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튀르키예는 몇 년 전까지 우리가 터키라고 불렀던 땅이다. 성경에는 소아시아라는 이름으로 등장한다.
기원전 333년 알렉산더 대왕이 이끄는 마케도니아군과 페르시아의 다리우스 3세가 이끄는 페르시아군은 소아시아 남부 이소스 평원에서 맞붙었다.
이소스 전투에서 승리한 알렉산더는 페르시아 제국을 정복한 후 인더스강까지 진격하여 유럽·아시아·아프리카에 걸친 대제국을 건설했다.
또 고구려와 국경을 맞댔던 돌궐은 훗날 동로마제국의 수도 콘스탄티노플(이스탄불)을 함락시키면서 오스만튀르크 제국을 일으키기도 했다.
보스포루스해협을 사이에 두고 아시아와 유럽을 잇는 이스탄불은 명실상부 튀르키예를 대표하는 도시다. 워낙 관광지로 이름이 높다 보니 수도로 오해하는 사람이 많지만 튀르키예의 수도는 앙카라다.
비잔티움, 콘스탄티노플, 이스탄불
이스탄불은 시대를 달리해 여러 차례 주인이 바뀌는 동안 숱한 명칭의 변화를 겪었다.
기원전 7세기 고대 그리스의 메가라 출신들이 정복했을 때는 비잔티움으로 불렸고 4세기 로마제국의 영토가 된 뒤에는 콘스탄티누스 황제에 의해 콘스탄티노폴리스로 명명되었다. 콘스탄티노폴리스는 라틴어 표기이고 영어식으로는 콘스탄티노플이다.
콘스탄티노플이었던 시기가 이 도시의 전성기·황금기·리즈 시절이라고 할 수 있다.
천 년 역사를 이어오는 동안 도시는 유스티니아누스(482~565) 대제와 같은 걸출한 지도자를 배출했다. 강력한 중앙 집권 체제를 확립한 대제는 로마법 대전을 편찬해 법률 체계를 정비했다. 아야 소피아(하기아 소피아)를 건설한 것도 그였다.
지금의 이스탄불로 도시 이름이 굳어진 것은 15세기 오스만 제국이 이 땅을 차지하면서부터다.
대성당, 모스크, 박물관 그리고 모스크
아야소피아는 모스크지만 ‘대성당’ 칭호가 붙는다. 537년 유스티니아누스 대제가 이 건축물을 지을 당시 정교회 대성당으로 건설했기 때문이다. 성당은 하나님의 권위를 드러내는 도구였기에 당대 최고의 건축가가 첨단의 기술을 동원해 지었다. 아야소피아가 그토록 웅장하고 튼튼하며 아름다울 수 있는 이유다.
천 년 동안 대성당이었던 아야소피아는 1453년 큰 변화를 맞이한다. 이슬람을 믿는 오스만이 제국의 주인이 되면서 본래의 쓸모를 다한 것이다.
오스만 제국은 성당을 부수는 대신 네 개의 미나레트(기둥)를 추가하는 것으로 간단하게 건물의 용도를 변경한다. 기독교 문화의 상징이자 비잔틴 건축예술의 걸작을 모스크로 바꾸는 것이야말로 오스만 제국의 위력을 과시하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하루 아침에 성당에서 모스크가 된 아야소피아는 1935년에 이르러 다시 박물관으로 변신을 시도한다. 이게 다 세속주의를 부르짖던 국부 무스타파 케말 아타튀르크 덕이다.
아야소피아의 변신은 이게 끝이 아니었다. 2020년 다시 모스크라는 정체성을 되찾는데 이번에는 탈세속주의 정권이 집권해 모든 것을 원위치시킨 덕이다. 대신 1층만 예배 공간으로 남겨 두고 2층 회랑은 일반에 공개 중이다. 관람료는 25유로(3만6000원)다.
아야소파아에서 꼭 봐야 할 것은 비잔틴 시절의 모자이크들이다. 20세기 초 박물관으로 꾸미면서 내벽의 두터운 회칠을 벗겨내자 그 안에서 예수, 대천사 가브리엘, 성모 마리아, 콘스탄티누스 대제, 유스티니아누스 황제 등 비잔틴 시대의 아름다운 모자이크화가 드러났다.
그런가 하면 아야소피아 건물 내부에는 직경이 7.5m에 달하는 8개의 거대한 원판이 있다. 여기에는 이슬람 초기 칼리프들의 이름과 알라의 이름이 새겨져 있어 이곳이 모스크임을 재확인시켜 준다. 원판 속 글씨를 쓴 사람은 이슬람의 유명 서예가라고 한다.
