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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소리는 공포의 대상이었다. 광주 시민들은 5∙18 당시 두꺼운 겨울 이불로 창문을 가렸다. 계엄군이 주택가에서도 총을 쏘았기 때문이다. 전투병과교육사령부 자료를 살펴보면 계엄군이 쏜 M-16 소총 실탄은 총 49만7962발이었다. 기관총 실탄은 1만759발 사용됐고 수류탄도 192발 사용됐다. 대전차 무기와 클레이모어까지 사용됐으니 광주는 전쟁터나 다름없었다. 김소형(45)은 1980년 5월18일 태어났다. 완도수협에서 근무하던 아버지 김재평(당시 29세)은 딸이 태어났다는 소식을 듣자 한밤중에 광주로 떠났다. 하지만 계엄군이 광주로 가는 길을 막았다. 걸어서 나주까지 도착한 아버지는 화순과 담양을 거쳐 이틀 만에 광주에 도착했다. 화정동 동생 집에서 겨우 딸과 아내를 만났다. 21일 해질녘 총소리가 들리자 놀란 딸이 울었다. 아버지는 솜이불로 창문을 막으려다 쓰러졌다. 계엄군이 쏜 총알은 유리창을 뚫고 턱을 관통해서 김재평의 목숨을 앗아갔다.
새신랑 윤남식(당시 28세)은 당시 금남로 근처에서 살았다. 그는 아내가 혼수로 가져온 솜이불로 창문을 가렸다. “총탄이 쏟아지던 때라서 솜이불에 목숨을 의지했다.” 가족을 솜이불에 맡긴 새신랑은 국가 폭력을 지켜보다 참지 못하고 시위대에 합류했다. 충장로파출소 근처에서 붙잡힌 뒤 군홧발에 짓밟혔다. “아, 죽겠구나!” 개머리판이 오른쪽 눈두덩이를 강타한 순간 세상이 빨개졌다. “피가 쏟아졌는데 그땐 눈알이 빠진 줄 알았다니까.” 목숨을 겨우 건진 새신랑은 5∙18민주화운동 공로자가 됐다.
“공수부대에게 맞았다는 말은 창피해서 하지 않는다.” 오른쪽 눈 위 흉터를 가리킨 윤남식(73) 5∙18민주화운동공로자회 회장은 씩 웃었다. 광주에서 건설업을 하던 부부는 서울로 옮겨 터를 잡았다. 그러나 후배들의 간곡한 부탁에 윤남식 회장은 2024년 3월30일 5∙18공로자회 수장이 됐다. 공자는 70세가 되면 마음이 하고자 하는 것을 좇아도 법도에 어긋나지 않는다(七十而從心所欲不踰矩)고 했다. 그가 평일엔 광주에서 일하고 주말에 서울로 올라가는 주말부부가 된 이유는 뭘까?
광주로 내려간 윤남식 회장에게 주어진 숙제는 회원 사이의 알력과 갈등 해소였다. 국가보훈부 보조금이 문제였다. 용도에 어긋나게 차량을 사거나 사무실에 상주하지 않은 임원에게 수당을 지급하다가 적발됐다. 윤남식 회장은 5∙18공로자회를 쇄신하기 위해 출근부 기계부터 설치했다. 출근하지도 않으면서 국가보조금을 빼돌리던 악행을 아예 싹부터 잘랐다. 솔선수범하기 위해서 광주에 숙소까지 마련한 뒤 상근했다.
윤남식 회장은 보훈 예산을 지적했다. “대한민국이 보훈의 역사를 무겁게 받아들여야 한다.” 국가보훈부 예산은 올해 총 6조4814억 원으로 정부 예산(673조3000억 원) 가운데 0.96%에 해당한다. 미국 제대군인부 보훈 예산은 약 344조 원(2022년 기준)으로 미국 정부 예산에서 무려 4.6%를 차지했다고 알려졌다. 곳간에서 인심이 난다고 턱없이 적은 예산 탓에 알력만 심해졌다. 윤 회장이 주말부부를 자청하며 받는 월급은 얼마일까?
“월급은 없다. 보훈단체 수장이 사무실에 상주해서 근무하면 정부가 보조금으로 월 216만 원을 준다.” 최저시급(1만30원)과 비슷한 수준이다. 상근하는 간부들은 그보다 적은 월 165만 원쯤 받는다고 알려졌다. 월 보조금을 받으면 어디에 쓰는지 궁금했다. “공로자회에 기부한다. 손님이 오면 음료수라도 대접하고, 경조사에 꽃이라도 보내야 하는데 돈이 없다.” 월급을 모두 기부했더니 국세청으로부터 소득세를 내지 않았다는 통보를 받았다. 소득세를 뺀 나머지만 기부해야 한다는 사실을 몰랐다.
5∙18정신을 계승하고 발전시킨다? 윤남식 회장은 선후배에게 후원금을 부탁하느라 바쁘다. 호남을 대표하는 대기업으로 성장한 호반건설은 최근 후원금이 아닌 장학금을 주겠다고 했다. 그러나 5∙18이 있은 지 45년이나 지난 터라서 공로자 자녀 가운데 학생은 거의 없다. 헛걸음이 됐으나 윤남식 회장은 포기를 모른다. 전화를 만지작거리더니 대우건설 정원주 회장과 휴대전화 문자를 주고받았다.
사업가 출신 보훈단체 수장은 이를 악물었다. 권오을 보훈부 장관이 8월6일 보훈단체장들을 초청하자 윤남식 회장은 5분씩 발언하라는 권고를 어기고 무려 40분이나 말했다. “보훈 예산을 늘리지 못할 거면 영리사업이라도 할 수 있게 해 달라.” 보훈 예산이 없던 시절 정부는 각 보훈단체에 중복되지 않는 선에서 영리사업을 시행할 권한을 줬다. 그러나 보훈단체 가운데 막내격인 5∙18공로자회는 사업을 하고 싶어도 중복되지 않는 사업이 없단다.
자존심을 내려놓은 지 오래됐다. 떳떳하게 단체를 운영하려면 월급과 사비를 내놓는 것만으론 부족하다. 옛날처럼 솜이불이라도 있으면 좋으련만 의지할 것이라곤 전화뿐이다. 5∙18공로자회장은 오늘도 전화를 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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