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선경 연재소설 ‘위선의 시대’ [2] 그런 이유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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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선경 필진페이지 + 입력 2024-12-09 06:20:03

앞뒤 설명 없이 무작정 치고 들어오는 수정의 앙칼진 말에 승연은 고개를 갸우뚱했다. 당황하기에는 여전히 사태 파악이 되지 않았다. 뭔 소리니. 난데없이 뭘 하고 다녔냐니? 수정은 따지듯 같은 말을 반복했다. 도대체 학교 때 뭘 하고 다녔냐니, 그게 뭐 어떻다는 얘기인지 여전히 승연의 이해는 상황을 따라오지 못하고 있었다. 그리고 뭘 하고 다니든, 그게 그렇게 발끈해서 물을 문제인가.

승연이 눈을 끔뻑거리는 사이 수정이 그제야 설명을 붙이기 시작했다. 정제되지 않은 날것의 말들이 수정의 입에서 튀어나왔다. 돌 던지다가 만날 경찰서 들락거렸다며. 몇 날 며칠 한방에서 남자들하고 매일 같이 자고 그랬다며. 술도 마시고 담배도 피웠다며. 옷도 홀라당 벗고 알몸으로 무슨 의례도 하고 그랬다며. 의례? 그 단어는 수정의 것이 아니다. 딸은 아직 그런 어려운 말을 대화 속에 섞어 쓰지 못한다. 그러니까, 들은 얘기였다. 남의 언어였다. 행여 가슴에서 쿵쾅대는 방망이질 소리가 들릴까 봐, 승연은 가슴을 부여잡고 물었다.

“얘, 대체 무슨 얘기를 어디서 누구에게 들었는데?”

“승준이 엄마가 그러더라. 아는 사람이었다고. 엄마가.”

내가 승준이 엄마의 아는 사람이라니. 그럴 수 있다. 나는 그를 모르고 그는 나를 아는 경우는 흔한 일이다. 나 또한 종종 그렇기에. 그런데 승준 엄마의 말은 일상적이지 않았다. 고의를 넘어 악의가 질펀한. 그렇지 않고서야 남의 딸에게, 설사 사정이 그렇다 하더라도 그런 이야기를 할 수가 있나. 승연의 상식으로는 그 여자를 이해하기 어려웠다. 수정이 다 발산하지 못한 화를 제 방문에 퍼부으며 쾅 소리와 함께 들어갔을 때 그제야 승연의 머릿속에 지나가는 일들이 있었다. 그래서 그랬다고? 겨우 그런 게 이유라고?

며칠 전이었다. 그날 승준네와 저녁을 먹었다. 수정이와 승준이가 초등학교·중학교를 내내 같이 다닌 덕분에 ‘언제 밥 한번 먹어요’는 두 집의 인사말이었다. 그 약속은 몇 년이 지나 드디어 실현되었다. 승준이가 반에서 1등을 했다며 저녁을 사고 싶다고 했다. 수정이도 다섯 손가락 안에는 들었기 때문에 그다지 불편하지 않았다. 고기나 구워 먹겠지 했는데 예약 장소는 이탈리아 식당이었다. 나쁘지 않았다. 음식은 이해할 수 있는 수준의 난이도였고 혀가 감지할 수 있는 식감이었다.

아이 자랑 정도는 참아 줘야지. 나라도 그럴 게 빤하잖아. 승연의 그날 전략이었다. 그러나 무난하다 못해 밋밋한 대화가 엉뚱하게 흘러간 것은 올해 대선이었다. 한쪽은 지난 5년을 지긋지긋해하고 있었고 다른 한쪽은 그 5년이 더 연장되기를 바랐다. 승연은 지겨워하는 측에서도 상급이었다. 살았던 시절과 반대로 승연은 그쪽 진영을 혐오했다. 아니, 보낸 세월이 그랬기 때문에 그랬을지도 모르겠다. 승준 엄마는 한쪽 후보가 마음에 안 드는지 엘리트 코스를 밟아 온 그가 사람 사는 일에 대해 뭘 알겠냐는 설명이었다. 그렇다고 구두에 양주를 부어 마셨다는 얘기가 식사 자리에서 할 말인가. 마음이 꼬이기 시작했다.

[글 박선경 일러스트 임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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