아야소피아가 유네스코 문화유산에 등재된 것은 1985년의 일이다.
블루모스크와 지하궁전
아야소피아 갔다가 블루모스크 안 보고 오기는 힘들다. 근거리에서 서로 마주 보고 서 있기 때문이다. 블루모스크의 원래 이름은 술탄 아흐메트 모스크지만 푸른빛 도는 지붕 때문에 이 별칭이 더 유명하다.
블루모스크가 들어서기 전 그 자리에는 비잔틴 제국의 콘스탄티노플 대궁전이 있었다. 대궁전은 330년부터 동로마제국 황제의 거처로 쓰였으나 1204년 제4차 십자군 원정을 계기로 쇠퇴하기 시작했고 콘스탄티노플이 오스만 제국에 함락되면서 완전히 폐허가 됐다.
폐허 위에 블루모스크를 건설한 사람은 술탄 아흐메트 1세다. 완공된 해가 1616년으로 이 건물도 만만찮은 세월을 지나왔지만 1000년 앞서 완공된 아야소피아에 비하면 신축건물이나 다름없다.
블루모스크 부근에는 동로마제국 시대의 지하 저수조 ‘예레바탄 사라이’가 있다. 이 초대형 저수조는 황실과 시민 가정에 식수를 공급하기 위해 콘스탄티누스 대제 때 공사를 시작해 유스티니아누스 1세 때까지 건설됐다.
물을 담아두는 용도에 불과하지만 드넓은 공간을 366개의 아름다운 기둥이 받치고 있어 규모가 궁전 이상이다. 그 기둥들은 비잔티움 제국 각지에서 가져온 것이라 문양마저 제각각이다. 지하 9ｍ 깊이에 일군 이 거대한 지하 세계에 ‘지하궁전’이라는 별칭이 붙은 것도 이해가 간다.
기둥 가운데 ‘메두사의 머리’ 조각상이 가장 유명하다.
매립지 궁전과 언덕 위 궁전
이스탄불의 유럽 구역인 베식타슈의 중심부에 자리한 돌마바흐체 궁전은 오스만 제국 막바지에 지어졌다.
푸른 물결 넘실대는 보스포로스해협과 하얀 건물의 조화가 매우 아름다운 궁전으로 프랑스 베르사유 궁전을 모델로 삼았다는 소문이 있다.
궁전은 바다를 매립한 땅에 지어졌으며 285개의 방과 43개의 살롱, 6개의 목욕탕을 거느리고 있다. 돌바마흐체라는 이름도 ‘매립지’라는 뜻을 담고 있다.
궁전은 바로크·로코코·네오클래식의 서구식 건축 양식을 따르되 세람르크(남성 공간)와 하렘(여성 공간)을 두어 오스만 제국의 문화를 반영했다.
이곳은 가구부터 그림, 양탄자, 벽지 모든 게 최상급·최고급이다. 특히 14t의 금과 40t의 은으로 장식한 천장과 내부 장식, 빅토리아 여왕이 선물한 크리스탈 샹들리에는 화려함의 절정을 이룬다.
이스탄불 구시가지의 톱카프 궁전은 15세기부터 19세기에 이르는 약 400년 동안 오스만 제국의 궁전으로 사용됐다. 이 궁전은 성벽의 길이만 5km에 이르는데 보스포루스해협과 마르마라해, 골든혼이 합류하는 언덕 위에 우뚝 세워져 있어 그 위용이 대단하다.
톱카프 궁전은 단일한 건축물이 아니라 여러 개의 궁전과 비룬(바깥뜰), 엔데룬(안뜰), 하렘 등으로 나뉜 ‘복합궁전단지’다. 궁전마다 안마당을 몇 개나 거느리고 있고 각 마당을 연결하는 많은 통로와 문이 있어 미로에 가까운 건축학적 특징을 보여 준다.
구조적으로는 메흐메트 2세 때의 설계를 바탕으로 하지만 술탄이 바뀔 때마다 개축이 이뤄진 데다 네 차례에 걸친 대화재로 원래 모습은 거의 사라진 상태다. 현재는 무기·직물·보석 등을 전시하는 박물관으로 사용 중이다.
이스탄불은 유럽이기도 하고 아시아이기도 하다. 도시 하나를 여행하는 것으로 간단하게 두 대륙을 둘러보는 셈이니 더 갈 것도 덜 갈 것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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