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민호의 오늘생각] 달콤씁쓸한 ‘그 개와 혁명’의 낭만주의

이 시간 주요기사

뉴스 > 연재기획

방민호 필진페이지 + 입력 2025-04-24 00:02:40

이상문학상을 처음 제정한 것은 잡지 ‘문학사상’이다. 이 잡지는 작고한 비평가 이어령이 1972년에 창간했다. 이어령은 창간호 표지를 화가 구본웅이 그린 이상의 초상화로 장식했다.

8·15의 해방공간과 6·25 전쟁 직후에 걸쳐 작가 이상은 극적으로 문학적 계보를 이루어 나간다. 김기림이 ‘이상 선집(백양당, 1949)’을 간행한 뜻을 이어받은 시인 박인환은 피난지 부산에서도 자신이 세상을 떠나던 1956년에도 이상의 추도식을 거행했다.

비평가 이어령은 ‘문리대 학보’에 ‘순수의식의 뇌옥과 그 파벽’을 써서 이상 연구의 개척자로 떠올랐다. 소설가 남정현은 ‘날개’의 ‘나’와 ‘아내’의 이항대립적 논법을 자신의 소설에 적극 수용했다. 뜻밖에도 작가 최인호의 ‘별들의 고향’은 이상의 소설 ‘날개’의 분신담적 요소를 김문오와 경아의 인물 관계에 계승한 것이었다.

이어령은 1977년에 이상의 문학정신을 기리는 이상문학상을 만들어 김승옥의 ‘서울의 달빛 0장’을 제1회 수상작으로 선정했다. 우여곡절을 거쳐 이상문학상은 지금 다산북스에서 주관하고 있다. 올해의 수상작은 예소연 작가의 단편소설 ‘그 개와 혁명’이다.

먼저 말해 둔다. 필자는 이상문학상을 둘러싼 어떤 문제 제기에도 관심이 없다. ‘그 개와 혁명’이 이상문학상에 걸맞은 값을 하느냐를 따질 것도 아니다. ‘그 개와 혁명’은 단편소설로서 일단 아주 성공적이다. 1인칭 화자의 남다른 ‘성격’도, 구성도, 문체도 모두 훌륭하다.

이야기 속으로 들어가면 화자인 삼십대 초반의 여성 주인공 ‘나’는 암을 앓다 세상을 떠난 아버지를 ‘태수 씨’라 부른다. 그럼으로써 ‘나’ 곧 ‘수민’과 ‘태수 씨’ 사이의 심정적인 거리는 ‘연인 관계’처럼 아주 가깝게 그려진다. ‘태수 씨’의 삶은 딸인 ‘수민’에 의해 ‘행복하게’ 이해된다. 그럼으로써 이 소설은 1980년대 중반 학번 ‘태수 씨’의 이른 죽음을 그리고 있음에도 일종의 ‘해피 엔딩’을 예약한다. 소설은 슬픔을 머금은 채 경쾌하고도 활발하다. 당돌하고도 사랑 많은 ‘나’의 ‘어법’, 곧 문체 덕분이다.

갓 서른을 지난 ‘수민’은 80년대 학생운동 세대 ‘태수 씨’의 가부장적 기질에 넌덜머리를 내는 ‘MZ 세대’다. 그러나 ‘수민’은 죽음을 앞둔 ‘태수 씨’를 정성껏 보살피고 여성임에도 장례식장에서 상주가 되기를 고집하고 그의 마지막 가는 길을 멋진 ‘해프닝’으로 마무리한다. 생전에 ‘태수 씨’를 무척 따랐던 개 ‘유자’를 ‘태수 씨’의 바람대로 장례식장에 데려와 난장판을 만드는 것이다. 수민은 이 퍼포먼스야말로 ‘우리의 적은 제도’라 하고 자신의 ‘본질’은 “모든 일에 훼방을 놓는 사람”이라 했던 ‘태수 씨’의 삶을 애도하는 진정한 방식이라고 여긴다.

문제는 여기서부터다. 필자는 이 유쾌한 한 판의 유머러스한 이야기를 즐겁게 읽고서도 흔쾌한 웃음을 얻을 수 없다.

‘그 개와 혁명’은 지난 30년 동안 한국 사회가 거쳐 왔고 또 지금 당면해 있는 현실을 지극히 ‘낭만적’으로 그림으로써, 모든 실재하는 심각한 이념적 갈등들의 이상적 화해를 실현한 한 판의 ‘유머극’이다. 유머는 인간의 결점과 우행을 필연적으로 부족할 수밖에 없는 인간 존재의 보편적 속성으로 이해하고 수용함으로써 얻어진다.

작품 속에서 학생운동 시절에 PD 계열(민중민주파)이었던 “태수 씨”와 NL 계열(주체사상파)이던 수진의 엄마는 머리핀 공장에서 만나 연애를 하고, 그렇게 해서 ‘골수’ NL 계열로 감옥에도 갔다 온 ‘성식’과도 친밀한 ‘작은’ ‘공동체’를 이룬다. 이 ‘공동체’는 세월이 흘러서도 ‘페이스북’ 같은 인터넷 ‘장치’를 통해 지속·존속되며 마침내는 ‘태수 씨’의 장례식장에서 유쾌한 ‘승리’를 거둔다.

어쩌면 이것은 ‘혁명적 낭만주의’의 승리다. ‘그 개와 혁명’에서 한국 사회의 지난 30년의 이념적·노선상의 갈등들은 행복하게, 낭만주의적으로 ‘봉합’된다. ‘혁명’은 현실에서 실현되지는 못했지만 ‘태수 씨’의 생의 마지막 국면의 ‘난장판’ 퍼포먼스로 ‘대리 실현’ 된다.

필자가 기억하는 ‘NL’과 ‘PD’의 노선이 꿈꾸던 세계는 그렇게 낭만적이지 않았다. 그 ‘혁명’의 얼굴은 아름답지 않았다. 이를 성찰하지 않는 사람들에게 ‘NL’이니 ‘PD’니 하는 영문자들은 언제까지나 낭만적인 혁명의 ‘기표’로 작용한다. 그러나 과연 그러했던가? 필자가 기억하는 ‘NL’이며 ‘PD’며, 작품에 등장하는 ‘메갈’ 같은 노선들은 그렇게 아름답지만은 않다. 그것은 제도의 전복을 단순하고도 명쾌하게 추구하는 아나키즘적인 유토피아니즘만은 아니었다.

그러한 이념들의 의미를 깨달은, 깊은 상처를 지닌 사람에게 ‘그 개와 혁명’의 낭만주의는 그 성공 때문에 오히려 씁쓸하고 허전한 것이다.

방민호 필진페이지 +

후원하기

정기 후원
일반 후원
무통장입금: 하나은행 158-910019-39504 스카이데일리
스카이데일리는 온라인 판 스카이데일리닷컴과 32면 대판으로
매일 발행되는 일간종합신문 스카이데일리(조간)를 통해 독자 여러분들과 만나고 있습니다. 후원자 분들께는 지면광고를 하고자 하실 경우
특별 할인가격이 제공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