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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양에서 왔습니다] <55> “운동권 포섭하고 간첩 가족 경제 지원하라”
김동식 필진페이지 + 입력 2025-05-20 06:30:00
▲ 김동식 前남파공작원‧대북전략컨설팅 대표
 
공작조의 두 번째 임무… 지하당조직 구축
 
이원국 부부장은 계속해서 공작조에 부여된 두 번째 공작 임무에 대해 언급했다.
 
“공작조의 두 번째 공작 임무는 지난번에 말씀드렸던 것처럼, 현재 남조선에서 활동하고 있는 운동권 인사들을 전취(포섭)한 다음 그들을 중심으로 지하당조직을 구축하는 것입니다. 이 부분은 예전에 구체적으로 말씀드렸기 때문에 생략하겠습니다. 이상 공작 임무에 대해 간략히 말씀드렸습니다. 
 
나머지 구체적인 사항에 대해서는 예전에 말씀드린 내용을 참고하면 될 것이고 앞으로 공작 준비를 해 나가는 과정에서 필요한 내용을 구체적으로 알려 드릴 것입니다. 시간이 많지 않은 조건에서 지금부터 침투 및 공작 전술을 완벽하게 수립하는 데 역량을 집중하도록 하기 바랍니다. 
 
동지들에 대한 친애하는 지도자 김정일 동지의 신임과 기대가 큰 만큼 공작 임무를 성과적으로 훌륭히 완수하는 것으로써 반드시 충성으로 보답해야 하겠습니다.”
 
“황인오·김선태·김영대 등 운동권 인사 포섭하라”
 
그에 앞서 1990년 2월 담당 부부장·과장·지도원들로부터 처음으로 공작 임무를  받을 때 다음과 같은 내용으로 얘기했던 기억이 난다.
 
“선생님들이 남조선에 침투해 수행할 공작 임무는 황인오·김선태·김영대 등 운동권 인사들을 포섭해 지하당조직을 건설하는 것입니다. 황인오는 강원도(현 강원특별자치도) 정선 출신으로 1980년 사북탄광 노동자 파업을 주동한 인물이며, 김선태는 부산 출신으로 1986년 서울대학교 ‘마르크스-레닌주의당 사건’ 관련자입니다. 김영대는 청계피복노조 위원장 출신으로 전국노동조합협의회(전노협)를 만드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으며 현재 전노협 부위원장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포섭 인물에게도 ‘공작 대호(암호명)’ 부여하라”  
 
이들에 대한 구체적인 인적 사항을 비롯하여 관련 내용에 대해서는 우리가 갖고 있는 자료를 가져다줄 테니 그것을 보고 참고하면 될 것입니다. 그리고 공작조 조장은 남조선에 침투해 활동할 때 ‘조선노동당 중앙위원회 대표’, 즉 당대표의 자격으로 활동하기 바랍니다. 공작조의 대호는 ‘오성산’이며, 공작조가 포섭할 새로운 대상에게는 ‘대둔산’과 ‘비봉산’ 가운데 본부와 상의하여 대호를 부여하면 되겠습니다.”
 
대체로 이런 내용이었다.
 
위에서 언급한 “공작 대호”는 북한 대남공작부서에서 공작원 또는 공작조, 포섭한 인물들의 보안 유지를 위해 사용하는 암호명(nick name)을 말한다. ‘북악산’ ‘관악산’ ‘성남천’ 등과 같이 산과 강의 이름을 자주 붙이며 ‘광명성’ ‘봉화1호’처럼 상징적인 명칭을 쓰기도 한다.
 
침투 장소는 제주도, 이선실과의 접선 표식은 금반지
 
이원국 부부장은 계속해서 나와 조장 권중현이 침투할 장소와 함께 이선실과의 접선 방법 및 절차에 대해서도 구체적으로 이야기했다.
 
“공작조의 침투 장소는 최종적으로 제주도 서귀포시 보목동 해안으로 결정되었으며, 활동 지역은 서울과 수도권 지역입니다. 침투 일자는 1990년 6월 하순이며 구체적인 일자는 그때 가서 확정될 것입니다. 
 
공작조가 남조선에 침투해 사용하게 될 신원 사항은 공작조 조장이 ‘권중현’, 조원은 ‘김돈식’이라는 인물인데 남조선 사람인 이들의 신분을 도용하는 방법으로 신분 위장을 할 것입니다. 신원 사항과 관련한 구체적인 자료는 저희가 제공할 예정입니다. 
 
공작조는 제주도로 침투한 후 제주도와 대전 지역에서 약 1개월간 현지 적응 과정을 거친 다음 서울로 들어가 ‘북악산’, 즉 이선실을 접선해야 합니다. 북악산과의 접선 신호 표식물은 금반지입니다. 금반지는 침투 전에 가져다 드릴 것입니다. 
 
