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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영화 에드워드 버거 감독의 ‘콘클라베’ 평론
‘종교 정치 스릴러’는 퍽 오묘한 명명이다. 통합되지 못할 것 같은 요소들이 삼위일체를 이루기 때문이다. 영화 ‘콘클라베’는 그 오묘한 삼위일체를 적절히 소화한 영화로 여겨진다.
로버트 해리스의 장편 소설 ‘콘클라베(조영학 譯, RHK, 2018. 이 글에서 괄호 안에 쪽수만 표기된 것은 모두 이 책에서 인용됨)’를 각색한 영화 ‘콘클라베’는 가톨릭 교단의 교황 선출 과정에서 성직자들이 벌이는 음흉한 정치적 다툼과 가톨릭이 종교로서 지니면 좋을 유연한 포용력을 상당히 성공적으로 연출했다. 그 연출 요령을 카메라의 시선, 소품 활용, 낮은 명도, 사운드 디자인의 관점에서 분석하면, 이 영화의 성취를 입체적으로 이해할 수 있다.
콘클라베 집행단장 토마스 로렌스를 연기한 랠프 파인즈가 영화 ‘해리 포터’ 시리즈에서 볼드모트로 등장했었음을 아는가. 이 필모그래피를 참고하면, 그가 ‘콘클라베’에서 진중한 추기경으로 등장했음이 꽤 흥미롭게 느껴진다. 볼드모트는 큰 ‘뱀(191쪽)’을 데리고 다니는 악마인데다가 뱀 또한 성경의 창세기에서 가장 간교한 유혹자로 나타난다.
그런 맥락에서 마귀역을 했던 배우가 고위 성직자로 부활했다는 점 자체가 이 영화의 주된 일면을 상징적으로 드러내는 것처럼 다가온다. 그 일면은 “너무도 경건하고 신성(129쪽)”하게 보이는 교황 후보 성직자들의 마음속에 “깊숙이 야심의 악마가 숨어(143쪽)” 있음을 드러내는 데에 놓인다. 더 나아가, 영화는 그 야심 때문에 “인간이 부릴 수 있는 온갖 속임수(157쪽)”가 난무하는 “어둡고 은밀(149쪽)”한 싸움도 보여준다.
그 암투를 보여주려는 목표는 카메라의 시선에서 뚜렷이 나타난다. 영화 첫 장면에서 카메라는 교황의 돌연한 선종 소식을 접한 토마스의 뒷모습을 보여주는데, 이는 종교인들의 사악한 이면을 조명하겠다는 작품의 의도와 그대로 상통하는 바가 있다. 실제로 영화에서 교황청 자체가 제도적 부패로 물든 상태임이 지적되기도 한다. 가톨릭 교단이 불순한 정치 경력이나 아동 성범죄에 연루된 성직자들의 허물을 은폐했음이 추기경들의 대화로 제시되지 않는가.
교황직을 둘러싼 성직자들의 이 치열한 공방을 일종의 성전(聖戰)으로 볼 수 있다면, ‘체스(24쪽)’가 영화의 소품으로 노출된 것도 간과하기 어려운 대목이다. 체스가 선과 악의 전쟁을 축약한 게임이라면, 그 전쟁에 참여하는 기물 중 하나인 비숍은 다른 기물인 룩과 명백한 대비를 이룬다. 후자가 흑백을 직선으로 가로지른다면, 검은 칸이나 하얀 칸만을 사선(斜線)으로 다니는 전자는 은밀한 저격을 계획하는 데에 특화된 주교다. 주교는 성직자다. 그런 점에서 체스 보드에 놓인 비숍은 콘클라베에서 비밀스레 다투는 후보들의 사선(詐善)을 빗대는 소품으로 해석될 수 있다. 토마스가 자신의 표를 넣으려는 순간, 건물의 위쪽 창문을 통해 틈입하는 폭탄 테러의 방향도 ‘대각선(147쪽)’임이 눈에 띈다.
