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서 1997년 개봉된 ‘가타카(Gattaca)’라는 영화에는 유전자 편집 기술을 사용해서 매력적인 외모를 갖추고 질병의 위험을 없앤 인물이 등장한다. 당시에는 공상과학 이야기처럼 느껴졌던 이 설정이 이제는 현실의 과학기술과 크게 괴리를 빚지 않는 것이 되었다.
유전자 편집 기술은 질병 치료뿐만 아니라 농업·생명공학·산업 분야 등 다양한 영역에서 혁신을 이끌고 있다. 치료가 어려웠던 유전 질환에 대한 치료 가능성이 열렸고, 작물 개량을 통해 생산성과 지속 가능성이 향상되어 식량 안보에도 기여하고 있다. 이러한 기술은 인간 삶의 질을 높이고 경제 성장의 동력이 되기도 한다.
그러나 기술 발전은 언제나 윤리적·사회적·법적 문제와 함께 논의되어야 한다. 2018년 중국에서 세계 최초로 유전자가 편집된 아기가 태어난 사건은 전 세계에 큰 충격을 안겼다. 이 사건 이후 세계보건기구(WHO)는 생식 세포 유전자 편집의 위험성을 거론하며 가이드라인 마련에 나섰고, 2019년에는 세계 7개국의 과학자와 윤리학자들이 인간 배아 유전자 편집의 착상을 5년간 중단하자는 ‘모라토리엄’을 공동 선언했다.
그로부터 5년이 지난 2023년, 영국 프랜시스 크릭 연구소에서 열린 국제회의에서는 유전자 편집 기술의 최신 동향과 윤리적 문제에 대해 심도 있는 토론이 이어졌다. 기술의 발전이 실제 인간에게 적용되기 전, 사회 전체의 합의가 선행되어야 한다는 공감대가 형성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나라는 어떨까. 유전자 편집 기술 관련 규제로는 무엇이 있고, 이와 관련하여 어떤 논의가 진행되고 있을까. 현재 대한민국 생명윤리법은 유전자 치료 연구를 생명을 위협하거나 중대한 장애를 초래하는 질병에 한해 인정하고 있으며, 배아·정자·난자·태아에 대한 유전자 치료는 금지하고 있다. 이를 위반하면 징역 또는 벌금형에 처해질 수 있다. 이는 연구자나 환자의 자유를 제한한다는 지적이 있지만 동시에 보호 장치가 부족한 연구대상자, 즉 배아와 태아를 지키기 위한 최소한의 울타리이기도 하다.
이러한 규제들에 대해 지난 2024년 2월 사법정책연구원은 미래사법이라는 카테고리에 ‘인간 유전자 편집 규제에 관한 연구’라는 제목의 연구보고서를 게재했다. 아래에 보고서에서 제시한 결론 마지막 부분을 인용해 보겠다.
“생명윤리법은 생명윤리에 관한 기본법으로서 그동안 인간 대상 연구나 배아나 유전자 등의 취급 시 연구 대상자를 보호하는 역할을 해 왔다. 그러나 위 법은 유전자 편집 기술을 포함한 생명공학 기술의 발전에 따른 변화를 제대로 반영하지 못한 채 높은 수준의 규제를 유지하여 연구자의 학문의 자유와 환자의 자기결정권을 과도하게 제한하고 있다. 이제 전문가와 대중이 함께 지혜를 모아 불합리한 규제를 폐지하고 기술 발전과 우리 사회의 상황에 맞는 적정한 규제를 개발하여 새로운 생명윤리법을 만들어 가야 할 때이다.”
사법정책연구원은 위와 같이 말하며 법의 개선 필요성을 주장했다. 하지만 기술의 속도에만 맞춘 규제 완화는 또 다른 위험을 초래할 수 있다. 법과 제도는 인간의 존엄성과 생명 보호라는 가치를 중심에 두고 신중하게 논의되어야 한다.
미국의 정치철학자 마이클 샌델은 ‘완벽에 대한 반론’에서 유전자 조작, 신체능력 향상, 인공지능(AI) 등을 통한 인간 개량이 오히려 부모·자녀의 관계를 왜곡시키고, 사회적 불평등과 성취의 의미 상실을 초래할 수 있다고 경고한다. 그는 완벽함을 추구하는 것이 반드시 선은 아니며, 윤리적 성찰이 반드시 선행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샌델의 말과 같이 기술 발전에 맞춰 규제 제한을 해제하기보다 여러 다학제적 모임을 통해 윤리적 고민이 선행되어야 하는 것이 옳다.
AI와 빅데이터 등 다른 과학기술도 마찬가지다. 기술은 삶을 편리하게 만들지만 그 이면의 윤리적 문제는 종종 뒷전으로 밀리곤 해 왔다. 특히 우리나라는 기술 중심 사고가 강한 반면, 윤리적 논의나 사회적 합의는 다소 부족한 편이다. 빠른 경제성장을 이루게 해 준 사고지만 선진국으로 들어선 지금 기술의 성과만이 아닌, 그것이 인간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까지 고민하는 태도를 가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기술의 발전도 중요하지만 지금 당장의 편리보다 사회 전반적으로 우리 삶에 어떠한 영향을 줄 것인지 고민해 보는 것이 진정한 연구자의 자세이고, 선진국 시민이 가져야 할 기술을 대하는 태도라고 생각한다.
지금 우리 사회에 필요한 것은 기술이 생명윤리보다 우선시되는 분위기를 되짚어보고, 과학기술 발전의 속도만큼이나 윤리적 성찰과 토론의 장을 마련하는 일 또한 중시되어야 한다. 특히 교육 현장에서부터 과학 기술 교육과 병행해 인간의 존엄성과 생명윤리에 대한 고민을 함께 다루는 교육 과정이 필요하다. 법과 제도를 개정할 때에도 배아와 태아·생식세포 연구에 내재된 윤리적 위험성을 충분히 고려할 수 있는 공론장이 마련되어야 한다. 또한 미디어 역시 과학 기술의 혁신만을 강조하기보다 그 이면에 숨어 있는 윤리적·사회적 고민들을 균형있게 다루는 역할을 해야 한다.
이제는 기술이 생명윤리를 앞서는 흐름을 되돌아봐야 할 시점이다. 과학기술 교육 과정에서도 인간 존엄성과 생명윤리에 대한 고민이 함께 다루어져야 하며, 법과 제도는 생식세포 연구에 내재된 윤리적 위험성을 충분히 고려해야 한다. 미디어 또한 기술의 혁신만이 아니라 그 이면의 고민과 논의도 균형 있게 다뤄야 할 책임을 갖고 있다.
유전자 편집 기술은 인류의 미래를 바꿀 수 있는 강력한 힘이지만, 그 방향을 정하는 것은 기술이 아니라 그것을 사용하는 우리 자신이다. 기술을 인간 중심으로, 그리고 생명 존중의 가치 위에서 다룰 수 있도록 사회 전반의 고민과 실천이 함께 이루어져야 할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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