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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 이후 탄핵 정국으로 정치 불안정성이 커지자 경제 상황이 급속히 악화하고 있다. 그러잖아도 고환율·고물가·고금리로 가계와 기업의 살림살이가 휘청대는 판국에 설상가상의 형국이다.
한국경제인협회 등은 국내 매출액 500대 기업들도 정치 리스크와 원·달러 환율 급등 등으로 올해 경영 환경이 악화할 것으로 예상했다. 국정 리더십 불확실성이 고조되면서 외교 고립 및 안보 위험 경고음도 커지고 있어 내우외환의 복합위기에 처했다고 하겠다.
금융 현장이 이를 잘 보여 주고 있다. 증시 자금이 초단기채 펀드와 종합자산관리계좌(CMA) 같은 ‘파킹형’ 상품으로 몰리고 있다. 지난해 연말 국내 채권형 펀드 중 초단기채 펀드 65개의 설정액은 33조7298억 원으로, 일주일 동안 1조121억 원이 새로 설정됐다. 같은 기간 국내 채권형 펀드 353개의 전체 설정액이 1조1368억 원 늘어난 것을 보면 사실상 국내 채권형 펀드 유입 자금 대부분이 초단기채 펀드로 몰린 것이다. 국공채권 펀드 94개의 설정액이 500억 원이나 줄어든 것과 대조된다.
파킹형 상품은 단기 자금을 안전하게 운용해 소액의 수익을 기대할 수 있는 상품으로, 채권이나 단기 금융상품에 주로 투자하는 것이 특징이다. 주식시장에 즉각 투자하기가 부담스러운 상황에서 자금을 잠시 보관해 두면서도 적절한 수익을 얻고 싶은 투자자들이 선택하고 있다. 파킹형 상품에 투자가 몰리는 것은 투자자들이 우리의 정치 경제 상황을 불안하게 보고 있다는 방증이다.
사실 투자처를 찾지 못해 이곳저곳 기웃 거리며 떠돌아다니는 국내 부동자금은 1200조 원가량인 것으로 추산된다. 올해 국가예산(670여조 원)의 2배다. 이렇게 많은 돈이 투자처를 찾지 못해 언제든 찾을 수 있는 요구불예금·머니마켓펀드(MMF)·단기채권형 펀드 등 1년 미만의 수익성 자금에 머물고 있다는 얘기다.
이러니 ‘돈맥경화’라는 말이 나온다. 실제로 돈이 도는 속도는 눈에 띄게 더뎌졌다. 한국의 통화유통속도 하락률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최상위다. 저성장과 저물가 상황이니 당연한 결과다. 결국 부동자금의 물꼬를 다른 방향으로 트는 게 답이다. 바람직한 방향이어야 함은 물론이다. 바로 증시를 비롯한 자본시장이다. 부동자금을 제도권 생산자금으로 선순환 시켜 경제의 활력소가 되도록 해야 한다.
근원적인 해법은 기업에 희망을 주는 것이다. 정부는 예측 가능한 정책을 추진하고, 기업하기 좋은 여건 조성이 긴요하다. 노동·조세·규제 분야를 유연하게 운영해 시장 신뢰를 쌓아야 한다. 예컨대 더불어민주당이 추진하는 상법 개정안은 국제적 스탠더드에 맞지 않고, 경제를 옭아매는 규제이기에 철회돼야 마땅하다.
민주당의 상법 개정안은 ‘주주’에 대한 이사의 충실의무를 규정한 것이 핵심이다. 이사가 ‘충실’해야 하는 대상을 기존 ‘회사’에서 ‘회사 및 주주’로 확대했다. 이사의 경영활동이 회사뿐만 아니라 소액주주들을 위하기도 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는 정상적인 기업 활동을 가로막아 시장에 악영향을 끼칠 게 불 보듯 훤하다. 개정안이 통과될 경우 많은 기업이 소송 남발과 해외 투기자본의 공격에 시달릴 게 우려된다.
한국의 노동 유연성(97위)과 채용·해고 유연성(102위)은 해외 다른 나라들에 비해 경직돼 있다. 한국이 뛰어난 인프라와 생활 여건에도 해외 기업 유치에 어려움을 겪는 이유는 과도한 규제가 꼽힌다. 외국 기업의 한국 입성을 막는 과도한 규제로 주 52시간 근무제·비정기 세무조사·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중대재해처벌법 등이다. 정부와 정치권은 기업과 투자자들이 한국의 정치·경제 전망을 밝게 보고 마음껏 투자하도록 여건 조성에 힘쓰길 촉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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