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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의 신이 있다면 육·해·공을 구별했을까? 아이언맨은 육군인가, 해군인가, 공군인가.”
12일 서울 용산 워랩(WarLab)에서 만난 천종웅 광운대 교수(육사 49기)는 인터뷰의 첫 문장을 이렇게 꺼냈다.
전장을 군종별로 쪼개 온 낡은 관성부터 의심해 보자는 문제의식이었다. 그는 “AI 전쟁은 군종의 경계를 지우고 하나의 네트워크와 지휘 체계로 통합되는 방향으로 가고 있다”며 “데이터 러닝과 자율 무기가 실시간으로 표적을 식별하고, 우선순위를 매겨, 타격까지 이어지는 속도전이 핵심”이라고 말했다.
천 교수는 클라우제비츠의 정의를 상기시켰다. 전쟁은 단순한 무력 충돌이 아니라 상대 의지를 꺾는 총체적 행위라는 것이다. “군사력뿐 아니라 국민 의지, 경제력, 정보력까지 들어간다. AI 전쟁은 이 총체를 데이터와 알고리즘으로 묶어내는 시도다. 지상·해양·공중·사이버·우주가 하나의 지휘망에서 움직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가 반복해 강조한 키워드는 ‘통합’과 ‘속도’, 그리고 ‘정확성’이었다. 인터뷰 내내 우크라이나 전쟁과 이스라엘·하마스 전쟁이 사례로 소환됐다. 드론과 위성, 사이버전과 여론전이 한 몸처럼 결합한 장면들을 그는 ‘현대전의 민낯’이라 불렀다. 천 교수는 “전장은 늘어났고 인간의 한계는 기술이 보완한다. 예전에는 병과·군종이 기능을 나눴지만 지금은 24시간 감시·분석·결심·타격이 통합되어 끊김 없이 돌아간다”고 단언했다.
심리전과 전자전은 ‘인지전’이라는 이름으로 디지털로 융합되고, 군사력과 경제·외교·사이버 수단이 동시에 투사되는 하이브리드전이 일상화됐다. 평시와 전시, 전방과 후방의 경계가 희미해졌다는 진단이 뒤따랐다.
그 통합의 기술적 인프라로 그는 JADC2(합동 전 영역 지휘통제)를 지목했다. 천 교수는 “센서가 본 것을 AI가 이해하고, 최적 표적을 추천하고, 사수가 ‘지휘된 자율’로 타격하는 구조다. 결국 상황 인식부터 사격까지 OODA 루프를 압축하는 싸움이 된다”고 했다.
△ISR·표적화 △방공·대드론, 지휘 결심 지원 △AR·VR 훈련, 통신·보안 같은 분야가 AI로 다층 연결되는 양상을 그는 조목조목 설명했다.
천 교수는 “드론·위성·지상 센서의 데이터를 AI가 융합해 실시간으로 표적을 분류하고 우선순위를 바꾼다. 저고도·저피탐 표적도 잡아내고, 재밍과 하드킬을 연동한다”며 “생성형 AI는 COA(Course of Action: 대안)를 제안해 지휘관의 판단 속도를 높이고, AR·VR은 저비용 고강도 훈련을 가능하게 한다”고 했다. 계속해서 “통신망은 트래픽 패턴 분석으로 침입과 취약점을 조기에 찾아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AI 전쟁의 최전선, ‘사람의 머릿속’이 전장
딥페이크·댓글 조작 등 인지전 실전 양상
인간 최종 승인을 위한 AI 교전규칙 재정립
최근 들어 주목받고 있는 AI 전쟁의 핵심 키워드는 당연 인지전이다. 그는 ‘사람의 머릿속을 전장으로 만드는 전쟁’으로 인지전을 규정했다.
천 교수는 “딥페이크와 가짜 뉴스, 댓글·랭킹 조작이 대표적으로, 실전에서는 수만 개의 가짜 계정이 SNS 여론을 기계적으로 증폭하고, 사이버 공격·경제 제재·외교 압박과 결합한다. AI는 여기서 최적 타이밍과 최대 강도의 집행을 가능하게 할 것”이라고 언급했다.
결국 온라인의 모든 사용자가 잠재적 ‘전사’가 되는 시대라는 진단이다. 그러나 그는 기술 낙관주의자가 아니다. 인터뷰 도중 “저도 AI 시대가 두렵다”라는 말이 여러 번 나왔다.
그는 “거대 모델의 자기 복제·진화는 통제 이탈의 소지를 남긴다. 악의적 개발이나 해킹이 결합하면 금융·에너지·무기체계가 위험해질 수 있다. 최악의 경우 자율 오판과 핵 문턱이 결합하는 시나리오까지 상상해야 한다”고 밝혔다.
위험은 어디에서 생기는가. 그는 자율성의 오판, 적의 사이버 침투, 인간 통제의 이완을 꼽았다. “AI가 맥락을 오해해 표적을 잘못 고를 수 있다. 적은 데이터 포이즈닝이나 모델 탈취, 링크 재밍과 스푸핑으로 우리의 감각을 무력화하려 들 것이고, 통신이 흔들리는 상황에서 인간의 개입과 감독이 무너지면 오판이 사고로 번질 것”이라고 설명했다.
해법도 분명했다. “핵 공격과 같은 치명적 타격에는 인간이 최종 승인해야 한다. 학습 데이터 검증과 모델 수명 주기 관리를 강화하고, 레드팀·워게임으로 오판·오용 시나리오를 상시 모의해야 한다. 센서·링크·결심은 분산·다중화해 단일 실패 지점을 없애야 하고, 무엇보다 AI 시대에 맞는 교전규칙과 책임 구조를 다시 써야 한다”고 강조했다.
