냐만요.” 나는 탈고한 원고지와 일기장을 테이블 위에 올려놓았다.
“몇 달 동안 윤희숙의 일기장은 제 사명이었어요. 제 책의 첫 번째 독자는 오승연 씨입니다. 오승연 씨와 저는 윤희숙, 김태주, 오정일, 정기순의 미완성 사명을 완성하는 셈이에요. 사명이 끝나면 짐도 벗어야죠. 탈고할 때 심정은 뭐랄까. 허탈, 후련 그래도 남는 미련. 윤희숙과 교감할수록 두려웠어요. 미련은 없어요. 사명에 미련은 걸림돌이에요. 다 쏟아 냈어요. 윤희숙의 일기장을 제게 가져온 날, 승연 씨가 이런 말을 했죠. 제궤의혈, 그들은 둑을 무너뜨리는 개미였다고, 이제 그들은 다른 둑을 무너뜨리는 개미가 될 거예요. 민주라는 이름 뒤에 숨은 민낯. 허위 의식과 탐욕, 위선 그리고 무지라는 둑.”
윤희숙의 일기장을 언급하니 글을 쓸 때처럼 격정이 다시 밀려왔다. 나는 호흡을 가다듬었다. 오늘 오승연을 만난 건 어쩌면 이 말을 하고 싶어서였는지도 모르겠다. 오승연은 내 입술이 열리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나는 오승연이 듣고 싶은 사람의 이름을 알 수 있었다. 오승연 씨, 저랑 김태주 씨 만나러 가지 않을래요. 김태주 씨 만나고 싶어요. 그녀가 웃었던가. 이상하게도 기억이 나지 않는다. 웃었더라도 소리 내어 웃지 않았을 것이고 울었더라도 눈물은 없었을 것이다. 그냥 내 손을 조용히 잡았던 것만은 또렷하다. 아주 조용히 잔잔하게. 끝.
[글 박선경 일러스트 임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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