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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지 ‘실천문학’ 편집위원 일을 그만둘 즈음, 실천문학사 대표였던 김영현과 나는 반목까지는 아니더라도 그다지 편할 수만은 없었다. 아마도 1997년에서 1998년으로 넘어가는 겨울날, 홍대입구역 가까운 리치몬드 제과점, 거기 포장마차가 한둘 장사를 하고 있었다. 열한 시나 열두 시 가까웠을 것 같고, 나는 그에게 뭔가 심하게 항의를 표명했다. 가난한 잡지사에는 일이 많았고, 이를 마지막으로 나는 바람 부는 겨울 거리에 홀로 나섰다.
그가 마지막 작품 ‘열세 번째 사도(2023)’를 탈고하고 내게 작품을 읽어달라 했을 때, 이미 앙금은 녹아내린 뒤였다. 하지만 그의 ‘내면 풍경’을 헤아릴 여유는 갖지 못했다. 해설은 그렇게 아주 잘 쓰는 젊은 비평가에게 넘어갔다. 그 뒤 그가 느닷없이 중풍을 앓고, 한 해 지나 세상을 떠나기까지 했다. 1955년 2월 25일생, 2025년 5월 9일 졸. 요즈음의 통념으로, 세상을 떠나기에 70세는 결코 충분하지 않다.
1990년에 그가 창작집 ‘깊은 강은 멀리 흐른다’를 펴냈을 때, 비평가 권성우와 정남영, 그리고 작가 자신 사이에 논쟁이 오갔다. 그는 자신을 작가로 떠오르게 한 긴급조치 9호 시대의 운동·투옥·강제징집·5·18 시절 고문당한 체험들을 소설 속에 담았다. 그리고 이는 마치, 저 1930년대에, 임화와 김남천 사이의 ‘물 논쟁’처럼 체험적 고백의 진정성(‘내면성’)인가, ‘당파적 현실주의’의 기율인가 하는 논란을 낳았다.
이제 그의 최후작 “열세 번째 사도”을 다시 읽으며, 그가 어째서 그렇게 ‘유다’의 숨겨진 진실에 매달렸던가 생각한다. 그의 삶의 이력을 뒤적이자, 박흥규 목사라는 한 기독교 공동체주의자와 그의 인연이 찾아진다. 투쟁을 통해 사회를 바꾸고 싶었던 그는 군대에 끌려가 전방 포병부대에 배속된 후 간성에 있는 교회로 이 목사를 찾아갔던 것이다. 어쩌면 그는 자신의 내면 깊은 곳에, 마르크시즘적 투쟁과는 다른, 기독교적 절대 원리를 향한, 또 다른 방식의 구원의 희구가 내연(內燃)하고 있었던 것이었다. 1970년대 말 1980년대 초의 지식인들에게는 이 비루한 세상의 종교적 초극과 현실적 저항 사이의 거리가 그리 멀지 않았던 것이었다.
1990년대를 통과해서 2000년대에 접어들어 김영현은 종교적 초극을 통한 구원 쪽으로 심정이 완연히 기울었던 듯하다. 사실, 1980년대 중후반의 속화된 마르크스·레닌주의나 또 다른 의미의 속류적 혁명 사상을 위해서는 ‘유다’가 되지 않아서는 안 되는 것이었다. 그래야만 새 길을, 진정한 구원을 찾아볼 수 있었던 것이었다.
1930년대의 작가 김남천은 전향과 선을 그은 ‘주의자’의 길을 위해 ‘유다적인 것과 문학(조선일보, 1937.12.14.~18)이라는 평문을 썼다. 아주 오랜만에 다시 이 글을 찾아본다. 그는 진정한 사람이었지만 불운했고, 뿐만 아니라 예지력 같은 것은 갖추지 못했다.
김영현은 두 길 사이에서 고민한 사람, ‘유다’에 이끌리지 않을 수 없었고, 자신의 새 길을 찾지 않을 수 없었다. 그가 속한 시대에서 흔치 않은 작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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