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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2기 주요직 인사에서 확고한 방향성과 실천 의지를 보여준다. 트럼프가 마크 루비오 국무장관, 피터 헤그세스 국방장관, 마이크 왈츠 국가안보보좌관 등 외교·안보 라인을 대(對)중국 강경파로 채우고 군사력 초격차 복원 및 미군 재건을 천명한 가운데 두 정보 수장 지명자들이 새삼 눈길을 끈다. 연방수사국(FBI) 수장과 국가정보장(長)으로 번역될 DNI(Director of National Intelligence) 인사엔 21세기 하이브리드전(戰)의 한 축인 정보 전쟁을 향한 트럼프의 각오가 드러난다.
각각 FBI국장과 DNI에 지명된 캐시 파텔(44)과 털시 개버드(43) 모두 ‘부정선거’ 문제에 강한 공감을 표해 온 사람들이다. 특히 파텔은 과거사 관련해서도 성역 없이 털고 수사할 것을 예고해 기대와 두려움을 모은다. 여기엔 중국 우한발(發) 코로나19 문제도 들어간다. 상원 다수당(53석 대 47석)인 공화당에서 반란표(3표)만 안 나오면 인준안 통과가 무난해 보인다. 지난 4년간 ‘이름만 공화당원’으로 불리던 반(反)트럼프 의원들이 선거를 통해 모두 퇴출됐으며 중국의 위험성엔 초당적인 합의가 뚜렷하므로 반란표 가능성은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
30일(현지시간) 파텔의 상원 인사청문회는 예상 대로 민주당 측 공세가 뜨거웠다. 특히 2021년 1월6일 워싱턴DC 의사당 사태를 둘러싼 날선 질문들이 쏟아졌다. 2020년 11월 대선의 투·개표 공정성을 의심하며 미 전역에서 모여든 사람들은 예기치 못한 사태에 휘말려 사상자가 발생했다. 이 사건의 관련자 1500여 명을 트럼프 대통령은 취임식 당일 사면 내지 감형했다. 게중엔 20년형을 받고 복역 중인 경우도 있었다. 이에 대한 의견을 묻자 파텔은 “법 집행자에게 폭력을 휘두른 사람의 감형에 동의하지 않는다”고 답했다.
파텔의 이런 답변은 이른바 ‘트럼프 충성파’ 낙인에 맞선 정치적 수사로 들리기도 한다. 국내외 주류 언론이 트럼프2기 인사들을 마치 개인적 충성심으로 무장된 사람인양 몰아갈 때 쓰는 ‘트럼프 충성파’란 사실상 ‘마가(MAGA·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충성파’를 가리킨다. 19세기 제국주의적 이미지를 덧씌워 MAGA를 설명하려는 시도엔 정치적 의도가 엿보인다. 미국은 1990년 전후한 냉전체제 붕괴 이후 단일 초강대국으로서 세계 곳곳의 전쟁에 관여하며 내부적으로 무너져 갔다. 천문학적인 예산이 해외에서 낭비되는 동안 문화적 마르크시즘인 피씨즘(정치적올바름주의)·워키즘(깨시민주의) 확산과 미국 역사의 악마화 속에 병을 키웠다.
2000년대 초 아들 조지 부시(공화당) 대통령 시절 공화당 네오콘과 민주당 리버럴이 중국 투자와 방위산업 등 부문에서 이해관계를 함께 하게 된 이래 미국 사회는 ‘진보’의 이름으로 본격 좌경화했다. 그런 배경 아래 2008년 버락 오바마 정권이 등장했으며 이후 8년간 기독교국가 미국의 정체성은 상당히 지워졌다. ‘메리 크리스마스’ 대신 ‘해피 홀리데이’를 쓰게 했고 남녀 생물학적 차이를 없앴다. 기존 성소수자 LGBTQ에 추가된 Q(본인도 모름)와 X(그때그때 다름)가 여권 등 공식 문서 성별란에 표기되기 시작한 게 오바마 대통령 때부터다. 중국 공산당과의 연대 속에 양국 엘리트들이 거대한 부와 명예를 쌓는 동안 미국 사회의 양극화가 가속화됐다. 중국 고도성장과 미 중산층 몰락은 동전 양면이나 다름없다.
