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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달력에서 숫자로 보는 ‘날짜’와 ‘계절’을 농부는 몸으로 체험한다. 이동호 저자의 ‘어느 고독한 농부의 편지’에는 자연에 기대어 사는 삶이 주는 풍요로움을 다음 세대에 전해 주고 싶은 농부의 욕심으로 가득 차 있다.
농사란 게 그렇다. 씨를 뿌렸다고 반드시 열매를 내주는 게 아니다. 예상대로 딱 맞춰 기회가 오지 않는다는 점에서 농사는 인간의 삶을 닮아있다. 비와 바람과 햇볕은 인간 능력 밖의 일이라는 것을, 그래서 농부는 하느님 눈치만 보고 살아야 함을 깨닫는다.
걱정거리가 많아도 대부분 통제할 수 없는 일이기에 농부는 자연의 섭리에 순응하는 삶을 산다. 느리고 게으른 삶을 살아도 그 안에서 마주하는 소담한 행복이 있다.
제초제를 뿌리고 비닐로 땅을 덮어서 키운 감자와 마늘이 쉬이 물러지는 것을 보고 저자는 잡초를 이용해 잡초를 누르는 방식으로 농사를 짓는다. 그렇게 해도 수확량에는 큰 차이가 없었다. 그는 이 사실을 후배들에게 알려주고 싶어 한다. 농부가 된다는 것은 가장 좋은 것을 주고자 하는 부모의 마음을 갖는다는 것이다.
채소를 말리는 일과 메주를 빚는 일, 댑싸리를 묶어 비를 만드는 일, 아버지가 했던 일들을 따라 하는 자신의 모습에서 아버지를 만난다.
그는 아버지에게서, 그 아버지의 아버지에게서 전해 내려오는 삶의 이치들을 다시 후배들에게 전해 주는 것이 바로 어른의 임무라고 생각한다.
땅속의 뿌리가 어떤 삶을 사는지, 언제 아까시나무꽃이 피는지 알 길 없는 도시인은 농부의 편지에서 들큰한 벼꽃 향기를 맡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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