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전국시대 법가 사상을 대표하는 한비자(韓非子). 그는 약소국인 조국 한(韓)나라가 갈수록 약해지는 모습을 보면서 걱정이 많았다. 여러 차례 한왕에게 부국강병책을 건의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한왕이 나라를 제대로 다스리지 못하는 게 못내 가슴 아팠다. 재능 있는 인재를 기용해 국가를 강성하게 만들지 못하는 것이었다.
설상가상 한왕과 지도층은 허영과 사치에 빠져 나라를 위기로 몰고 갈 인물들만 끼고돌았다. 무능한 간신들이 충신들보다 지위가 더 높았다. 한비자는 이에 울분을 품고 ‘고분(孤憤)’ ‘설림(說林)’ ‘세난(說難)’ 등의 책을 써서 역사에서 교훈을 얻자고 강조했다.
한왕은 당초 한비자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으나 강대국 진(秦)나라의 공격을 받아 상황이 급박해지자 비로소 한비자를 진나라에 사신으로 보내 항복을 자청하게 했다. 진은 한비자를 억류한 다음 단숨에 한나라를 공격해 한왕 안(安)을 포로로 잡고 한나라를 멸망시켰다.
한비자는 통탄스러운 마음으로 ‘세유삼망(世有三亡)’, 곧 망하는 세 가지 길을 적시해 후대에 경계를 삼도록 했다. 어지러운 나라가 정치를 잘하고 있는 나라를 공격하면 망하고(以亂攻治者亡), 사악한 자가 정직한 자를 공격하면 망하며(以邪攻正者亡), 도리를 거역하고 있는 자가 도리를 따르고 있는 이를 공격하면 망한다(以逆攻順者亡)”고 했다.
국제정치가 급변하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2기 행정부 시대에 러시아에 대응하는 우크라이나와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의 집단방위 체제가 시험대에 올라 있다. 여기에 주요 2개국(G2)인 미국과 중국 간 패권 다툼, 고도화되는 핵과 미사일로 무장한 채 러시아와 밀착한 북한, 우익화의 길을 걷는 일본 등 한반도 주변 정세는 급류를 만나고 있다. 이에 더해 대만과 동중국해를 둘러싼 미국과 중국의 대립이 국제적 충돌로 비화하지 말란 보장 또한 있을까.
민주평화통일을 넘어 초일류 선진한국을 지향하는 대한민국이 지혜로운 외교를 펼쳐야 하는 당위적 배경인 것이다. 우리는 최근 한·일, 한·미 정상회담을 했듯 튼튼한 한미동맹, 긴밀한 한·미·일 협력의 토대 위에 한·중, 한·러의 전략적 협력관계를 강화해야 한다.
평화통일 기반 조성의 지렛대를 튼튼히 해야 한다. 국제 조류를 읽는 깊은 통찰과 실천 의지가 긴요하다. 우리는 지금 100여 년 전처럼 한반도 주변정세가 요동치고 있음을 목도하고 있다. 미·중·일·러가 자국 이익에 따라 민첩하게 이합집산을 거듭하고 있다. 우리 정부가 수동적 태도로 일관할 때가 아닌 것이다.
무엇보다 우리가 국제외교에서 주도적인 자세를 취하기 위해선 국민 화합이 긴요하다. 갈등과 반목 위에선 국익을 챙기긴커녕 강대국의 ‘먹잇감’이 될 수밖에 없다. ‘진화타겁(趁火打劫)’의 의미를 되새겨 볼 때다. ‘진화타겁’은 ‘서유기’에 나오는 말로, 불난 집에서 약탈한다는 뜻이다. 이 말에는 개인이나 국가가 허점을 보이고 내분에 휩싸이면 힘센 주변 세력에 농락당한다는 교훈이 담겨 있다. 특히 지도층이 정신을 못 차리고 정치사회적으로 갈등과 분쟁이 격화되면 최고지도자는 지위를 잃고 나라는 거덜 나기도 한다. 남남갈등으로 진화타겁의 빌미를 주지 않는 우리의 화합된 국내 정치와 능동적 외교가 절실하다.
8월29일은 경술국치일이다. 대한제국을 무력 병탄하고 전쟁 범죄를 일삼은 일본에게서 사과·배상을 받아야 한다. 그러나 우리의 과오는 무엇인지를 돌아보고 오늘 이 시대를 위한 교훈으로 삼아야 하겠다. “사람은 반드시 스스로 업신여긴 연후에 남이 그를 업신여기고(人必自侮然後 人侮之), 집안은 반드시 스스로 훼손한 이후에야 남이 그 집을 훼손하며(家必自毁以後 人毁之), 나라는 반드시 스스로 친 이후에야 남이 그 나라를 치는 것이다(國必自伐以後 人伐之).” 맹자의 가르침이다.
지혜롭고 유연한 한국 외교가 요청된다. 그와 함께 우리 내부의 단합이 절실히 요청된다. 내치를 놓고 여야 간 정책 차이는 있을 수 있지만 대북정책 등을 놓고는 충분한 내부 논의 후 시행하는 화합된 모습을 기대한다. 무한경쟁의 글로벌 시대엔 국가 간에도 국익 앞에선 적대적 관계마저 형성되는 ‘정글’이 눈앞에 펼쳐진다는 현실을 직시해야 하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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