인사청문회에서 파텔은 FBI가 ‘트럼프 정적에 대한 보복 도구’로 사용될 위험성이 지적되자 “모든 FBI 요원은 ‘정치적 응징’으로부터 보호받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아울러 국장 재임 중 오로지 사실과 법률에 기반해 수사할 것, ‘정적 리스트’ 등은 존재하지 않으며 퇴행적 행동을 하지 않을 것을 다짐했다. 트럼프가 총 10년 임기의 상당 부분 남아 있던 전임 크리스토퍼 레이 국장을 자진 사퇴로 내몰면서 발탁한 파텔이기에 야당 의원들이 불신을 노골적으로 드러냈다. 딕 더빈 의원(민주·일리노이)은 파텔에 대해 “(FBI를 이끌) 경험도 자질도 판단력도 갖추지 못했다. 자신의 정치적 불만에 잠식당할 사람이 아니라 임무의 엄중함을 이해하는 FBI국장이 필요하다”고 목소리 높였다.
인도계 이민자 2세인 파텔은 트럼프1기 때 백악관 국가안전보장회의(NSC) 대테러 담당 선임 국장, DNI실 수석 부국장, 국방장관 대행 비서실장 등을 역임했다. 트럼프 인사엔 능력주의와 ‘부정선거’ 공감대가 중요하게 작용한다는 공통점이 있다. 2기 다른 각료급 인사들처럼 파텔 역시 누구보다 부정선거 문제를 둘러싸고 강한 확신을 내비쳐 왔다. 파텔이 바이든 행정부 출범 후 재야에 있던 2023년 12월 한 팟캐스트에 출연해 2020년 대선을 ‘사기’로 규정하며 트럼프 재집권 시 바이든 승리를 도운 언론인 등을 추적할 것을 공언하기도 했다.
한편 같은날 개버드 DNI 지명자 인사청문회에선 안보 관련 질문이 많았다. 개버드는 미국의 대북정책 우선순위와 관련해 “핵무기와 미사일 프로그램 위협 경감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며 “생애 대부분을 아시아·태평양 지역에서 보냈기에 북한 미사일·핵 능력 강화에 특별한 시각이 있다”고 말한 대목은 미국인들의 실존적 공포를 대변해 준다. 2018년 1월 하와이주에선 실수로 탄도미사일 경보가 발령돼 일대 혼란이 벌어진 바 있다. 이어 “정보공동체(16개 정보 관련 기구·부서들)가 대통령과 정책 입안자들에게 북한의 능력과 의도에 관한 정확하고 시기적절한 객관적 평가를 제공해야 할 것”임을 분명히 짚었다.
DNI는 백악관 외부의 독립기관이면서 대통령 직속 중 하나이자 장관급이다. 9.11 테러 이후 16개 미 정보 관련 기구들(정보공동체)의 업무충돌 및 협조차질 문제를 해소하고자 사령탑 격으로 2005년 신설됐다. 모든 정보를 취합하고 국가안전보장회의(NSC)에 자문을 제공하는 역할이므로 FBI와 중앙정보국(CIA)의 위상을 능가한다. 첩보 실무를 수행하진 않으며 정보공동체 소속 기관으로부터 올라온 보고를 정리하고 교환과 협업이 원활히 이뤄지도록 감독한다. 과거 국방장관 관할이던 국방부 내 정보기구 관리 및 400억 달러(58조3000억 원) 가량의 예산권까지 DNI가 가진다.
