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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버킷 리스트 말고 성장 리스트 어때?', '자연에는 멈추지 않는 성장이 있을 뿐이고 인간도 그렇게 살아가...'))
오랜만에 친구를 만나 이야기하다가 건강과 노화로 화제가 이어졌다. 나보다 서너 살 연하인 그녀는 근육과 피부 상태가 매우 좋다. 출근 전 헬스장에서 운동하고 저녁식사 후 1시간 이상 걷고 취침 전후로 침대에서 근육 운동을 빼놓지 않는다. 종종 마라톤도 완주한다는 말을 듣고 게으른 운동 지진아인 나는 입이 떡 벌어졌다. 역시나 나의 예상대로 그는 학생 때부터 운동을 잘하는 운동 천재였다.
현대 과학은 우리의 젊음과 아름다움을 적극 지지한다. 늙어 가는 것은 슬픈 현상이기 때문이다. 대중가요 가사 중에는 우리가 늙어 가는 게 아니고 익어 간다는 반론이 있는데, 늙든 익든 간에 똑같은 현상을 두고 말만 바꾼 것이고 보면 나이 먹는 게 즐거운 일은 아니다. 우리는 할 수 있으면 세월의 흔적을 없애려고 한다. 그런데 선천적으로 나이를 알 수 없는 사람도 있다. 유전자 덕분(?)이다.
‘신드롬X(Syndrome X)’ 또는 ‘네오테닉 콤플렉스 신드롬(Neotenic complex syndrome)’이란 병이 있다. 아기의 모습으로 성장이 멈춘 브룩 그린버그(Brooke Megan Greenberg·1993~2013)라는 여성 환자가 있었다. 미국 메릴랜드주에서 태어난 그녀는 갓난아기 때 성장이 멈췄다. 6살 때까지 뇌종양을 비롯한 여러 질병에 시달렸으며 겨우 20세까지 생존했다. 그녀의 성장이 멈춘 원인을 알 수 없었던 의사들은 잠정적으로 신드롬X라는 병명을 붙였다.
브룩은 몸무게가 7.3㎏, 키가 76㎝에다가 생후 9개월 유아의 정신 수준으로 20년을 살았다. 신드롬X 외에도 성장호르몬 결핍·뇌하수체 기능 저하증·골화석증 등으로 뼈나 피부가 성장하지 않는 장애도 있다. 성장이 멈춘, 즉 노화가 진행되지 않는 이들은 행복할까. 결코 그렇지 않다. 범상치 않은 자신의 유전자로 인해 세상 속에서 어울려 살기 힘드니 말이다.
가을날 붉게 물든 단풍 속에서 아직까지 초록으로 빛나는 잎은 탄성을 자아낸다. 언젠가는 붉어지겠지만 그래도 오랫동안 푸르고 생생하게 유지되는 것을 보면 부러운 것이 노화를 바라보는 우리의 심정이다. 자연의 법칙으로 볼 때 단풍은 노화가 아닌 식물의 성장 과정의 하나일 뿐이다. 여기에 묘미가 있다. 인간이 지닌 편견과 그것이 만들어 낸 단어들을 뒤집어 볼 일이다.
자연에는 멈추지 않는 성장이 있을 뿐이고 인간도 그렇게 살아가게 되어 있다. 요즘에는 쉼 없이 활동하는 장년과 노년층이 많다. 그분들의 빛나는 성장은 우리를 압도한다. 시니어 대회에서 근육을 뽐내는 몸짱·건강짱 언니·오빠들은 우리를 설레게 한다. 100세를 훌쩍 넘기고도 온 나라를 다니며 강의와 저술 활동을 하는 노학자 김형석 선생은 후배들에게 다이아몬드 같은 지혜를 안겨 준다.
이분들의 비결은 무엇일까. 나이를 먹었으니 이제 삶의 속도를 늦추자는 생각, 이제 성장을 멈추자는 생각이 아예 없는 점이다. 솔직하고 소탈하게 삶에 임하고 아이처럼 호기심과 정열이 넘치며 주변 사람들과 무엇이건 나누는 분들이다.
기본에 충실하면 삶은 행복하다. 성장을 멈추려고 하지 않으면 삶은 항상 싱싱하다. 중국의 상(商)나라를 건국한 탕(湯)왕은 세숫대야에 마음에 담을 글귀를 새겨두고 매일 보았다. 바로 “구일신 일일신 우일신(苟日新 日日新 又日新)”이라는 유명한 글이다. 하루하루가 새로우려면 나날이 새롭게 하고, 또 매일 새롭게 해야 한다는 뜻이다. 하늘이 택한 아들인 천자(天子)는 인간 사회에서 가장 높은 자리에 있는 인물이었다. 특히 탕왕은 천명을 받들어 하(夏)나라의 폭군 걸(桀)왕을 처단하고 새로운 세상을 열었다. 백성의 환영과 지지는 하늘을 찔렀고 천하가 그의 손 안에 있었다.
부러울 것 없고 두려울 것 없는 탕왕이 세숫대야에 ‘매일을 새롭게 만들어야 한다’고 새긴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탕왕은 성장이 멈추는 것을 가장 두려워했을 것이다. 지도자의 마음이 해이해지면 자신뿐 아니라 국가도 후퇴한다. 그는 혁명을 통해 되찾은 자유와 행복을 날로 발전시켜야 한다고 결심했다. 그래서 매일 아침 만나는 세숫대야에 좌우명을 새겼고, 후대의 우리는 탕왕의 반명(盤銘)을 마음에 새긴다.
이처럼 유학의 수신(修身)은 흐르는 물결을 거슬러 올라가는 것이다. 잠시도 쉴 수 없다. 노 젓는 손에서 힘을 빼는 순간 하류로 곤두박질한다. 수신은 나이와 관련이 없다. 한순간 성장을 멈춘다면 우리는 신드롬X 환자가 된다. 아이들에게 나이에 따른 과업이 있는 것처럼, 중년은 중년의 발달 과업이, 장년은 장년대로 노년은 노년대로 성장 과제가 있다. 죽기 전에 하고 싶은 일을 기록한 버킷 리스트는 한편으론 공허하다. 죽음은 언제 올지 모른다. 일신우일신의 마음으로 매일매일 수행할 성장 리스트가 필요하다. 나이와 전혀 무관하게 성장하면서 자연처럼 식물처럼 우리는 완성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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