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으로 쓰는 역사 [50] 밤에 피어나 달을 맞이하는 노란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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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물로 먹을 수 있는 어린 순과 뿌리

스카이데일리 기자페이지 + 입력 2025-02-25 09:00:56

▲ 달맞이꽃 봉오리는 낮 동안 오므라들었다가 밤이 되면 활짝 벌어진다. 윤상구 사진작가

달맞이꽃 봉오리는 낮 동안 오므라들었다가 밤이 되면 활짝 벌어진다. 강한 햇빛 아래서는 꽃을 피울 수 없는 유전적 특징을 가졌기 때문이다. 그래서 ‘달맞이꽃’이라는 이름이 붙었지만 햇빛이 별로 없는 날에는 낮에도 꽃을 피운다. 7월부터 가을까지 노란색 꽃이 피는데 나방이나 박각시 등 밤에 활동하는 곤충의 도움으로 수분한다.

꽃 지름이 보통 달맞이꽃보다 10㎝ 가까이 커다란 큰달맞이꽃은 멘델의 법칙을 재발견하게 한 식물이다. 네덜란드 식물학자이며 유전학자인 휘호 마리 더프리스(Hugo Marie de Vries)가 1901년 달맞이꽃을 연구하던 중 유난히 큰 달맞이꽃 발견했고 교잡 실험을 통해 진화의 요인이 돌연변이에 있다는 점을 밝혀냈다.

멘델의 법칙을 재발견하게 해준 큰달맞이꽃

휘호는 자신의 연구 결과를 발표하며 그로부터 35년 전 멘델이 실험한 논문을 첨부했다. 멘델은 생전에 연구 성과를 제대로 인정받지 못했다. 하지만 휘호를 비롯하여 카를 코렌스와 에리히 체르마크 등 학자들을 통해 멘델의 유전법칙과 생물학적 돌연변이설이 세상에 알려졌고 이후 그는 ‘유전학의 아버지’라는 명성을 얻었다.

염증을 완화하는 성분이 들어있는 달맞이꽃 씨 기름은 피부병을 비롯한 여러 질환을 치료하는 데 효능이 있다고 한다. 꽃은 효소·차를 만들어 먹고 어린 순이나 뿌리로는 나물을 해 먹을 수 있다. 그런데 북한에서는 달맞이꽃 뿌리가 별미 음식이 아니라 ‘고난의 행군’ 시기에 먹을 것이 없어 캐 먹은, 일종의 구황 식물이었다고 한다.

‘고난의 행군’은 원래 1938년 12월부터 100여 일 동안 김일성이 이끄는 빨치산이 중국 지린성에서 압록강 연안 국경 지대까지 실행한 행군을 말한다. 이때는 행군하면서 유격전을 펼치는 것은 물론 -40℃ 내외의 모진 추위, 가슴 높이까지 쌓인 눈, 식량난과도 싸워야 했다고 한다. 그러나 이런 악조건을 이겨낸 이들은 어떤 역경 속에서도 동요하지 않는 혁명 정신의 상징이 되었다.

사상과 교양 학습 수단으로 이용되는 고난의 행군

실제로는 일본군과 싸우기보다 만주의 민간인 마을을 주로 약탈했다고 하는데 북한에서 ‘고난의 행군’은 역사적으로 중요한 사건으로 기려지고 있다. 이 용어는 1956년 말부터 시작된 천리마운동 때 사상과 교양을 학습하는 수단으로 다시 나타났다. 북한이 위기에 처했을 때 이를 극복하기 위한 구호로 소환되는 ‘고난의 행군’이 본격적으로 쓰이기 시작한 때는 1990년대 중반이다.

이 무렵 러시아를 비롯한 동유럽 사회주의 국가들과의 연대가 깨지고 그들에게 더 이상 도움을 받지 못하게 된 북한은 심각한 경제난을 겪었다. 게다가 최악의 천재지변이 닥치면서 대기근 상태가 되었고 수많은 사람이 굶어 죽었다. 정책 실패까지 겹친 대참사였지만 1996년 1월1일 ‘노동신문’ 등에서는 “모자라는 식량을 함께 나눠 먹으며 일본군에 맞서 투쟁한 항일 빨치산의 눈물겨운 고난과 불굴의 정신력”을 일깨우며 “전체 당원들과 인민군 장병들과 인민들은 백두 밀림에서 창조된 고난의 행군 정신으로 살며 싸워나가야 한다”고 주민을 설득했다.

이후 ‘고난의 행군’은 1995~2000년까지 북한에서 발생한 대기근을 일컫는 용어가 되었다. 체제 붕괴 위기까지 몰고 갔던 이 상황을 북한 주민들은 ‘미공급 시기’라 부른다고 한다. 식량 등 거의 모든 물자를 배급에 의존하여 살았던 북한 주민에게 그 시기에 배급이 중단된 것이다.

굶주린 북한 주민에게 구황 식물이 된 달맞이꽃

▲ 달맞이꽃은 효소, 차를 만들어 먹고 어린 순이나 뿌리로는 나물을 해 먹을 수 있다. 윤상구 사진작가

1990년대 초부터 식량 배급이 줄어들기 시작했다. 1년에 10개월 혹은 8개월분 식량만 공급되었다. 이전에도 배급 감량은 있었지만 이때만큼 심각하지는 않았다. 또 감량 원칙도 없어서 주민들은 언제, 얼마나 식량이 줄어들지 몰라 두려움에 떨었다. 1995~1998년 사이에는 그나마의 배급도 완전히 중단되었다.

당을 믿고 의지하던 북한 주민들은 아무 대책 없이 배급만 기다리다가 굶어 죽었다. 산 사람들은 입에 넣고 먹을 수 있는 것이라면 무엇이든 먹었다. 미국 소설가 펄 벅이 중국에서 살던 경험을 바탕으로 쓴 소설 ‘대지’에는 굶주린 자식들에게 흙물 먹이는 대목이 실려 있다. 뭔가 영양분이 있기에 흙에 심긴 식물이 자랄 것 아니냐는 나름의 논리도 내놓았다. 그런 정도의 상황에서 달착지근한 달맞이꽃 뿌리는 꽤 먹을 만한 ‘식량’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달맞이꽃인들 얼마나 오래 남아 있었겠는가.

북한 지도부가 뭐라고 선전하든 주민들의 고난의 행군은 여전히 계속되고 있다. 일반적으로 북한에서 필요한 식량은 약 600만t이라고 하는데 2023년 북한의 식량 생산량 추정치는 482만t 정도에 그쳤다고 한다. 그런데 북한은 이미 알려진 여러 가지 이유로 외국에서 식량을 수입할 수 없다. 유엔세계식량계획(WFP)은 2022년 보고서에서 북한 인구 2590만 명 중 40%가 넘는 1070만 명이 영양실조 상태라고 밝혔다. 북한의 문제가 식량 부족에서 그치지 않음은 물론이다.

[글 황인희 사진 윤상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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