CIA국장이 하던 대통령 일일 보고까지 DNI가 직접 맡는다. DNI와 CIA 간 영역 다툼이 2009년에야 조정됐을 만큼 진통도 있었다. CIA국장은 수석대변인의 외국 파견 건에 전권을 가지지만 전체적인 CIA 통솔은 DNI다. DNI가 CIA 주도 첩보작전 관련 회의에 참석하며 CIA국장의 백악관 브리핑에 배석한다. 의회에 불려 나와 행정부를 대표해 발언하는 것도 DNI 쪽이 많아 백악관은 CIA가 DNI에 모든 첩보활동을 보고하고 주기적 조정을 받도록 했다. 모든 회의에 CIA 국장이 자동 참석하는 것 또한 옛말이다. 필요할 때 DNI가 정보공동체 중 최적합 기관을 골라 편성하게 돼 있다.
개버드 DNI 지명자는 카리스마·명석함과 독특한 이력으로 주목받아 왔다. 20년 이상 미군에 복무했으며 쿠웨이트 파병 최초의 미 여군이자 여러 나라에서 훈장을 받은 예비역 중령이다. 4선 하원의원(하와이주)으로 2020년 민주당 대선 경선까지 출마했지만 좌경화·특권화한 민주당에 깊이 실망한 나머지 작년 탈당하고 공화당에 입당해 화제를 뿌리기도 했다. 개버드는 민주당과 네오콘 주도의 해외 전쟁을 맹공격해 왔으며 대러제재에도 강하게 반대한다.
서면 답변을 통해 개버드는 ‘향후 5년간 미 정보공동체가 관심 가져야 할 국가안보 주요 위협이 무엇인가’ 질문에 가장 시급한 과제로 ‘이슬람 테러의 국내 위협’ ‘잠복 중인 (적국)공작원’ ‘감춰진 수백만 명의 불법이민자 유입이 국내 안보에 미칠 영향’ ‘중국·러시아 등과의 전략적 경쟁’ ‘국가·비국가에 의한 사이버보안 위협’ ‘북핵 및 핵 완성 단계인 이란’ ‘국제 조직범죄 및 마약 신디케이트의 지속적인 위협’ 등을 꼽았다.
‘대북정책 우선순위’에서 개버드가 “핵무기 및 미사일 프로그램으로 인한 위협을 줄여 미 국가안보 이익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 긴장 완화와 갈등 예방에 힘쓰며 북한이 야기한 안보문제에 장기적인 해결 여건 조성을 목표로 해야 한다”고 답한 대목, 그녀가 제시한 북핵 해법에 기존의 ‘CVID’(완전 검증 가능하며 복원 블가능한 비핵화)가 빠진 점에 이목이 쏠리기도 한다.
개버드의 해법은 앞서 헤그세스 국방장관이 북한을 핵보유국(nuclear power)으로 칭한 것의 연장이라고 풀이될 수 있으나, 역대 민주당 정권이 ‘전략적 인내’를 명분 삼아 현실을 무시하면서 결국 북한에게 시간을 벌어준 것이라는 비판을 고려할 때 오히려 과거보다 적극적인 대응을 암시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마치 트럼프정부가 조만간 한국을 제낀 채 북한 김정은과 거래를 벌일 것처럼 내다보는 일각의 주장 등은 트럼프와 미국에 대한 막연한 혐오감 조장이 의심되기도 한다.
다만 북핵 위협을 ‘없애자’ 대신 ‘줄이자’ 등 ‘장기적인 해결’을 요하는 과제로 표현한 개버드의 발언을 둘러싼 섣부른 해석이 우려된다. 이미 북한은 ‘핵보유국’이므로 더이상 핵폐기를 요구하지 말고 서로 위협만 피할 협상 방향을 잡았다는 식의 분석, 심지어 ‘미국이 다른 나라 정권을 무너뜨린 역사가 북한의 핵개발을 부추켰다, 북한에겐 핵무기가 정권교체 압박에 맞설 유일한 억지 수단’ 등으로 개버드의 입장을 읽어내는 것엔 북한과 친북 세력의 오랜 논리가 녹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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