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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위스가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이 예고한 39％ 관세를 피하고자 기존 협상안의 수정 의향을 내비쳤다고 3일(현지시간) 로이터통신이 보도했다. 기 파르믈랭 경제장관은 이날 RTS방송 인터뷰에서 이튿날 연방 내각 특별회의를 열어 대응 방안을 논의할 것이라며 “시간이 촉박해 (상호관세 발효일) 7일까지 뭔가 달성하긴 어려울 수 있지만 (미국에) 선의를 보이도록 우리 제안의 수정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파르믈랭 장관은 미국산 액화천연가스(LNG) 구매, 대미 투자 확대 등을 추가 옵션으로 들었다.
지난달 31일 양국 정상의 전화 회담 후 대(對)스위스 폭탄 관세가 발표돼 충격을 줬다. 미국이 스위스산 시계·제약품·기계류의 최대 수출 시장이기에 심각한 타격을 피할 수 없어 현지 산업계에선 “(이 관세율이면) 국가산업 붕괴”라는 말까지 나왔다. 주요국들이 대부분 협상을 통해 관세율을 일정 부분 낮춘 데 비해 스위스는 4월 처음 발표될 때보다 8％p나 오른 것이어서 정부와 업계 모두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스위스 국경절 휴무(8월1일)가 지나자 파장이 당장 4일 증시 주가에 나타났다. 약 0.8% 하락한 1만1836p로 떨어졌으며 스위스 프랑 역시 평가절하됐다.
파르믈랭 장관은 정상 간 통화가 성공적이지 않았다고 인정하면서도 (정상 간) 언쟁을 부인했다. 그거 “트럼프 대통령 관점이 처음부터 완전히 달랐다”는 것이다. “미국 대통령이 왜 이런 결정을 내렸나 완전히 파악할 필요가 있다”며 “그게 일단 명확해져야 어떻게 할지 결정할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하는 등 사태 파악이 안 돼 있음을 드러냈다. 미국은 스위스와의 무역에서 작년 약 380억 달러(약 49조4000억 원)의 무역적자를 기록했으며 금년 상반기엔 적자 폭이 약 485억 달러(약 65조500억 원)였다.
현재 스위스는 유럽 국가들 평균의 두 배 이상의 관세를 물게 된 셈이다. 트럼프는 스위스 측이 유의미한 양보를 하지 않았다고 판단했으며 결국 관세율은 “거의 무작위로 정해진 숫자”라고 본 분석을 스위스인포(SWI)와 파이낸셜파임스(FT) 등이 내놨다. “스위스 대통령과의 격앙된 통화”(블룸버그), “스위스 측 제안을 일축”(FT), “무역적자 수치만 고려 대상인 트럼프”(WSJ) 등의 기사들 속에서 결정적인 게 블룸버그 기사였다. 스위스의 대미 무역 흑자에 대해 트럼프가 “미국에서 훔쳐가는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했다는 것이다.
이것이 사실이라면 비즈니스 협상으로 잔뼈가 굵은 트럼프로선 상대를 압박하는 평범한 전술의 일환이었을 수 있으나 유럽 엘리트들에겐 모욕적이며 부당한 언사로 들렸을 가능성이 높다. 카린 켈러-수터(61) 스위스 대통령은 시(의원)·주정부(장관)·연방의회(의장)을 거쳐 현재 재무장관을 겸하고 있으나 전문 통역인 출신이다. 독일어가 모어지만 자국의 나머지 공용어(불어·이탈리아어) 모두 유창하며 영어에도 능통하다. 이번 트럼프와의 통화 또한 통역 없이 이뤄졌을 터인데 이게 오히려 화근의 일부가 됐을지 모른다.
서방 엘리트에게 트럼프 말투란 거칠게 느껴지기 마련이다. 더구나 트럼프는 평소 켈러-수터 같이 고급스러운 영국식 액센트를 구사한 영어에 비호감을 표출하곤 했다. 스위스는 나폴레옹전쟁 수습을 위한 1815년 빈회의에서 영세중립국이 된 이래 200년 넘게 군사동맹·제국주의·패권 경쟁과 거리를 뒀다. 따라서 국가 지도자에게 강력한 카리스마나 판단력보다 합의와 중재 능력이 더 중시됐다. 트럼프 같은 캐릭터의 정상과 심각한 통화를 할 상황이 역사상 최초나 다름없다.
스위스처럼 수출 중심 경제(시계·초콜릿·기계 산업 등)가 입을 타격은 불가피하다. “외교 대실패” “산업 위기” 등 비판이 쏟아진 가운데 스위스 정부가 특별 내각회의를 소집해 600억 달러(약 78조 원) 규모의 미국 투자 제안을 논의하는 등 새로운 협상안 준비에 들어갔으며 관세 발표일 7일 전까지 타협 여지가 마련될지 눈길이 쏠린다고 로이터에서 짚었다. 인구 900만 조금 넘는 비교적 소규모 경제체이자 중립국인 스위스가 미국과의 전통적인 우호 관계에 기대어 방심한 측면을 주요 외신들 모두 짚었다. 무역적자 수치만 따진 트럼프에게 양국 관계의 역사나 의미 등은 중점 고려 대상이 아니었던 것이다.
스위스 조야가 충격에 빠졌으며 외교적·전략적 안이함이 이번 위기를 자초했다는 평가로 이어졌다. 7월 중순까지 스위스에선 “양측이 윈-윈할 만한 안을 마련 중”이라며 낙관적 전망이 우세했기에 켈러-수터 정부가 입을 심대한 정치적 타격은 자명하다. 다만 스위스 특유의 분산형 정치 구조 때문에 정권 교체로까지 가긴 어려울 뿐이다. 스위스에서 대통령은 연합정부 형태의 집행위원회(연방평의회) 중 한 명에 불과하다. 임기 1년이며 재임은 최소 6년 후여야 한다.
스위스엔 거세게 정부를 몰아붙일 야당도 없다. 연방평의회에 끼지 못한 정당이 야당 역할을 하긴 하지만 일반국가들의 경우와 차이가 크다. 이에 스위스 기계산업연합(Swissmem) 등 주요 산업 로비단체들이 “39% 관세란 국가산업 붕괴 수준”이라며 연방정부 책임론을 본격 제기했다. 산업계에선 “미국 상황에 대한 무지”를 꼬집었으며 언론은 “국가전략 부재” “부유한 중립국 신화의 붕괴” 등을 언급하고 있다. 이달 중순 의회 회기에서 공식 청문회나 비공식 질의가 이어져 켈러-수터 대통령과 경제장관이 외교적 무능과 첩보 실패 등으로 집중 포화를 맞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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