북악산 접선 이후 ‘백암산’과의 접촉 및 향후 활동 방향 등을 논의한 다음 행동할 것이며 황인오·김선태·김영대 등 포섭 대상의 소재를 먼저 파악한 후 접촉·포섭해 지하당 조직을 구축하도록 해야 하겠습니다. ‘북악산’과의 접선 방법과 새로운 대상을 통한 지하당 조직 구축 방법에 대해서는 향후 토의를 통해 구체화할 것입니다. 
 
본부와의 통신 연락 방법에 대해서는 담당 지도원들과 부과장, 무전 연락을 담당하는 통신 지도원과 변신(암호해독)을 담당한 변신 지도원과 상의해서 정하면 되겠습니다. 
 
 
▲ 1992년 10월 6일 국가안전기획부(안기부)가 남로당 사건 이후 최대 지하당 조직 ‘남한 조선로동당 중부지역당’을 적발했다고 발표했다. 이 조직의 핵심 인물 이선실은 재일교포 출신 실존인물 ‘신순녀’의 이름으로 신분 세탁을 하고 10여 년간 남파 간첩으로 활동했다. 대한뉴스 캡처·스카이데일리
 
복귀는 10월경, 복귀 접선지는 침투 장소와 동일
 
마지막으로 공작조의 복귀 시기는 10월경으로 정하였으며, 구체적인 일자는 상황에 따라 변경될 수도 있습니다. 복귀 접선 장소는 침투 장소인 제주도 서귀포시 보목동 해안으로 하되, 이 장소 역시 변경될 수도 있습니다. 구체적인 접선 방법에 대해서는 전술 토의 과정에 완성하면 되겠습니다. 
 
먼저 공작조에서 침투 및 공작 전술 초안을 작성한 다음 담당 지도원·부과장과 1차 토의를 거쳐 수정·보완한 후 과장과 토의해 다시 보완해야 하겠습니다. 다음 최종적으로 부부장과의 토의를 거쳐 완성하도록 할 것입니다. 성공적인 침투를 위해 전투원 및 안내원들과 해상침투 모의 훈련을 진행할 것이며, 권총 실탄 사격과 무전기 설치 및 전파 발신, 변신 등 기타 공작 활동에 필요한 훈련도 공작 전술 초안 준비와 병행할 것입니다.”
 
가상 시나리오 등 300여 쪽의 액션 플랜 작성
 
1990년에 들어서면서 본격적으로 대남 침투 및 공작을 위한 준비에 돌입했던 나와 권중현은 4월부터 거물 간첩 이선실 접선 및 대동 복귀 등 추가로 받은 공작 임무 수행을 위한 방안을 구체적으로 연구해 전술 초안을 만들었다.
 
이와 같은 침투 및 공작 준비는 나와 권중현이 실제로 남한에 침투한 5월 하순까지 계속 수정·보완하는 방식으로 진행되었고 이를 통해 하나의 완성된 전술안, 즉 액션플랜을 만들었던 것이다.
 
당시 나와 조장 권중현이 단계별로 직면할 수 있는 상황을 설정해 가상 시나리오를 작성하고 각종 돌발 상황에 대비한 대응책을 세세한 항목까지 작성한 다음 치열한 토론과 합의를 거쳐 최종적으로 완성한 대남 침투 및 공작 전술안은 300여 쪽에 달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통혁당·인혁당 관련자의 가족을 찾아라”
 
당시 우리에게 주어진 임무 중에는 과거 북한과 연계를 맺고 활동하다 처형된 지하당 조직원들의 가족을 찾아 경제적으로 도와주는 것도 포함돼 있었다.
 
무엇보다도 1968년 발생한 통일혁명당 사건으로 구속돼 사형당한 통일혁명당 서울시위원장이었던 김종태의 부인을 찾아보라고 했다. 그러나 우리가 찾으려 했던 김종태 부인에 대한 구체적인 신상정보가 없었기 때문에 김부겸 등 포섭 대상들을 만나 대화를 나누며 자연스럽게 그의 소재나 근황 등에 대해 파악한 다음 그를 만나 경제적인 도움을 주라는 것이었다.
 
또한 인민혁명당 위원장이었던 도예종의 아들 도한춘을 찾아보라는 지시도 있었다. 도한춘과의 접촉 및 그에 대한 경제적 지원 임무는 보다 구체적이었다.
 
당시 부부장 이원국 등 공작지도부 간부들은 도예종의 아들 도한춘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도한춘이 강원도 원주에 거주하면서 1960년대에 만들어진 대표적인 혁신 단체  민족자주통일중앙회의(약칭 민자통) 관련자들과 어울려 다니며 부친의 뜻을 받들어 통일운동을 해 보려 한다는 정보가 입수되었다는 것이었다. 그러면서 포섭 대상인 황인오가 강원도 정선 사람이니 그를 포섭한 다음 같은 강원도에서 활동하는 도한춘의 소재와 근황을 파악하면 될 것이며 그를 만나면 몇 백만 원이라도 건네주라고 당부했다.
 
