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 완승 vs 美관계 개선… 진퇴양난 러, 시간끌기

이 시간 주요기사

뉴스 > 국제정치

푸틴, 쿠르스크 전장에 군복차림 방문… 크렘린 “휴전안 면밀히 검토 중”
전문가들 “Yes·No 회피… 휴전안 받아들여도 가혹한 조건의 일시적인 것”

임명신 기자 기자페이지 + 입력 2025-03-13 16:41:40

▲ 12일(현지시간) 쿠르스크 전투 사령부를 찾은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 우크라이나에 역습 점령당한 영토를 거의 회복한 가운데 '30일 휴전안'을 두고 숙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유리한 전황을 밀어붙여 '완승'할 것이냐, 미국과의 관계개선 기회인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의 우호를 우선할 것이냐 갈림길에 있다. 연합뉴스

미국 주도의 ‘우크라이나 휴전안’에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진퇴양난에 빠진 듯하다. ‘전쟁 완승’을 향해 진격 중인 가운데 목표 완수냐, 미국과의 관계 개선에 결정적 호기일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체면을 살려줄 것이냐가 충돌하는 국면이다. 드미트리 페스코프 크렘린궁 대변인이 12일(현지시간) 브리핑 때 러시아 정부는 미·우가 전날 30일간의 일시 휴전안 추진 합의를 “면밀히 살피고 있다”며 즉답을 피하면서도 미국 측이 며칠 내 해당 협상 관련 세부사항을 건네 줄 전망이라며 미·러 정상의 재차 전화통화 가능성을 내비쳤다.

푸틴은 1월까지만 해도 일시휴전을 단호히 거부하던 입장이었다. 그러나 최근 트럼프 행정부가 대(對)유럽·우크라이나이나 정책을 전임 정부와 정반대로 전환하면서 고무적인 상황이다. 다만 국내외 주류 언론의 ‘러시아 친화적인 트럼프정부’ 식 표현엔 부연 설명이 요구된다. 트럼프는 문제 ‘해결’에 집중해 있음에 주목해야 한다. 역대 민주당 정부에서 ‘전략적 인내’를 내세우며 방치하거나 사태를 악화시킨 현실을 돌파하려는 것이다. 이를 위해 러·우가 전쟁에 이르게 된 역사적 배경을 살폈을 테고,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대통령이나 유럽 엘리트들 주장과 어긋한 대목을 발견했을 것이다.

이는 유럽인들의 후예가 사회 주류인 미국이지만, 유럽을 혈연 이상의 가치공동체로 여겨 온 믿음을 더이상 지속하기 어려워진 것과 관계가 깊다. LGBTQX 성정체성과 무슬림 이민자들 등의 인권을 우선하며 사실상 ‘전체주의화’한 유럽을 향해 지난달 JD 밴스 미 부통령이 (기독교적) 문명 가치를 포기하고 스스로 무너진 현 유럽과 ‘트럼프에 압승을 안긴 미국’은 함께 갈 수 없다고 선언한 것도 그 연장선에 있다.

푸틴이 바로 휴전에 들어갈 경우 인명 피해와 경제적 손실을 무릅쓰고 거둔 러시아의 진군은 빛을 잃게 된다. “공이 러시아로 넘어갔다”며 결단을 요구받는 게 악재에 가깝지만 트럼프의 제안을 검토해보겠다는 푸틴의 태도가 상당한 변화 즉 숙고 중이라는 뜻으로 읽힌다. 뉴욕타임스(NYT)에 따르면 관련 사정에 밝은 소식통이 트럼프 측근인 스티브 위트코프 중동 특사가 조만간 러시아를 재방문한다고 전했다. 트럼프 역시 푸틴과 금주 내 전화 통화할 생각임을 밝혀 ‘톱다운’식 논의가 있을 수 있음을 시사했다.

러시아군은 작년 8월 국경을 넘어 역습을 가해 온 우크라이나군에 빼앗겼던 자국 서부 쿠르스크주 일대를 거의 탈환한 상태다. 쿠르스크는 우크라이나가 협상 때 효과적으로 사용할 만한 협상카드로 평가되지만 푸틴에겐 이만저만 불명예가 아니다. 이를 의식한 듯 푸틴은 쿠르스크 탈환전에서 승기를 잡자 12일 직접 쿠르스크 전투 사령부를 군복 차림으로 방문해 회의를 진행하고 완전 수복을 지시했다. 우크라이나이나 동부전선에서도 러시아군이 착실히 전진 중이다.

러시아 내 주전론자들은 미국과 우크라이나이나 측의 일시휴전 제안을 전선 재정비를 위한 시간벌기 함정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단칼에 이를 거절해 ‘신속한 전쟁 종식’을 장담한 트럼프 체면을 구기는 것 또한 러시아에게 장기적으로 이로울 리 없다. 푸틴을 악마시하는 유럽 지도자들과 트럼프가 확연히 차별된다. 이런 트럼프와의 관계를 보호할 이유와 필요성이 충분하다.

모스크바에서 활동하는 정치분석가 일랴 그라셴코프는 NYT 인터뷰에서 러시아측이 전술적으로 불리하나 전략적으론 유리한 이번 휴전안을 받아들일 수 있다고 내다봤다. 미 싱크탱크 랜드연구소의 러시아 전문가 새뮤얼 채럽도 “러시아에게 휴전안 수용이 결코 불가능하지 않다. 현재 미국 정부와의 관계에 이익이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단, 휴전을 받아들이되 최대한 유리한 조건을 추가하려 할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블룸버그통신은 크렘린궁 상황에 밝은 복수의 소식통을 인용해, 푸틴이 자기 조건대로의 휴전 성사를 원하며 합의까지 시간을 끌 것이라고 보도했다. 러시아와 국경을 맞댄 우크라이나의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가입을 저지하며 옛 소련권 국가들인 중·동유럽에 대한 나토 영향력 축소를 이번 ‘군사작전’의 궁극적 목표로 설정했다고들 하지만, 그 이전에 우크라이나 내 러시아계 문제가 있었음을 외면해선 안 된다. 모어와 취업기회 등을 빼앗긴 채 2등 시민으로 전락한 이들 돈바스 지역 러시아계 주민들이 저항하면서 약 10년 계속된 내전은 젤렌스키 대선 공약의 파기에 따른 결과였다.

러시아의 친정부 성향 정치 분석가 세르게이 마르코프가 블룸버그 인터뷰에서 푸틴이 휴전에 동의하기 전 우크라이나에 대한 서방의 무기 전달을 휴전기간 중단하는 등의 전제조건을 제시할 수 있다고 예상했다. 카네기 러시아 유라시아 센터의 타티야나 스타노바야 선임연구원은 블룸버그에 “푸틴이 확실한 ‘예’나 ‘아니오’를 내놓진 않을 것”이라면서 “휴전을 위한 몇몇 제스처를 내놓을 만한 대단히 좋은 상황이 온다 하더라도 이는 매우 가혹한 조건이 걸린 일시적인 것에 불과하다”고 지적했다.

임명신 기자 imms@skyedaily.com 기자페이지 +

후원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