AI 시대 전쟁의 본질이 바뀌느냐는 질문에는 고개를 저었다. 그는 “본질은 변하지 않을 것이다. 다만 안개를 걷는 능력과 속도는 기술이 결정한다. 위성·드론이 시야를 넓히면, 적은 기만과 재밍으로 다시 안개를 짙게 만든다. 공격과 방어, 시야와 기만의 무한 게임일 뿐”이라고 단언했다.
“전쟁을 공부하는 서점” 워랩
용산 10평 남짓 공간서 시작한
한국 유일 전쟁·군사 독립서점
이야기는 자연스럽게 용산의 작은 서가로 옮겨왔다. 이런 문제의식을 실제로 옮겨놓은 공간이 바로 워랩이다. 2024년 1월 문을 연 워랩은 한국에서 유일한 전쟁·군사 전문 독립서점이다. 삼각지와 신용산 사이 10여 평 남짓한 공간에 국내외 전쟁사·군사 서적이 벽면을 가득 채웠다. 절판본도 적지 않다. 정기 북토크와 연구 모임이 열려 학자·군인·기자·학생·일반인이 뒤섞인다.
『초한전』 번역자 이정곤 박사가 초청 강연을 했고, 나가시노 전투를 주제로 한 자리에서는 주한 일본대사관 무관이자 패장 다케다 가문의 후손이 직접 발표를 하기도 했다. 사관생도와 사학과 학생, 자영업자와 대기업 직장인, 이른바 ‘밀덕’까지 군인과 일반인이 반반씩 드나든다. “교보문고보다 전쟁사 책이 많다”는 학생들의 농담은 이 작은 공간의 존재 이유를 확인시켜 줄 때가 많다.
왜 하필 서점이었을까 묻자 그는 “외침의 기억을 교훈으로 바꾸려면 기록과 토론의 공간이 필요했다”고 답했다. “경복궁에서 시작된 청일전쟁의 첫 교전조차 이름조차 없다. 한국은 전쟁을 감정적으로만 대하고 기록을 소홀히 해왔다. 작은 교전에도 이름을 붙여 기억하는 나라가 강하다”고 했다.
워랩은 그래서 ‘사랑방’이자 ‘진지’다. 한국형 상무 문화를 복원하는 거점이기도 하다. 운영은 만만치 않다. 첫해 매출은 약 1300만 원, 순이익은 한 달 월세와 비슷한 10% 남짓이었다. 도매 위탁 대신 전량 선결제로 책을 들여오고 “안 팔리면 내가 읽으면 된다”는 태도로 버틴다.
대학 강의와 방산·기관 연구 과제 수입은 서점으로 흘러들어간다. “군인 연금에는 손대지 않겠다”는 약속으로 시작했다. 그는 “돈이었으면 시작도 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힘을 주어 말했다.
그의 군에 대한 애착은 뿌리부터 남달랐다. 여덟아홉 살 무렵 읽은 ‘칭기즈칸’ 전기가 군인의 꿈을 심었고, 1993년 소위로 임관해 육사 교장 전속부관, 육사 순환직 교수, 35사단 남원 대대장, 합참 전력기획, 과학화경계사업단을 거쳤다.
2015년 제대 이후에는 전적지를 걸었다. 노르망디의 모래사장을 밟으며 상륙지 선택의 이유를 체감했고, 하드리아누스 방벽에서는 로마군의 보급과 진지 개념을 상상했다.
2019년 영국 킹스칼리지 전쟁학과에서 ‘첨단 재래식 무기로 북핵을 억제할 수 있는가’를 따져본 뒤, 옥스퍼드대 CCW(Changing Character of War Center) 방문연구원으로 과학기술과 안보의 접점을 팠다. 결론은 간명했다. 재래식만으로는 불충분하며, 한국의 공론장은 과학기술·전략·정치를 함께 엮어 검증해야 한다는 것.
천 교수는 현재에도 ‘기억–토론–준비’라는 세 단어를 입에 올린다. 다음 목표를 묻자 “한반도에서 벌어진 전쟁사를 초등학생도 읽을 수 있는 ‘전쟁 아틀라스’로 엮겠다”고 했다. 기억을 교과서 밖으로 꺼내 오겠다는 뜻이다.
대화는 다시금 안보 현안으로 옮겨왔다. 한국에 적용하면 무엇을 가장 먼저 해야 하느냐는 질문에 그는 “기술보다 아키텍처와 거버넌스가 먼저”라고 잘라 말했다. “한국형 JADC2를 현실화하려면 센서–타격–지휘망을 데이터 파이프라인으로 잇고, AI 결심 지원을 도입하되 인간 통제를 내장해야 한다. 동시에 인지전 대응 체계, 즉 미디어 리터러시와 위기 커뮤니케이션, 법·제도를 군·정부·플랫폼과 통합해야 한다. 평시에 민·군이 공진화하지 않으면 전시에 전환도 없다”고 했다.
요약을 부탁하자 답은 짧았다. 천 교수는 “AI 전쟁의 핵심은 통합된 분산과 속도이다. AI로 증강된 JADC2로 전장을 하나로 묶고, 인지전까지 포괄하는 하이브리드전을 설계해야 한다. 그 모든 위에 인간의 통제를 유연하게 얹는 것, 거기서부터 시작이다”라고 했다.
그리고 마지막 문장. “전쟁의 신이 있다면 지금처럼 전장을 나누지 않을 것이다. 통합과 융합으로 효과를 극대화하려 할 것”
그는 말을 멈추고 서가를 훑어보았다. 모서리마다 꽂힌 책등이 빽빽했다. 전쟁을 공부하는 서점에서, 전쟁을 통제하는 법을 묻는 일. 워랩의 하루는 그렇게 이어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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