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남자한테 참 좋은데, 정말 좋은데…’ 방송이라 설명할 방법을 찾지 못했던 시대의 명약 산수유. 한방에서 산수유는 신장·생식기능을 원활하게 하고 혈액순환과 자양강장에 도움이 되는 것으로 나와 있다.
전남 구례 산동면은 국내 최대의 산수유 산지다. 국내에서 유통되는 산수유의 3분의 2가 이곳에서 생산된다. 돈이 되는 것은 산수유 빨간 열매지만 열매를 부르는 것은 산수유 노란 꽃이다. 웬만한 꽃들은 추워서 나올 생각도 안 하는 3월. 봄의 전령사 산수유가 꽃망울을 활짝 터트린다.
외투도 없이 모자도 없이 눈 속에서 씩씩하게 싹을 틔우는 노란 꽃. 꽃부터 이렇게 정력적이니 열매의 힘은 오죽할까. 거친 눈보라 속에서도 떨어지지 않고 나뭇가지에 꼭 붙어 있는 게 산수유 열매다.
구례 산동면과 중국 산둥성


산동면 하면 중국 산둥성(山東省)이 생각난다. 실제로 두 지명은 관련이 있다고 한다.
지금으로부터 1000년 전, 중국 산둥성에 살던 처녀가 지리산으로 시집오면서 자기 집 뜨락에 심어진 작은 산수유나무 한 그루를 가져왔다. 본디 중국 산동반도는 산수유 주산지로 통하는 곳이다.
처녀가 지명도 함께 가져온 것인지, 원래부터 산동면이었는지 모르지만 처녀 덕에 구례 산동면도 산수유마을로 크게 성장했다.
산동면 계척마을에는 처녀가 시집올 때 가져온 산수유 시목(始木)이 있다. 나이로 치면 1000살이다. 나이가 많은 만큼 둥치가 굵다. 둘레만 물경 4.8m에 이른다. 구례 전역에 심어진 산수유나무는 이 나무가 조상인 셈이다.
신기한 것은 1000살이 넘었는데도 이 시목이 해마다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는다는 것이다. 사람으로 치면 1000살 먹은 호호 할머니가 자식을 낳는 셈이다. 산수유가 정력의 나무인 것은 헛말이 아닌 듯하다.
구례에는 산수유 시목이 하나 더 있다. 계척마을에서 동쪽으로 3km 지점 달전마을에 있는 할아버지 나무가 그것이다. 이 나무의 수령은 300년이다.
생각해 보면 중국 산동에서 온 시집온 처녀가 나무만 이식했을 리 없다. 지리산 골짜기를 채운 산수유나무 숫자만큼 자식을 낳았을 터, 산동면과 중국 산동은 핏줄로도 이어져 있는 셈이다.
열 개의 마을 열 개의 풍경



구례 북쪽 멀리 지리산이 바라다보이는 견두산 자락에 자리한 현천마을은 현천저수지를 끼고 있어 유난히 풍경이 아름답다. 이곳은 다른 마을에 비해 산수유나무가 두 배나 많다. 저수지에 산수유 꽃그림자까지 계산하니 그렇다는 것이다.
이곳은 마을 입구에서 시작해 현천 전망대와 견두산 등산로 분기점을 거쳐 다시 마을로 돌아오는 지리산 둘레길 5코스가 지나는 길이다. 마을 전체가 포토존이어선지 TV 예능프로그램이 다녀가기도 했다. 2차원적인 고요와 평화를 만끽하기 좋아 많은 방문객이 찾고 있다.
반곡·평촌마을은 서시천 나무데크를 따라 꽃길 산책을 즐기기 좋은 곳이다. 상위마을은 구름도 쉬어간다는 해발 500m 지점에 자리 잡은 산촌으로 위상에 따라 달라지는 3차원적 역동성이 매력이다.
시목나무가 있는 계척마을의 ‘산수유사랑공원’에는 ‘산수유’와 ‘사랑’을 주제로 다양한 조형물이 설치돼 있다.
제26회 구례산수유꽃축제가 15일부터 23일까지 전남 구례군 산동면 지리산온천 관광지 일원에서 개최된다. 이번 축제는 ‘영원한 사랑을 찾아서’라는 주제로 오전 10시 산동면 계척마을 시목지에서 풍년기원제와 함께 시작된다.

