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선경 연재소설 ‘위선의 시대’ [4] 어떤 봄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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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선경 필진페이지 + 입력 2024-12-11 06:20:58

지하철 객실 안에서 나는 냄새는 매번 같았다. 제시간에 출근하고 제시간에 퇴근하는 성실한 직장인처럼 변함없었다. 화장품·향수·남성 호르몬·머릿내 어떤 때는 암내까지 뒤섞여 코를 자극했다. 환기가 필요해. 승연의 뒤에 서 있던 중년 남자가, 승연의 귀에 연신 뜨거운 콧바람을 내뿜으며 곧 숨이 넘어갈 것처럼 헐떡였다. 질식할 것만 같았다. 젠장, 헐떡거리면 어쩌라고!

이번엔 어느 놈 손모가지가 승연의 엉덩이를 한 움큼 잡고 주물럭거렸다. 어떤 놈이야! 소리치려는 순간, 객실이 덜컹거렸다. 급브레이크에 승객들은 악! 하는 비명을 지르며 반대편으로 쓸려 갔다. 손잡이를 잡은 사람들 빼곤 콩나물시루 속 콩나물처럼 빽빽하게 서 있던 승객들이 중심을 잃고 쓰러졌다. 인간의 자유의지는 어디로 간 거냐. 지하철을 거부할 자유는 없냐고. 지하철 말고는 답이 없냐고. 서로 잡아 주고 일으켜 세우려는데 객실 문이 열렸다. 이 지겨운 해산과 집합의 반복. 순식간에 틈은 메워지고 승객들은 아무 일 없다는 듯 자기 위치로 정렬했다. 승연의 엉덩이를 주물럭거렸던 놈이 사라졌다.

승연은 수원역에서 통학버스로 갈아탔다. 승차 후 차창 밖에 비친 광경은 논·밭·들판 또 논·밭·들판이었다. TV 드라마 전원일기에서나 봤던 장면이었다. 승연은 깊게 한숨 쉬었다. 수원역에서 출발한 지 20여 분 만에 달랑 몸통 다섯 개인 학교 건물이 눈앞에 펼쳐졌다. 정면에 회색 화강암으로 지어진 장공관의 웅장한 모습이 나타났다. 승연은 그것이 외딴섬에 지어진, 커다란 수용소처럼 생각됐다.

교문에서 학생들을 기다리고 있던 교수들과 학교 행정실 직원들이 버스 하차장 쪽으로 우르르 몰려왔다. 누구 아이디어인지 개강 첫날 서비스치곤 참신했다. 그들은 버스 앞문 양쪽으로 줄 서서 문 열리기를 기다렸다가 하차하는 학생 한 사람 한 사람과 악수했다. 반갑게 인사하는 표정이 훌라 꽃 레이를 목에 걸어 주러 공항으로 마중 나온 하와이 환영부대 미소보다 밝았다. ‘웰컴 투 오산’, 낙원은 분명히 아닐진대. 승연은 수용소 건물에서 나온 환영부대 서비스가 광대의 과장된 몸짓처럼 부담스러웠다. 외부 세계와 시공간이 분리된 공동체 생활의 시작. 버스는 그들을 외부 세계와 연결하는 유일한 채널이었다.

교정은 심란했다. 본관인 장공관·강의실이 있는 만우관·교수연구동 소통관·학생회관 그리고 채플실을 뺀 나머지 공간은 공사가 한창이었다. 건물 주변으로 아스팔트가 깔려 있었고 길 양쪽으로는 붉은 흙이 그대로 속살을 드러낸 상태였다. 붉은 흙 사이로 심은 지 얼마 안 되는 묘목들이 몇 가닥 안 남은 옆집 아저씨 대머리 마냥, 간격을 둔 채 3월의 설익은 햇살을 받고 있었다.

수유리 접수 창구 직원이 그랬다. 오산으로 이전 수업하는 건 미정이에요. 이번 학번은 해당하지 않을 것 같네요. 지원율 떨어질까 봐 거짓말한 건 이해하겠는데, 건물이나 제대로 완성하고 학생을 받았어야지. ‘조금 낮은 데 지원해서 전기에 합격했다면 이 고생은 안 해도 됐는데….’

[글 박선경 일러스트 임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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