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민호의 오늘 생각] 헤밍웨이의 ‘노인과 바다’… “바다 위에서 ‘절망’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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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민호 필진페이지 + 입력 2025-05-01 00:02:55

사람은 시대의 압력이나 환경에서 자유롭기 어렵다. 엄혹하고 혼탁하고 혼란스러운 시대가 ‘노인과 바다’를 밤새워 읽게 한다. 사람들, 그리고 젊은이들 입에 오르내리는 “Be calm and strong!(침착하라, 그리고 강해져라!)”는 말의 의미를 ‘추적’해 보는 것이다.

어니스트 헤밍웨이의 ‘노인과 바다’는 쿠바의 아바나에서 어부로 살아가는 한 노인의 이야기다. 이름은 산티아고. 젊었을 때는 배를 타고 세상을 떠돈 적도 있었다. 노인의 회상 속에 등장하는 카사블랑카는 아프리카 모로코의 도시, 험프리 보가트와 잉그리드 버그만이 열연한 1942년 개봉 영화의 제목이기도 하다. 험프리 보가트는 멋진 목소리의 소유자였다.

세상 바다를 떠돌았던 산티아고였건만 이제 그는 무려 84일 동안이나 큰 물고기를 잡지 못한 불운한 어부다. 이미 많이 늙어 버린 산티아고의 곁에는 마놀린이라는 ‘소년’ 조수가 붙어 있기도 했다. 이 마놀린이 산티아고를 각별히 배려하는 모습은 인상적이다. 두 사람은 단순한 우정 이상의 깊은 유대감으로 결속되어 있다. 그러나 이 마놀린마저 부모의 강권으로 불운한 사내 곁을 떠나지 않을 수 없다. 이제 노인은 불운을 뒤로 하고 먼바다로 ‘운명’을 건 싸움에 나선다.

노인은 그렇게 큰 ‘마린(Marlin·청새치)’이 자신을 기다리고 있으리라고는 미처 생각지 못했다. 미끼를 정어리에서 방어로 바꿔 가며 큰 물고기를 낚을 준비를 해 나가는 노인은 수심 깊은 ‘우물 바다’를 지나 이윽고 운명의 바다에 다다른다. 노인의 배 전장(全長)을 넘어가는 거대한 마린과의 싸움은 사흘 넘게 이어진다. 그러나 최후의 승리는 얻어지지 않는다. 손과 등에 심각한 부상을 입는 긴 사투 끝에 마침내 승리를 거두고 항구로 돌아가는 노인의 전리품을 상어 떼가 노리고 다가선 것이다.

비평가들은 ‘노인과 바다’의 문체에 찬탄을 금치 못했다고들 한다. 그 ‘하드보일드(hard-boiled)’하다는, 건조하고도 냉혹한 헤밍웨이의 문체는 번역본으로는 다 살아남지 않았다. 그럼에도 멋진 ‘운명’의 문장들은 계속해서 읽는 이의 심장을 노크한다.

“싸우면 되지.” “나는 죽을 때까지 싸우겠다.” 이런 문장은 고독한 투사의, 처절한 인식의 깊이를 드러낸다. “그렇지만 나는 저놈에게 사람이 어떻게 강한지를 가르쳐 주어야겠어. 사람이 얼마나 인내에 견딜 수 있는지도 가르쳐 주어야겠고.”

한밤을 보내고 새벽에 마지막 페이지를 넘기고 생각한다. ‘그’는 분명 엄혹한 ‘광기의 바다’ 한가운데 서 있는 것이라고. 그 말이 틀리지 않았던 것이라고.

헤밍웨이는 산티아고의 바다에 대해 이렇게 써 놓았다.

“바다 위에서는 결코 고독하지 않다.” 그리고 “바다에서는 길을 잃을 리가 없다.” … 우리는 이 말을 믿어야 한다.

한때는 쿠바에 가고 싶을 때도 있었다. 카리브해, 아바나, 작열하는 태양, 카스트로, 그리고 체 게바라. 한국에서도 많은 젊은이가 쿠바 혁명을 ‘민족해방혁명’의 상징처럼 여긴 때가 있었다.

대개는 혁명 이후에 어떻게 되었는가는 치밀하게 따져 보지 않았다. 젊은이들은 체 게바라의 ‘혁명 낭만주의’를 하나의 ‘패션’으로 소비했다. 실천문학사에서 나온 ‘체 게바라 평전’이 각광을 받았다. 그의 얼굴을 프린트한 라운드 셔츠도 유행을 탔다.

현실은 그와 달랐다. 미·소 냉전의 틈바구니에 놓여 있었다 해도 쿠바는 혁명 이후에 최빈국이 되었다. 피델 카스트로는 세상을 떠날 때까지 통치를 계속했다. 독재에 반기를 든 혁명이 독재를 더 길게, 더 지독하게 지속해 나갔다. 역사의 흔한 아이러니의 하나였다.

쿠바의 아바나에는 여지껏 가 보지 못했다. 먼 곳이었고 값비싼 여비가 뱃길을 가로막았기 때문이다. 언젠가 엉뚱하게도 하와이에서 헤밍웨이가 즐겨 마셨다는 칵테일 ‘모히토’를 맛보며 먼 카리브해를 그리워하는 정도였다. 그 무렵에는 ‘노인과 바다 (The Old Man and the Sea, 1952)’에는 빠져 있지 않았다. 장편소설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For Whom the Bell Tolls, 1940)’의 스페인 내전을 궁금해 했다. 조지 오웰은 왜 스페인 내전에 참전한 후 좌익 전체주의에 환멸을 느꼈고, 이는 어떻게 영원한 문제작 ‘1984’의 배경을 이루게 됐을까.

생각한다. 지금 이 엄혹한 시대는 진짜 혁명을 간절히 원하고 있는 것이라고. 뜻이 다르거나 시대에 무감각한 사람들은 모르고 있는 투쟁이 ‘노인과 바다’의 문장들과 함께 새로운 시대를 준비하고 있는 것이라고. “Be calm and strong!”, 절망은 이 시대의 불필요한 사족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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