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선경 연재소설 ‘위선의 시대’ [20] 탈춤, 사물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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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선경 필진페이지 + 입력 2025-01-07 06:30:19

운동권이라고 같은 편만 들지 않고 중립적으로 판단한 희숙에게 믿음이 생겼다. 박철규 입장에서야 희숙이 승연 편을 든 거겠지만. 주문한 음식이 나왔다. 윤희숙은 뿌옇게 김이 서린 안경을 벗었다. 안경을 벗은 윤희숙의 눈은 맑았다. 작렬하는 카리스마 선배 이미지도, 운동권 강성 여학생 이미지도 없었다. 푸짐한 점심 한 그릇에 마냥 행복한 어린 소녀 같았다. 윤희숙은 닭개장을 개인 접시에 담아 호호 불어 가며 승연에게 물었다.

“너희 둘, 농반이나 탈반 동아리에 들어오지 않을래? 나는 탈반, 태주는 농반 동아리에 있어. 서울에 있는 몇 개 대학 연합동아리 같은 데서도 활동할 수 있고, 오산에선 일주일에 한 번 수요일 모임이 있거든. 같이 하면 좋을 것 같은데 어때?”

승연이 수제비를 입에 넣다 말고 물었다. “탈춤, 사물놀이요? 사자머리 뒤집어쓰고 장구 치고 꽹과리 치는 그거요?” “응, 맞아. 탈바가지 뒤집어쓰고 장구 치고 북 치고 꽹과리 치고 징 치는 그거, 사물놀이.” 승연은 입에 있는 수제비를 오물오물 씹으며 시큰둥하게 대답했다.

“우리 동네에 미친 사람이 하나 있는데 매일 꽹과리 치고 다녀요. 들어 보면 집 나간 여편네 욕이더라고요. 꽹과리라면 지긋지긋한데 그걸 저보고 모여서 하자고요? 음악·영화·그림 등이 예술이라 치면 예술은 사람의 감성을 깨우치는 역할을 한다고 생각해요. 그런 게 예술이라고 생각하는데 전 사물놀이가 감성은커녕 소음에 가깝다고 보는 사람이라. 게다가 저는 폐소공포증이 있어서 사자 머리 뒤집어쓰면 숨 막히거든요.”

쉴 틈 없이 이어지는 승연의 말에 윤희숙과 김태주는 뭐 이런 게 다 있어? 하는 표정이었지만 그렇다고 화를 내는 것 같지는 않았다. 이제껏 한마디 하지 않던 김태주가 입을 뗐다.

“박철규 같은 친구가 사물놀이 동아리에 들어와야 하는데 그 녀석은 거부하더라고. 녀석에겐 충동조절장애가 있어. 전두엽 기능이 떨어진 사람은 조절이 안 돼서 작은 스트레스에도 충동적인 행동을 쉽게 해. 전두엽 기능이 망가진 경우, 변연계에서 큰 스트레스가 일어나도 전두엽에서 이를 잘 조절해 주면 되는데 그게 안 되는 거지.”

승연은 피식 웃었다. 박철규가 과도하게 흥분하기로서니 전두엽 어쩌고 변연계 어쩌고 하는 건 너무 나간 거 아닌가 싶었다. 태주는 승연이 웃는 걸 봤는데도 진지하게 말을 이어 갔다.

“사물놀이가 인간 정서에 얼마나 도움이 되는지 모르고 하는 소리야. 음악치료 중에도 사물놀이가 있어. 타인에게 쏟았던 분노·공격·열등감 같은 감정이 감소하고 또 스트레스가 해결되는 느낌이 들지. 부정적인 요인은 낮아지고 신기하게도 자신감과 상대와 교감하는 능력이 생겨. 자신이 모르는 세계에 대해 단정하는 것만큼 교만한 것도 없지. 나중에는 배워 두길 잘했다, 선택한 동아리 활동 중 가장 유의미한 활동이었다,고 생각할 건데. 폐소공포증 있다니까 더 권유하지는 못하겠고.”

그걸로 끝이었다. 그날 이후 윤희숙과 김태주를 학교에서 두어 번 마주쳤지만 둘 다 농반 이야기는 꺼내지 않았다.

[글 박선경 일러스트 임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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