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선경 연재소설 ‘위선의 시대’ [107] 자책과 회한, 그리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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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선경 필진페이지 + 입력 2025-05-20 06:23:00

어머니는 조상을 섬기는 일인데 제사가 어째서 의미 없냐고 반문했다.

“조상을 왜 섬기는데요? 죽은 사람이 우리가 섬기는지 안 섬기는지 알아요? 어디서 보고 있어요? 하늘나라에서? 섬기는지 안 섬기는지, 안대요? 조상이 그러던가요, 섬기면 복 주고 안 섬기면 벌 준다고? 이런 거 그만 하세요.”

승연의 남편이 헛기침했다. “아, 이 사람이 지금까지 잘해 오다 갑자기 왜 이래. 보든 안 보든, 조상을 섬기면 자손이 잘되고….”

“자손이 뭐가 잘되는데? 우리 앞집 사는 송이네, 거기 일년내내 제사 지내, 근데 그 집 사기당해 돈 날려서 남편 졸지에 신불자 됐지, 애들 다 재수 삼수해서도 좋은 대학 못 가고 송이 오빠는 취직 못 해서 자기 엄마 곁에 붙어 살잖아. 다 큰 놈이 아르바이트해서 벌 생각은 안 하고 어미한테 용돈 받아 쓰는데 그게 잘되는 거야? 송이 엄마가 제사를 얼마나 정성껏 드리는지 알아? 있을 때 잘할 일이지 왜 죽은 후에 정성을 쏟냐고. 그러면 덜 미안해지나? 조선이 조상을 500년이나 모셨는데 왜 대한민국은 이 모양 이 꼴이지? 정성이 부족해? 더 잘 섬겨야 해?”

승연의 남편은 당황했다. 거침없이 쏘아대는 아내의 말에 처가 식구들은 고개 숙인 채 아무런 대꾸도 하지 못했다. 승연의 말이 틀린 건 아니지만 조상 섬기는 일을 멈춘다는 건 상상하기 어려웠다. 한마디 거들어야 했다. “그래도 부모 제사 때나 얼굴 보지 요즘처럼 바쁜 세상에 얼굴 볼 핑계가 없잖아.”

“무슨 소리야, 승미 언니 미국 가서 여기 안 온 지가 20년이 넘었는데. 제사 아니어도 만날 구실은 얼마든지 만들 수 있잖아. 근데 왜 제사냐고. 생일에도 보고, 어버이날에도 보고, 돌아가며 식구 생일에 봐도 여기 있는 사람들 한 달에 한 번 이상은 만나겠다! 한 달에 한 번이 적어?” 침묵이 흘렀다. 아무도 제사의 의미를 생각해 본 적은 없었다. 제사는 당연한 관습이었다. 승연의 말을 듣고 있던 어머니가 잠깐의 정적을 깼다.

“그래, 승연이 말이 다 맞다. 그래 맞아, 제사가 뭐라고. 안 지내도 되지. 우리 승연이가 올케언니 생각해서 제사 지내지 말자고 총대 멘 것 같구나. 그래, 우리 이 문제 깊이 상의해 보자. 어떤 식으로 제사 지내는 게 좋은지. 어떻게 하면 의미 있는 제사가 될지 생각해 보자꾸나.”

“엄마, 그게 아니라니까요, 왜 그렇게 제사에 집착하세요. 더 이상 무슨 의미를 넣어요. 그게 아니라니까요. 저한테 제사, 의미 없어요. 여기 있는 사람들은 의미 있어? 아버지가 어떻게 돌아가셨는지 제사 때 모이면 생각 안 나? 아버지 마지막 모습 생각 안 나냐고. 나는 아버지 제사만 되면 고통스러워. 아버지 임종을 못 봤잖아. 아버지가 날 찾았다며. 따뜻한 말 한마디나, 사랑의 제스처 따윈 모르는 양반인 줄 알았어. 근데 마지막 가는 그 순간에, 살점이 타서 떨어져 나간 순간에도 새끼손가락 들어서 날 찾았다며. 아버지께 사랑한다는 말, 못 했다고! 아버지랑 나는 화해도 못 했다고!”

[글 박선경 일러스트 임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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