오후 6시부터 열리는 개막식에는 임창정·나태주·장예주·이정옥 등 가수들의 공연이 펼쳐진다. 그밖에 △산수유 열매 까기 대회 △산수유꽃길 걷기 △어린이 활쏘기 △세계 전통 놀이 체험 등 다양한 부대 행사가 준비돼 있다.
올해 축제는 구례군과 환경부·전남도가 협업해 일회용품 대신 다회용기를 사용하는 친환경 축제로 치러진다. 방문객 이동 편의를 위해 임시 주차장을 확보하고 셔틀버스를 2개 코스에서 운영한다. 산동면 관산운동장에는 별도의 캠핑카 존을 조성해 캠핑족의 편의를 돕고 있다.
산수유축제가 끝날 무렵인 22일 ‘구례 300리 벚꽃축제’가 시작된다. 3월은 구례에서 한달살기를 해야 할 듯하다.
천연기념물 매화가 두 그루 ‘화엄사’

구례를 방문했다면 지리산을 대표하는 사찰 ‘화엄사’를 그냥 지나칠 수 없다. 화엄사는 국보·보물·천연기념물이 가득해서 사찰이라기보다 박물관에 가깝다. 특히 3월 말에 만개하는 홍매화는 화엄사 최고의 경관으로 손꼽힌다.
국내에는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매화가 5그루 있다. △전남 순천 선암사 ‘선암매’ △전남 장성 백양사 ‘고불매’ △강원 강릉 오죽헌 ‘율곡매’ △전남 구례 화엄사 ‘들매화’ △구례 화엄사 ‘홍매화’가 그것이다.
화엄사 홍매화는 원래 천연기념물이 아니었지만 지난해 2월 새롭게 추가 지정됐다. 하지만 그전에도 고혹적이고 품위 있는 자태로 천연기념물을 뛰어넘는 스타 매화로 큰 사랑을 받아 왔다.
화엄사 홍매화의 가치는 수형·색깔·향기·위치에서 비롯된다. 벚나무가 풍성한 꽃송이로 승부한다면 매화는 ‘수형’으로 말한다. 기품 있는 사람이 절제를 미덕으로 갖추듯 매화나무 역시 절제된 꽃송이로서 고결한 자태를 유지한다. 절제된 개화는 나무의 수형을 고스란히 드러내 준다.
수령 300년의 화엄사 홍매는 줄기가 꼬인 채 성장했다. 위로 자라면서 땅을 향해 줄기를 뻗어 내린 이유가 있을 듯하다. 뒤틀리고 굴곡진 수형에서는 비장한 아름다움이 뿜어져 나오고, 붉다 못해 흑색에 가까운 꽃송이에서는 노거수의 절제가 느껴진다.
화엄매는 높이 8.2m에 가슴높이 둘레 1.6m로 매화나무로는 드물게 규모가 크다. 꽃이 피고 지고를 325회나 반복하며 꿋꿋하게 키를 키운 매화의 품격과 인내라니! 뒤에 버티고 선 각황전은 단청이 없어 붉은 매화의 아름다움을 더욱 돋보이게 해 준다.



또 하나 화엄사에서 꼭 보고 와야 할 것은 ‘사사자 삼층석탑’과 석등이다. 사사자 삼층석탑은 사실 너무나 평범하고 수수해서 대단한 구경거리라고 할 수는 없다.
그러나 자세히 보면 탑을 떠받친 네 마리의 사자 너머로 작은 인물이 합장하는 자세로 서 있는 걸 볼 수 있다. 그리고 마치 짝처럼 맞은편 석등 안에 무릎을 꿇고 차를 올리는 스님이 있다. 차를 올리는 분은 연기조사, 탑 속에서 합장하고 있는 인물은 그의 어머니라고 한다.
멀리 떠나온 연기조사가 고향의 어머니를 그리며 차를 올리는 장면이 한 편의 드라마처럼 흥미롭게 다가온다. 어느 화려한 석탑보다 이 수수한 석탑에 마음이 가는 것은 이런 묘한 긴장감과 애절함 때문이다.

80여 년 역사의 구례 동아식당은 가오리찜·돼지족탕으로 유명하다. 워낙 매스컴에 자주 등장하는 집이라 따로 설명이 필요 없지만 백종원은 ‘3대천왕’에서 “우족탕 혹은 일본 돈코츠라멘과 비슷한 향이 난다. 진하게 우려낸 국물이 일품이다”고 했다.
미나리와 파가 올라간 가오리찜은 이 집의 시그니처 메뉴로 부추를 곁들여 초장에 찍어 먹는 음식이다. 남도 맛집답게 밑반찬이 푸짐하고 맛난 것 또한 이 집의 특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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