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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김 산업이 사상 처음으로 연간 수출액 10억 달러를 돌파하며 ‘검은 반도체’로 불리는 위상을 굳히고 있다. 해양수산부에 따르면 김 수출액은 지난달 기준 10억1,500만 달러로 집계됐다. 최대 수출 시장인 미국에서 한국산 조미김에 적용되던 15% 관세가 0%로 면제되면서 대외 여건도 개선됐다. 다만 산업 현장에서는 관세 철폐보다 기후 변화에 따른 생산 기반 불안과 국내 물가 상승 가능성을 더 큰 리스크로 보고 있다.
최봉학 사단법인 한국김산업연합회 회장은 18일 본지와의 통화에서 “무관세는 수출 확대의 기회이지만, 김 산업의 지속 가능성을 좌우하는 핵심은 관세가 아니라 안정적인 생산 기반”이라며 “고수온 리스크와 연구개발(R&D) 공백을 해소하지 못하면 수출 경쟁력도 흔들릴 수 있다”고 말했다.
이번 관세 면제는 미국 내에서 생산되지 않는 품목에는 관세를 부과하지 않는다는 통상 원칙이 재적용된 결과다. 기존 15%였던 한국산 조미김 관세가 철폐되면서 가격 경쟁력이 높아졌다는 평가다.
한국은 현재 글로벌 김 시장의 약 70% 이상을 점유하는 세계 1위 생산·수출국이다. 특히 미·중 갈등이 장기화되는 상황에서 중국산 김과의 격차를 벌려야 하는 시점에, 미국 시장 내 점유율을 더욱 공고히 할 수 있는 계기로 평가된다. 대미 김 수출 물량의 90% 이상이 조미김인 만큼, 현지 수요 확대에 따른 수출액 증가 효과도 클 것으로 분석된다.
지난 달 기준 누적 수출액 통계에 따르면 주요 수출 대상국은 미국(약 2억2천만 달러), 일본(약 2억1천만 달러), 중국(약 1억 달러) 순으로 집계됐다. 시기별로는 일본이 1위를 차지하기도 하는 등 미국과 일본이 한국 김 수출의 양대 축을 형성하고 있으며, 중국도 최근 수출 증가세를 보이며 주요 시장으로 부상하고 있다.
김은 2023년 연간 수출액이 처음으로 1조 원을 넘어선 이후 최근에는 10억 달러를 돌파하며 라면과 함께 한국을 대표하는 수출 품목으로 자리 잡았다. 산업 구조 측면에서는 동원F&B, CJ제일제당, 성경식품, 광천김, 대천김 등이 주요 가공·수출 업체로 거론된다.
최 회장은 한국 김 산업이 일본과 중국을 앞설 수 있었던 배경으로 ‘분업화된 산업 구조’를 꼽았다. 일본과 중국은 생산자가 종자 생산부터 가공·수출까지 일괄 관리하는 방식이 일반적인 반면, 한국은 종자 생산, 물김 양식, 마른김 가공, 조미·수출이 각각 전문 영역으로 분화돼 발전해 왔다는 설명이다.
한국김산업연합회 역시 이러한 구조를 반영해 종자·물김·마른김·수출 등 4개 분과로 구성돼 있다. 다만 그는 “분업 구조는 생산 단계 중 한 부분만 흔들려도 전체 산업이 영향을 받는 취약성도 함께 안고 있다”며 “특히 최전방인 물김 생산 현장의 부담이 커지고 있다”고 말했다.
고수온·병해 확산… 국가 차원 R&D 요구
산업 현장이 직면한 가장 큰 위협은 기후 변화에 따른 해수온 상승이다. 김은 수온 3~10도의 저수온 환경에서 안정적으로 성장하는 냉수성 작물이지만, 최근 고수온 현상이 반복되며 작황 변동성이 확대되고 있다. 영양염 부족과 병해 발생 가능성도 생산 불안을 키우는 요인으로 지목된다.
최 회장은 “농업 분야는 국가가 농약과 시비제를 개발·보급하는 체계가 구축돼 있지만, 수산업은 상대적으로 국가 연구개발 지원이 부족하다”고 말했다. 일부 지자체와 수협이 대학과 협력해 약재 개발에 수십억 원 규모의 예산을 투입하고 있지만, 산업 규모에 비해 충분하지 않다는 지적이다.
업계는 품종 개량, 병해 대응, 수급 관리 기능을 총괄할 전담 기관으로 ‘국립 김산업진흥원’ 설립을 요구하고 있다. 국회 차원에서 관련 법안 논의가 진행 중인 만큼 정부의 정책적 판단이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정부가 기후 변화 대응책으로 추진 중인 육상 김 양식 기술 개발을 두고도 업계와 시각차가 크다. 해양수산부는 2025~2029년 5년간 약 350억 원을 투입해 육상양식 기술을 상용화하겠다는 계획을 밝힌 상태다.
반면 업계는 육상양식의 경제성과 현장 적용성에 대해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고 보고 있다. 최 회장은 “육상양식에 투입되는 예산의 일부만이라도 기존 바다 김 양식의 고수온 대응 품종 개발과 약재 연구에 투자한다면 단기적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고 말했다.
대기업 중심의 육상양식 확대가 어촌 지역의 김 생산 기반을 약화시킬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업계에서는 김 산업이 어촌 지역의 주요 소득원이자 인구 유입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는 점을 강조한다.
향후 수급 전망도 불확실하다. 업계에서는 고수온 피해가 누적될 경우 향후 생산량이 감소할 가능성을 우려하고 있다. 생산량 감소 국면에서 수출 물량이 우선 배정될 경우, 국내 마른김 가격 상승 압력이 커질 수 있다는 분석이다.
업계 관계자는 “마른김 가격 상승은 조미김, 김밥, 간편식 등 가공·외식 품목 가격 인상으로 어질 가능성이 높다”며 “김값 문제가 단순한 수산물 가격 변동을 넘어 생활물가 관리 이슈로 확산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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