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27º
습도 90%
수원 26º
습도 90%
춘천 26º
습도 80%
청주 26º
습도 85%
)
비만약 열풍은 이제 단순한 의학적 혁신이 아니라 돈과 욕망, 외모 지상주의가 뒤섞여 사회 풍경마저 바뀌는 연극의 한 장면을 연출하고 있다.
제약사는 말한다. “비만은 질병이고 우리는 환자를 돕는다.” 하지만 그 뒤에 숨은 계산은 너무도 뻔하다. 위고비를 만든 제약사의 주식 시가총액은 유럽 1·2위를 다투고 있고, 마운자로를 시장에 내놓은 제약사는 업계의 신흥 강자로 급부상했다.
수십 년간 수조 원을 쏟아붓는 신약 개발에서 이런 황금알 낳는 약을 만난다면 그들의 눈에 환자는 시장이고, 몸은 지갑일 뿐이다.
의사도 여기서 자유롭지 않다. 진짜 비만 환자가 아니어도 체질량지수(BMI) 수치가 기준에 못 미쳐도 ‘삶의 질 개선’이라는 만능 면허로 처방전은 쉽게 발부된다. 환자가 원하고 의사가 동의하면 약은 곧장 환자 손에 쥐어진다. 치료제가 아니라 주사기 안에 든 몸매 관리 패키지가 되는 순간이다.
위고비가 국내 출시된 지난해 10월부터 올해 6월까지 의약품안전사용서비스(DUR)를 통한 처방전 수는 39만5384건으로 집계됐다. 출시 첫 달 1만1368건이던 처방은 올해 5월 8만8895건으로 8배 가까이 늘었다.
사실 건강은 부차적 문제다. 물론 적당하게 사용한다면 비만약이 좋은 치료제인 것은 맞다. 인스타그램에 뜨는 여름 해변의 사진 한 장, 직장 면접의 첫인상 앞에서 사람들은 기꺼이 수십만 원짜리 주사에 돈을 쓴다.
정부는 오남용 주의를 당부한다. 그러나 그 말은 공허하기 짝이 없다. 남용을 막은들 제약사의 마케팅, 의사의 처방권, 소비자의 욕망이 삼각으로 맞물린 판에 당부 몇 마디가 무슨 힘을 갖겠는가.
정부는 비만치료제의 오남용을 방지하기 위해 단속과 홍보를 강화하는 한편, 사용 연령이 청소년으로 확대될 가능성에 대비해 대응 체계를 마련하기도 했다. 이미 위고비 제조사는 식약처에 ‘사용 연령을 만 12세 이상으로 확대해 달라’는 적응증 변경 허가를 신청한 바 있다. 이에 따라 청소년 대상 사용이 국내에서도 허용될 가능성이 생겼다.
정상 체중인 사람이 집 근처 가정의학과를 찾아 “위고비 처방 가능하냐”고 하자 의사가 별말 없이 처방해 줬다는 말이 여기저기서 들려온다. ‘오남용 방지’라는 말은 마치 술집 앞에 붙은 “과음은 건강에 해롭습니다”는 경고문처럼 무력해지고 있다.
비만치료제 열풍은 단순히 약의 문제가 아니다. 우리 사회가 건강을 어떤 눈으로 바라보고 있는가의 문제다. 진짜 환자의 치료권과 단순한 미용 목적, 소비 사이의 경계는 어디에 있을까.
비만약은 분명 필요한 약이다. 하지만 우리는 지금 치료제를 삼키는 게 아니라 욕망이 각본을 쓰고 제약사·의사·소비자가 함께 연출하는 연극의 한 장면을 삼키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후원하기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추천해요
좋아요
감동이에요
화나요
슬퍼요
추천해요0
좋아요0
감동이에요0
화나요0
슬퍼요0
기사제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