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고 나면 모두 뒤집어질 작가 한강의 멘탈리티를 드러내 볼 생각입니다.” 며칠 전 조희문 전 영화진흥위원장과의 통화에서 그렇게 호언했다. 내 판단은 이렇다. 작품 속 주인공이나 화자(話者)의 말이란 결국 작가의 분신이니까 그걸 통해 많은 걸 추론할 수 있다. 그런 작업을 거쳐 ‘한국 문학이 낳은 괴물’인 한강을 분석하는 작업은 꼭 필요하다. 이 칼럼은 그 첫 작업이다.
우선 광주5·18을 다룬 ‘소년이 온다’를 보면 소설임에도 전두환이란 이름이 실명(實名)으로 수도 없이 노출된다. 그때마다 살인자·학살자란 수식어가 반드시 따라붙는다. 전두환은 몸서리쳐지는 국가 폭력의 상징이란 걸 독자에게 주지시킨다. “광주는 고립된 것, 힘으로 짓밟힌 것의 다른 이름이었다”는 말도 반복한다. 이게 뭐지? 그건 한강이 책임있는 지식인이 아니라 지역감정에 포로가 된 광주의 딸 수준임을 새삼 암시한다.
그가 심히 뒤틀린 역사 인식을 뿌리 깊게 가졌음을 보여 주는 대목도 수두룩하다. 역사 속의 인면수심의 잔인함과 폭력의 사례를 언급하면서 그는 이렇게 말한다. “제주도에서, 광동과 난징에서, 보스니아에서, 모든 신대륙에서 그렇게 했던 것처럼…”(창비판 ‘소년이 온다’ 135쪽). 얼핏 평범해 보이는 문장인가? 뜯어볼수록 고약한 진술이고, 한강의 멘탈리티가 한눈에 들어온다.
즉 아우슈비츠의 사례도 곧잘 언급하던 한강의 머리엔 대한민국 제주4.3, 군국주의 시절의 일본, 1990년대 보스니아 내전, 그리고 수백년을 거슬러 올라가 아메리카 신대륙을 차지한 콜롬부스와 미국의 폭력이 다 한 세트란 뜻이다. 그럼 왜 그는 크메르 루즈의 킬링필드나 동족 7000만 명을 죽인 문화혁명·대약진운동을 일으킨 마오쩌둥은 언급하지 않는 걸까. 벌건 대낮에 탱크로 수천 명을 깔아 죽인 천안문 사태의 덩샤오핑도 왜 건너뛸까.
당연히 1930년대 수백만 명 우크라이나 국민을 굶겨 죽인 스탈린의 잔학성도 패스다. 감 잡히는가. 크메르 루즈·마오쩌둥·덩샤오핑·스탈린 등은 모두 공산주의자이다. 그래서 무죄다. 한강은 철두철미 좌익 무죄·우익 유죄의 잣대를 가지고 있다. 한강은 깨시민(깨어 있는 시민)에 속하고, 미국 식으론 워크(woke·정치적 각성) 쪽이다.
문제는 그런 삼류 리버럴이 어느 순간 친공산주의·반대한민국 쪽으로 왕창 기울어져 이젠 손쓰기 힘들어진 케이스가 바로 한강이라고 볼 수 있다. 그걸 재삼 보여 주는 게 ‘작별하지 않는다’다. 거기에서 한강은 서청(서북청년회)을 극우라고 욕하고, 빨갱이를 맘대로 죽여선 안 된다고 절규하며 미군정을 손가락질한다. 도저히 대한민국 국민이라 볼 수 없는 수준이다. 결정적으로 한강은 1960년대 파월 국군을 무한 저주한다.
아시는가. 월남 파병 얘기와 전혀 무관한 주제인 소설 ‘채식주의자’에도 월남 파병 얘기가 약방의 감초처럼 등장한다. 여주인공 영혜에게 손찌검질하는 아버지를 두고 월남에 파병됐던, 그래서 폭력적인 성향을 가진 사람이라고 떡 하니 설정하는 식이다. 한강에게 월남 파병은 악의 꽃이다. 그런 월남 파병 얘기는 ‘소년이 온다’ ‘작별하지 않는다’에도 반복해서 나온다.
그런 한강의 나이브함, 철딱서니 없음, 아니 제정신이 아님을 보여 주는 대목은 따로 있다. ‘소년이 온다’에서 계엄군 총을 맞고 죽는 걸로 설정된 열다섯 살 소년 정대를 기억하나? 영혼으로 등장하는 그가 이렇게 말한다. “우리 군대가 총을 쐈어…. 난 목이 터져라고 애국가를 따라 불렀는데. 그들이 내 옆구리에 뜨거운 불덩이 같은 탄환을 박아 넣었다”는 식이다.
독자는 울분을 토해 낼 것이다. 하지만 그 대목은 영화 ‘화려한 휴가’의 그 악명높은 설정을 그대로 이어받은 것이다. 5·18 당시인 1980년 5월21일 도청 앞에 모여 애국가를 부르는 시민군에게 국군이 일제사격을 가했다는 최악의 조작질을 재설정한 것이다. 그렇게 주인공인 소년 정대가 죽었으니까 온 세계는 슬퍼하라는 식이 그 작품이다. 정색하고 한강 당신에게 물어보자.
대한민국 군대는 실탄 없이 빈 총을 든 허수아비 의장대에 불과한 것일까. 44년 전 끔찍한 도시 폭동을 일으킨 시민군을 상대로 그냥 무기력하게 당하고 있거나 방치했어야 하는가. 그렇게 하는 게 국가 폭력을 피하는 아름다운 공동체라고 당신은 믿고 있는가. 만일 그렇다면 당신이야말로 정치적 몽유병자 혹은 센티멘탈리즘에 빠진 풋내기 여고생에 불과하다.
그런 한강에게 꼭 1년 전 스카이데일리에 보도됐던 5·18 당시 주한미사령관이던 존 A 위컴의 당당한 발언을 들려 드릴까 한다. “위컴 장군 ‘총 뺏은 폭도는 소탕 마땅’. 부제목도 이렇게 못을 박아 놨다. “공권력에 대응하는 (폭도의) 권력은 절대 있을 수 없어.” 오늘 얘긴 여기까지다. 한강은 ‘한국 문학이 낳은 괴물’이 맞고, 치유불가능한 병적 멘탈리티를 가진 환자다.
후원하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