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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근의 미디어와 정치] 투키디데스 함정, 미디어·콘텐츠 간의 갈등
커뮤니케이션 신기술 발달로 기존 매체와 충돌 일어나
미디어 기술간 충돌 이면엔 컨텐츠 주도권 차지 싸움
오픈AI와 챗GPT는 언론사들의 생존 위협할 수 있어
황근 필진페이지 + 입력 2025-05-20 00:02:59
▲ 황 근 선문대 교수·언론학
‘투키디데스 함정’이라는 말이 있다. 신흥 강대국 의 부상이 위협적이라고 느낄 때 무력 충돌이 일어난다는 주장이다. 이 용어는 국가 간 갈등뿐 아니라 모든 갈등 상황에 적용된다. 미디어 또한 마찬가지다. 실제로 새로운 커뮤니케이션 기술들은 기존 매체와 항상 충돌해 왔다.
 
그 결과 새로운 미디어의 시대가 등장하기도 하고 신·구 매체가 공존하기도 했다. 문자와 종이의 발명은 넓은 영토를 다스리는 고대 제국 형성·유지의 기반이 된 중요한 기축 기술이었다. 구텐베르크의 인쇄 활자는 기독교 이념을 축으로 했던 중세를 마감하고, 근대로 넘어오는 전환점이 되었다.
 
신문·방송은 다수의 선택을 기반으로 대중사회를 이루며 민주주의와 시장경제가 성장하는 데 주도적 역할을 했다. 20세기 말 등장한 새로운 정보기기들은 다양성과 참여의 시대를 열었다. 최근 급속히 진화하고 있는 첨단 기술들은 인간과 공존하는 것을 넘어 기술이 인간을 지배하는 사회가 될 수도 있다는 우려를 낳고 있다.
 
이처럼 새로운 커뮤니케이션 기술들은 기존의 정치·사회적 권력 구조를 압박한다. 당연히 기존 권력과 밀접히 연계된 커뮤니케이션 기술과도 충돌할 수밖에 없다. 외형적으로는 매체 간의 기술 경쟁 같지만, 내면적으로는 전달 내용 즉, 콘텐츠 주도권을 차지하려는 싸움이다. 미디어가 기성 권력과 도전하는 세력 간의 다툼의 공간으로 인식되는 것도 이 때문이다.
 
문자와 종이는 벽화나 조각 등에 기록된 내용물을 다수의 사람이 공유할 수 있는 형태로 만들었다. 신권 중심의 정치가 세속 정치로 전환하게 된 배경이다. 구텐베르크의  활자로 처음 인쇄해서 만든 책은 52행 성서였다. 그때까지 성서는 성직자만 오직 라틴어로 필사해서 만들 수 있었다. 이런 성서의 대중화를 로마 교황청이 그냥 방관했을 리 없다. ‘구텐베르크 은하계(Gutenberg Galaxy)’라는 말은 종교적 지식 독점이 붕괴된 것을 일컫는 말이다.
 
신문 역시 초기에는 작가나 지식인들이 만든 창작물에 의존해 부족한 콘텐츠를 메꿨다. 18세기 후반 저작권 제도가 등장한 것도 이와 전혀 무관하지 않다. 심지어 2001년에 뉴욕타임즈는 프리랜서 작가 그룹과 신문에 투고한 저작물을 온라인에서 재활용하는 것을 놓고 소송을 벌이기도 했다. 바로 뉴욕타임즈 대(對) 타시니 사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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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은 영화사와는 물론이고 신문과도 콘텐츠 충돌을 벌였다. TV는 영화사들의 견제로 흑백 TV로 출발할 수밖에 없었다. 신문 기사를 읽어 주던 초기의 방송 뉴스도 신문들의 거부로 프로그램을 직접 제작하게 되면서 도리어 전화위복이 되었다. 그렇지만 20세기 후반에 등장한 인터넷 기술은 온라인 플랫폼이 기성 매체들의 콘텐츠를 사실상 전유하면서 미디어 패러다임을 완전히 변화시켜 놓고 있다.
 
신문은 기술적 토대인 종이신문이 힘을 잃는 가운데 온라인 신문이라는 기형적 형태로 생존하고 있다. 방송도 마찬가지다.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는 물론 사회관계망서비스(SNS), 유튜브가 지금은 독자적인 콘텐츠를 제작·공급하고 있지만 이들의 성장 발판은 기성 매체들의 콘텐츠였다. 심지어 한국의 인터넷 포털은 언론사들의 뉴스를 가지고 이용자를 끌어모으는 플랫폼 형태로 진화했다. 저가로 뉴스 사용권을 내준 언론사들은 이제 주도권을 빼앗겨 사실상 무력한 상태다.
 
이런 상황에서 대규모 언어모델(LLM)로 무장한 오픈AI의 챗GPT나 마이크로소프트 빙(Bing) 채팅의 등장은 언론사들의 생존 자체를 위협할 수 있다. 개별 단어가 아닌 데이터 덩어리를 기반으로 자연스러운 결과물을 창출하는 첨단 인공지능(AI)에게 언론사들의 완성도 높은 콘텐츠들은 대단히 유용한 데이터 덩어리이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미국에서는 신문사들이 오픈AI와 마이크로소프트를 상대로 소송을 벌이고 있다. 반대로 워싱턴 타임즈를 비롯해 적지 않은 언론사들은 갈등보다 협력을 택했다. 얼마 전 한국신문협회도 네이버의 ‘하이퍼클로버’의 뉴스 무단 이용을 공정거래위원회에 신고했다. 아마 20여 년 전 헐값으로 뉴스 사용권을 내준 ‘억압된 기억’ 때문일지 모른다.
하지만 뉴욕타임즈가 2001년 타시니 사건에서 반박했던 “창의적이고 인간적인 작품을 옹호하는 낭만적 저작 이론”을 자신들이 주장하고 있다는 비판도 받고 있다. 과연 새로운 커뮤니케이션 기술인 AI의 진화에 위협을 느낀 언론사들이 투키디데스의 함정에 빠지게 될까. 하지만 그럴 힘이 있을지 의문이 드는 것이 사실이다. 결국 플랫폼과 콘텐츠 사업자 간의 레버리지 갈등은 사실상 한판 승부로 가려질 수 없다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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