전체적으로 낮은 톤의 명도가 유지되는 것도 종교인의 음습한 면모를 비추는 데에 효과적으로 기여한다. 성직자들이 어둠으로 충만한 밀실에서 비밀회의를 진행하는 장면이 그 단적인 예시다. 그 외에도 콘클라베가 실시되는 공간에는 대부분 흐린 그늘이 져 있다.
사운드 디자인도 작품의 긴장감을 형성하는 데에 가담한다. 다시 초반으로 돌아가 보면, 서서히 긴장감을 조이는 느낌의 사운드가 띄엄띄엄 들리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특히, 토마스가 한 교황 후보의 사임에 관한 증거를 찾으려고 봉인된 교황실로 향해가는 과정에서 긴장감 흐르는 음악이 고조되다, 그가 교황실의 봉인을 파괴하는 찰나에 그 음악이 뚝 끊기는데, 이러한 연출은 토마스의 내적인 갈등과 결단을 적실하게 표현한다.
갈등은 캐릭터의 내면을 넘어 외적 반목으로도 나타난다. 교황청도 사회 집단임을 생각하면, 영화에서 가톨릭 구성원들의 ‘다양성(131쪽)’은 크게 ‘닫힌’ 성향과 ‘열린’ 성향으로 갈라져 상충하는 듯하다. 전자는 “교회를 과거로 돌리려는 파벌(254쪽)”의 보수성을 띤다. 토마스의 연설문은 후자의 역동성을 대표한다. 그 연설에서 “확신은 포용의 치명적인 적(132쪽)”임이 역설되는데, 이 확신은 자신(의 종교적 신념)만 옳다는 아집을 뜻할 것이다. 콘클라베가 가톨릭의 폐쇄성을 반영하는 면이 있다는 점에서 자신과 상반되는 타견도 유연히 포용할 수 있는 태도는 진실한 통합의 기반에 값한다. 이 열린 유연성은 영화 연출 요소들의 조화로운 협동으로도 발휘된다.
아쉬움이 아예 없지는 않다. 소설의 섬세한 인물 내면 묘사가 영화에서는 상대적으로 약화되거나 생략된 점이 있으나, 배우들의 능숙한 연기와 감독의 적정한 연출이 그런 아쉬움을 잘 채워주는 점도 사실이다. ‘콘클라베’를 종교 정치 스릴러 영화의 사위일체라 평가해도 과장은 아닌 까닭이다.
2. 영화 ‘콘클라베’ 줄거리
교황이 심장마비로 돌연 선종한다. 토마스 로렌스 추기경은 차기 교황 선출을 위한 콘클라베를 이끌게 된다. 유력한 교황 후보들이 거론되고 은밀한 경쟁이 이루어지는 동안 많은 사건이 터진다. 아데예미 추기경은 수녀와 관련된 성 추문에 얽히고, 선종한 교황이 트램블레이 추기경의 사임을 요구했다는 폭로도 나온다. 온갖 스캔들로 콘클라베의 행방이 묘연해지던 중, 극단주의 무슬림의 폭탄 테러로 바티칸 시국이 충격과 혼돈에 빠지기도 한다. 수차례에 걸친 콘클라베 끝에 베니테스 추기경이 차기 교황으로 선출된다. 토마스는 베니테스가 성전환 수술을 받았었다는 비밀 고백을 들으나, 그 비밀을 공개하지 않겠다고 결정한다.
3. 감독 에드워드 버거
1970년 독일 출생의 에드워드 버거는 영화 배우 및 감독으로 활동한 이력을 보유하고 있다. 그의 필모그래피에서 빛나는 또 다른 성취로, 그가 감독한 영화 ‘서부 전선 이상 없다(2022)’를 지목할 수 있다. 에리히 마리아 레마르크의 장편 소설 ‘서부 전선 이상 없다(1929)’는 이미 루이스 마일스톤과 델버트 만이 감독하고 연출한 동명 제목의 영화로 각색되어 1930년과 1979년에 각각 발표된 바 있는데, 이 영화사적 계보를 고려했을 때도 에드워드 버거의 ‘서부 전선 이상 없다’는 전쟁의 잔혹한 참상과 그런 전쟁에 던져진 독일 청년의 처절한 몸부림을 실감나게 보여주는 뛰어난 작품으로 판단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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