간첩 가족 등 접선은 실패한 채 복귀
 
물론 과거 북한과 연계되어 활동했던 간첩의 가족들을 찾아 경제적 지원을 해 주라는  것은 부차적인 임무였기 때문에 무조건 수행해야 하는 절대적인 것은 아니었다. 그렇다고 해서 수행해도 되고 안 해도 되는 것 또한 아니었다.
 
따라서 실제로 나와 권중현은 서울에 침투한 후 이선실과 황인오 등을 통해 강원도 원주에 거주하고 있다는 인혁당 위원장 도예종의 아들 도한춘, 통혁당 서울시위원장이었던 김종태 부인의 행적을 파악하는 등 그들을 접촉하기 위해 여러 방면으로 시도했으나 별 성과를 거두지는 못한 채 복귀했다.
 
 
▲ 아들이 묻고 아버지가 답하다
 
2021년 11월 육군 현역으로 입대 후 대한민국 국민의 4대 의무 중 ‘국방의 의무’를 성실히 마친 아들과 내가 직접 나눈 대화 중 일부를 발췌한 것이다. ‘아들이 묻고 아버지가 답’하는 형식으로 본 연재의 각 회차 마무리를 대신하려 한다.
 
아들 : 간첩단 사건이 발생했을 때 아버지께서 증인으로 법정에 다녀오신 적이 있다고 엄마로부터 전해 들은 기억이 납니다. 저로서는 솔직히 상상이 가지 않는 일이고,  아버지도 당시의 기억을 떠올리고 싶지 않으실지도 모르겠지만, 법정에서 아버지를 향한 인신공격성 발언 등도 반대편에서는 분명히 했으리라는 생각이 드는데, 그럴 때 혼자서 그 모든 것들을 어떻게 받아내셨나요?
 
아버지 : 일심회 간첩단 사건, 왕재산 간첩단 사건, 목사 간첩 사건, PC방 간첩 사건, 청주간첩단 사건, 민노총 간첩단 사건을 비롯해 내가 국내에서 발생한 간첩단 사건과 관련해서 법정 증언을 한 횟수가 10회는 넘을 거야.
 
그리고 네 말대로 간첩단 사건 재판정에 가서 법정 증언을 할 때면 소위 ‘인권변호사’라고 하는 피고인 측 변호인들이 본격적인 증언을 시작하기에 앞서 허위 사실을 억지로 지어내 뒤집어씌우거나 빈정거리는 등 인신공격성 발언을 항상 했어.
 
그중에는 서울대 법대를 수석으로 졸업하고 3대 고시(사법·행정·외무)에 합격한 이정우와 이전에 통진당 대표를 했던 이정희의 남편 심재환 등 법조계에서 이름만 대면 알 만한 변호사들도 있었어.
 
그들이 법정에서 본격적인 심문에 앞서 검찰(고소인) 측 증인인 나를 공격하는 것은 나를 흥분시켜 이성을 잃게 함으로써 제대로 된 증언을 할 수 없게 해 자신들이 변호하는 피고인, 즉 간첩이 무죄 판결을 받게 하려는 의도에서였지. 나도 처음에는 영문을 모르고 잠깐 그들의 페이스에 휘말려 흥분하기도 했어.
 
그렇지만 나를 공격하는 그들의 의도를 파악하는 데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고, 그들의 의도를 파악한 다음부터는 그들이 아무리 인신공격성 발언을 하더라도 절대로 그 페이스에 휘말리지 않았어.
 
대신 나는 북한에서 15년간 공부하고 실제적인 공작을 하는 과정에 알게 된 대남 혁명전략과 대남 공작 전술, 대남공작부서 인물들의 신원정보 등을 사실대로 구체적으로 설명해 그들이 더 이상 공격을 할 수 없도록 하는 등 빈틈을 주지 않았어.
 
특히 그들이 북한의 구체적인 실정이나 대남공작 전술에 대해 제대로 알지도 못하면서 질문하는 경우가 많았어. 그럴 때면 “내가 자세히 설명해 줄 테니 들어 보라”고 한 다음 재판관들을 향해 그들이 반박할 수 없도록 내가 알고 있는 지식과 경험을 토대로 사례를 들어 가며 논리정연하면서도 단호하게 설명했어. 물론 내가 모르거나 하지 않은 일에 대해서는 모른다고 하거나 그런 일을 한 적이 없다고 사실대로 얘기했지. 어떤 일이든 과장하거나 추상적인 답변을 하지 않았어.
 
결과적으로 그렇게 해서 내가 증인으로 출석한 간첩단 사건 재판의 경우 100% 유죄 판결이 나왔어. 그렇게 되니까 언젠가부터는 내가 법정 증언을 하기 위해 재판정에 출정하는 날이면 소위 ‘인권변호사’라고 하는 사람들이 재판정에서 집단 퇴장하는 등 오히려 나를 보이콧하는 현상까지 벌어졌어.
 
결과적으로 처음에는 그들이 내게 인신공격성 발언을 해서 잠깐은 속이 시원했을지 모르지만, 그들이 변호한 피고인들이 유죄 판결을 받았으니까 재판에서도 패하고 내게도 진 것이라고 할 수 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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