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선경 연재소설 ‘위선의 시대’ [21] 펜과 돌멩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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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선경 필진페이지 + 입력 2025-01-08 06:30:42

오월 말까지도 돌팔매질은 멈추지 않았다. 수원 지역에서 격렬하게 시위를 벌인 대학은 한신대가 으뜸이었다. 다른 학교에서도 간헐적으로 시위가 이뤄지긴 했지만 그리 위협적이진 않았다. 종종 수원역에선 수원 지역 연합 기습게릴라 시위가 벌어지기도 했다. 수원의 여러 지역 대학 통학버스와 수원에 공장을 둔 대기업 통근 버스가 집결하는 곳이라 게릴라 시위가 시작되면 그야말로 아수라장이었다.

정보를 입수한 사복 경찰관은 물론, 전경들이 하루 종일 역 앞에서 진을 치고 있었다. 학생과 직장인을 실어 나르는 버스 기사들은 시위 학생들을 잡아갈 닭장 버스들이 그들 자리를 자치하고 있어 주정차하려면 계속 이동해야 했기에 불만이 많았다. 버스 기사들의 불만은 날카로워진 자영업자·시민들의 기분에 비하면 애교였다. 시위가 시작되면 자영업자들은 가게 문을 닫아야 했고 시민들이 그 피해를 고스란히 떠안아야 했다.

시위 학생들도 버스를 타고 수원역에 집결해야 했기에 사복 경찰들은 역에 도착해 버스에서 내리는 학생들의 동태를 일일이 점검했다. 간혹 시위 주동자·적극 개입자로 의심되는 학생을 몇몇 붙잡아 가방 검사를 하거나 학생증을 확인하는 등 신경전을 벌였다. 가방에서 교재 겉 부분에 저자 이름이 막스 베버라 되어 있어도 연행했다. 막스 베버와 칼 막스 차이를 모르는 건 중요하지 않았다. 운동권 학생들이 일반 학생들 사이에 섞여 학교 버스를 타고 내리는 일은 없었다.

그들은 학교 수업을 빼먹고 수원역 모처에 있다가 통학·통근 버스들이 모여드는 시간에 맞춰 등장했다. 역 앞 집회에서 화염병이나 돌멩이는 등장하지 않았다. 시민들을 공포로 몰아넣지 않으려는 배려는 시위대나 공권력이나 마찬가지였다. 폭력 시위로는 시민의 공감을 얻어 낼 수 없다는 걸 알았던 것이다. 다만 시위대의 구호는 위협적이었다.

누군가 ‘독재 타도’를 선창하면 조를 짠 듯이 열 명·스무 명씩 모여 뛰면서 구호를 외쳤다. 또 한 무리는 어깨동무를 한 채 좌우로 흔들며 ‘임을 위한 행진곡’을 불렀다. 수원역 앞 시위는 시위대의 존재감을 드러내는 퍼포먼스가 목적이었는지 두어 시간 목청을 높였다가 저녁 식사 때가 되면 가게들은 문을 열었고 시위대는 뿔뿔이 흩어져 술집 어디론가로 사라졌다.

기말고사가 시작되자 시위는 한풀 꺾였다. 일부 학생들은 시험 기간 중에도 교문 밖까지 나가 구호를 외쳤지만 호응이 많지는 않았다. 대부분은 돌멩이는 던져 두고 펜과 노트를 들고 도서관에 모여들었다. 수업에 한 번도 들어오지 않았던 박철규도 도서관을 기웃거렸다. 노트 필기 잘한 은영과 기순이한테 노트를 보여 달라며 사정하는 모습에선 웃음이 나왔다. 독재정권 타도가 인생의 목표라더니 수업 내용을 모르면서 남이 필기한 노트만 보고 시험을 치르겠다는 발상은 뭔지.

도서관에서 뜨문뜨문 윤희숙을 볼 수 있었다. 멀리서도 하얗고 맑은 윤희숙의 피부는 도서관에서 더 빛났다. 시험공부를 하는지 다른 공부를 하는지 알 수 없었다. 다만 돌멩이 든 올리비아 핫세는 어울리지 않았다.

[글 박선경 일러스트 임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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