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5년 8월6일과 9일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떨어진 ‘꼬마 소년(Little Boy)’과 ‘뚱보(Fatman)’라는 두 발의 원자폭탄으로 일본제국은 패망했다. 방사능이 섞인 검은 비가 내렸고 낙진은 도시 밖 50km까지 확산됐다. 즉사한 사람만 10만 명이 넘었고 각종 후유증으로 사망한 사람을 합치면 피해자는 25만 명에 달했다.
지금 일본은 그때의 일본이 아니며 오늘의 미·일 관계는 그때와 판이하다. 그래서 매년 8월이 되면 일본의 여러 모습이 오버랩된다.
일본은 좌절하지 않고 경제성장과 기술 발전을 통해 경제·기술 초강대국으로 부상했다. 안보를 미국에 편승하면서 국내총생산(GDP) 1% 이하의 국방비만을 지출한다는 이유로 에즈라 보겔이 1986년 포린 어페어스(Foreign Affairs)지를 통해 ‘국제적 책임을 회피한 채 이익만을 탐닉하는 경제강국’이라고 비아냥거리기도 했지만, 일본은 일찍부터 원자력 산업을 발전시켜 세계 3위의 원전국이 됐다. 1988년 미국이 ‘포괄적 동의’를 통해 일본에 농축과 재처리를 허용함에 따라 핵연료주기를 완성하고 세계 최대의 농축·재처리시설도 건설했다. 핵무기비확산조약(NPT)이 허용하는 범위 내에서 핵무기 잠재력도 키웠지만 레드라인을 준수했기에 핵무기 개발 시비에 휘말린 적은 없다.
동시에 ‘정상국가’의 꿈도 키워 왔다. ‘정상국가’의 정의에 따르면 일본이 꿈꾼 것은 ‘경제력에 걸맞은 정치·군사·외교 능력을 갖춘 국가’이지만 달리 보면 이것은 사실 신보수 세력의 강대국 재기를 향한 야심이었다. 이런 야심에 신냉전, 북한의 핵개발, 중국의 팽창주의, 러시아의 군사적 모험, 일본의 안보 역할 확대를 원하는 미국의 전략 등 외부 변수들이 가세해 일본은 자연스럽게 재무장의 길을 열어 갈 수 있었다.
1992년 PKO(Peace Keeping Operation·평화유지 활동)법, 1996년 미·일 신안보선언, 2000년대 아베신조 전 총리의 국방개혁, 2014년 평화헌법 재해석, 미·일 방위협력 가이드라인 개정 등을 통해 ‘전쟁을 할 수 있는 나라’로 변모하면서 ‘일본판 도광양회(韜光養晦·재능이나 명성을 드러내지 않고 참고 기다리며 실력을 기르는 것)’의 세월을 지내 왔다.
최근 일본은 또 한 번의 변신을 시도 중이다. ‘일본판 주동작위(主動作爲·할 일을 주도적으로 하는 것)’ 시대를 선언한 셈이다. 2022년 방위력 정비 계획을 통해 GDP 1%의 전통을 깨고 2027년까지 국방비를 두 배로 늘린다고 했고, 미국의 인도·태평양 전략에 동참하고 있다. 최근에는 미국과 ‘동북아 단일 전구화(戰區化)’를 긴밀히 논의 중이다. 주일 미군과의 작전협력 강화를 위해 육·해·공 자위대의 통합 지휘를 위한 ‘통합작전사령부’ 창설을 추진하며, 미국도 ‘주일 미군 통합사령부’ 신설로 이에 화답하고 있다.
아시아 단일 전구화는 한국에게 장단점을 예고한다. 일본이 미국의 아시아 전략 중심축이 되면서 주한 미군과 주일 미군의 위상이 역전되고 한미동맹의 가치는 희석될 수 있으나, 북한이 도발하기는 더 어려워질 수 있다.
이런 상황에서 한국은 새 정부 출범 이후 첫 한·미 정상회담을 맞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동맹 현대화’란 이름으로 한국군 주도의 연합 방위, 국방비 및 방위비분담금 증액, 주한 미군의 전략적 유연성 확대, 대중(對中) 집단 방위와 한국의 기여 등 각종 청구서를 내밀 전망이다. 여기엔 당연히 한·미·일 및 한·일 안보공조도 포함되며, 중국의 ‘용한제미(用漢制美·한국을 써서 미국을 견제함)’ 전략에 말려들지 말라는 경고도 있을 것이다.
정부가 현명하게 대처하겠지만, 일본과는 경쟁할 것은 경쟁하되 안보와 경제는 협력해야 한다. 일본은 한국도 함께 대처해야 하는 공동 위협을 견제하기 위해 재무장하고 있는 자유민주주의 이웃이다. 이런 일본이 한국의 안보에 뺄셈이 아니라 덧셈이 되도록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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