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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노동하다 땀흘리면 삼대가 빌어먹는다.
중년 이상이면 누구나 아는 표현이고 소시적 알바 삼아 일을 시작한 지 3~4일 쯤 지난 후 들은 말이다. 직업 비하로도 오독될 수 있겠지만 몸부터 먼저 생각하고 일을 하라는 베테랑 선배들의 거친 표현의 조언이다.
이후로도 뛰지마라 굴러다니는 못에 상채기라도 나면 너부터 그리고 일손 빠지면 모두 손해다. "힘 넘친다고 머리 위로 비계 던져 쌓지 마라 크게 다친다" 등 안전에 대한 숱한 꾸중을 들으며 힘쓰는 요령을 배웠다.
지금은 공원이 된 합정동에 있던 당인리 발전소에서 잠시 일할 기회가 있었다. 일하는 분들은 오발공사라고 말했는데 정확하게는 계획예방정비공사(오버홀)였다. 전력 수요가 적은 봄가을에 화력발전소를 정비하는 일이다.
굴뚝 청소부터 모터 베어링 교체 등 각자에게 맡겨진 일이 워낙 다양하다 보니 직간접적으로 여러 경험을 할 수 있어 기억이 오래 남는다.
당시 코끼리 업어주기, 비오는 날 전기줄 닦기 등 고액 알바 관련 웃픈 농담이 유행했다. 공사기간 중 하루 변전소 전선에 올라 전기줄 끝자락에 있는 애자의 먼지를 걸레로 제거하는 일을 하게 됐다. 마침 보슬보슬 비가 내렸고 농담인 줄 알았는데 비슷한 알바를 하게 된 진귀한 경험도 갖게 됐다.
발전소는 멈춰 있지만 잔류가 남아 있을 수 있다며 접지하는 등 준비 과정은 길고 복잡했다. 그러나 실제 업무는 사다리 타고 올라가 애자 먼지 제거라는 짧고 단순한 일이었다. "전압이 높아 미세한 잔류라도 감전되면 장기 파열된다" "어지러움을 느끼는 등 몸이 이상하다 싶으면 내려와라" 등 안전에 대한 당부가 이어졌던 것으로 기억된다. 1990년 산업안전보건법이 전면 개정된 직후의 단편적인 개인적 경험이다.
올해만 벌써 2백 명이 넘는 노동자가 건설현장에서 목숨을 잃었다. 끼임, 추락, 붕괴, 충돌. 매번 똑같은 유형의 재래형 사고다. 중대재해처벌법이 시행된 지 2년이 지났지만 개선될 기미는 보이지 않는다.
가장 최근에는 풍림산업의 수원 공사현장 하청 근로자가, 삼성물산이 짓고 있는 엔씨소프트 신사옥 공사현장 근로자가 지난달 29일에 사망했고, 1일에는 대우건설이 시공하던 원주다박골 주택재개발 정비사업 공동주택 신축공사에 중대재해가 발생했다.
9월 사망사건이 발생한 이후 대우건설은 105개 사업장의 건설을 중단하고 안전관리 시스템을 점검했으나 2달만에 발생한 또다른 재해를 막지는 못했다.
상대적으로 안전관리가 꼼꼼한 것으로 평가되는 대형 건설사의 올해 중대재해만 잠깐 살피면, 2월 안성 고속도로 공사현장 붕괴로 4명이 사망했다. 시공사는 현대엔지니어링이다. 3월에는 평택과 아산에서 각각 1명씩 사망했다. 4월에는 포스코이앤씨가 시공 중인 신안산선 터널에서 붕괴사고로 노동자 1명이 숨졌다.
6월에는 현대건설 현장에서 되메우기 작업 중 노동자가 목숨을 잃었다. 8월과 9월에는 DL건설, 대우건설, 포스코이앤씨 현장에서 연달아 추락사고, 펌프카 붐대 파손, 중장비 충돌로 인한 사망사고가 발생했다.
이에 이재명 대통령이 잇따른 중대재해를 예방하기 위해 강력한 징계 의지를 피력한데 이어 정부는 9월 ‘노동안전 종합대책’을 내놓았다. 스마트안전장비, AI기반 위험예측 시스템, 외국인노동자 안전 리더 양성, 공공안전관리자 확대 등 대책이 줄줄이 담겼지만, 발표 직후에도 경기도 화성, 성남 분당에서 각각 추락사와 중장비 충돌로 노동자가 숨졌다.
국토교통부 발표에 따르면, 산업재해 사고 사망자는 2분기까지 287명. 이중 건설 사망자가 138명으로 48%를 차지했다. 산업재해의 절반이다. 시행 3년차에 접어든 중대재해처벌법에도 불구하고 건설 사망사고는 줄어들 기미가 없다.
공기 단축을 위해 무리하게 작업을 밀어붙이고, 불법 하도급으로 인한 비용 절감 구조는 여전하다. 결국 위험은 가장 말단의 하청노동자에게 전가되는 구조다. 이 구조가 여전히 작동하고 있는 이상 중대재해는 되풀이될 수밖에 없다.
결국 중대재해의 고리를 끊기 위해 처벌의 수위를 강화하는 것과 함께 예방 중심의 시스템 전환이 필요하다. 산업재해 사망사고 발생시 영업이익의 5% 과징금 부과와 중대재해 사업장에 대해서는 1년간 고용 제한 등과 반대로 근로자에 대한 적절한 의무 부과도 필요하다.
작업 속도를 줄이더라도 안전을 확보하는 방향으로 구조를 바꾸고, 원청 책임을 강화하는 실질적 제도 개편이 뒤따라야 한다.
무엇보다 고령화와 외국인 노동력 중심으로 빠르게 재편되는 산업현장의 인력구조 변화에 대응한 맞춤형 안전대책이 시급하다. 현장의 현실을 외면한 일률적 대책이 아닌 업종별, 사업장 규모별 세분화된 해법이 필요하다. 안전은 시간이 아니라 구조로 보장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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