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일리Talk] 아차 하기 전에 ‘정보 보호막’ 손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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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찬 기자 기자페이지 + 입력 2024-11-29 00:02:30

정보침해 사고는 엎질러진 물 같다. 컵에 담긴 물을 중요한 정보라고 했을 때 물을 보호하고 있는 컵은 보안 체계 혹은 보안 시스템 등의 ‘보호막’이라고 가정하자. 제3자가 책상 위에 있던 내 컵을 건드려 물을 쏟았다면, 해킹 등 사이버 공격에 의해 중요 정보를 유출당한 모습과 썩 닮았다.

이미 유출된 정보를 다시 주워 담을 수도 없을뿐더러 한번 퍼지기 시작하면 피해는 눈덩이처럼 불어난다. 물을 쏟았어도 흘린 물을 닦아 내는 등의 뒷수습이 전부인 것처럼 침해사고 이후에도 피해 기업이나 개인이 할 수 있는 일은 많지 않다.

그런데 물이 담긴 내 컵을 누군가가 완전히 통제하고 있다면 어떨까. 그 사람이 쏟아 버리는 것도, 컵을 돌려주는 대가를 요구하는 것도 가능하다.

이달 초 익명의 보안 전문가는 기자에게 국내 최대 기업인 삼성의 해킹 관련 소식을 제보했다. 삼성의 방화벽 서버의 최상위 관리자 권한을 해커가 탈취했다는 주장이 나온 것이다.

방화벽은 외부에서 내부망에 침입했을 때 이를 감지하고 차단하는 역할을 하는 ‘정보 보호막’이다. 외부망에서 내부망으로 침입을 시도할 때 방화벽 시스템을 통과하지 못하게 하면서 내부망에 존재하는 정보를 보호하는 시스템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문제는 방화벽 최고 관리자 권한을 해커가 탈취했다는 것은 방화벽을 마음대로 제어할 수 있고, 우회 등의 방법을 통해 중요 정보를 빼돌리는 것도 가능하다는 점이다. 이 경우 정보 유출이나 정보를 볼모로 금전 등을 요구하는 랜섬웨어(Ransomware) 피해를 입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삼성 측은 해커의 주장이 사실 무근이라고 강조했지만 제보자에 따르면 해커는 방화벽 최고 관리자 권한으로 접속했다며 관련 사진과 내부망에 접속한 것을 인증한 IP 대역 화면도 보여 줬다. 삼성이 사용하는 방화벽 장비 인증 사진도 보내왔다.

이달 21일 이 해커는 또 방화벽을 호스팅하는 서버 접근 권한을 판매한다는 게시글을 올렸다. 우리나라 기업을 포함해 해커가 접근 권한을 탈취한 방화벽 장비를 사용하는 기업들은 모두 피해를 입을 가능성이 있다.

보안 전문가는 방화벽 장비의 취약점이 원인으로, 피해가 이어지는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방화벽 취약점을 이용해 기업에 침투하고 중요 정보를 유출·탈취해 랜섬웨어 등의 피해로 번질 우려도 나온다.

강동화 한국인터넷진흥원 책임연구원이 최근 진행된 ‘2024 하반기 침해사고 정보 공유 세미나’에서 발표한 내용에 따르면 올해 랜섬웨어 침해사고 신고 및 기술지원 요청은 상반기보다 6·7월을 기점으로 하반기에 급증하는 양상이다.

해당 세미나에서 장호민 블루데이타시스템즈 리더는 “해킹 등의 사이버 공격 이후 유출된 정보는 포럼이나 다크웹 등에서 거래되고 있었고, 피해 기업이나 기관은 뒤늦게 인지하는 경우가 빈번했다”고 경고한 바 있다.

엎질러진 물과 침해사고가 다른 점이라면 실제 물이라면 쏟았을 때는 ‘아차’ 하며 알아차릴 수라도 있지만 사이버 공격은 피해를 알아채기도, 복구하기도 어렵다는 것이다. 사이버 공격이 교묘해지는 현재, 물이 엎질러지지 않도록 조심하고 주변에 위험 요인은 없는지 지속적으로 감시하는 것이 보안의 시작점이 아닐까.

‘컵’의 역할을 하는 방화벽 장비에 대한 침입 시도도 빈번해지는 만큼 적절한 점검도 필요하다. 각 기업 및 기관의 정보보호 담당자는 사용하고 있는 방화벽 장비의 취약점이나 침입 흔적이 있는지 살펴보고 조속한 조치에 나서야 한다.

김기찬 기자 gckim@skyedaily.com 기자페이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