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정치는 지난 10여 년간 거리의 분노와 함께 요동쳤다. 2018년 겨울 유류세 인상에 반발해 촉발된 ‘노란조끼 운동’은 그 출발은 단순했다. 그러나 이것이 곧 생활비 폭등, 사회적 불평등, 정치 엘리트에 대한 불신이 뒤섞이며 전국적 항쟁으로 번졌다. 매주 토요일마다 전국의 도로와 광장이 봉쇄됐고, 수개월간 이어진 시위는 단순한 세금 저항을 넘어 “우리를 대변하지 않는 정치에 대한 거부”라는 목소리로 확장됐다. 민주주의의 심장이라 여겨지던 프랑스에서조차 광장의 함성이 제도 정치의 언어를 압도했던 것이다.
그리고 2025년 여름, 프랑스는 다시 한번 ‘국가 마비 운동’이라는 이름으로 멈춰 섰다. 프랑수아 바이루 총리가 국가 부채 감축을 이유로 긴축재정안을 발표하자 도로·철도·학교·관공서까지 차례로 봉쇄됐다. 내무부 집계로는 약 18만 명이 참여해 550건의 집회, 262건의 봉쇄, 800여 건의 반정부 행동이 이어졌다. 경찰과 시위대의 충돌로 500여 명이 체포되고, 곳곳에서 방화와 약탈이 발생했다. 국채 금리는 치솟았고 국가 신용등급은 하향됐다. 끝내 내각은 불신임으로 교체되며 정치적 파국에 이르렀다.
이 사태의 핵심 요구는 긴축 반대, 공공서비스 방어, 생활비 인상 억제, 불평등 해소였다. 2018년 노란조끼가 남긴 숙제가 여전히 풀리지 않았음을 방증하는 대목이다. 광장은 다시 한번 제도 정치를 압도했고, 프랑스 민주주의의 균열은 더욱 선명해졌다.
여기서 주목할 점은 그동안 ‘극우’라는 꼬리표를 달고 있던 마린 르펜의 국민연합(RN)의 대응 변화다. 이번 사태에서 RN은 반이민·반EU 같은 전통적 레퍼토리를 전면에 내세우지 않았다. 대신 최저임금 인상, 에너지 비용 안정화, 지방 소도시 일자리 보호 같은 생활 어젠다를 강조했다. 시위대의 분노를 ‘극단주의’로 치부하지 않고 “엘리트가 아닌 국민 편”이라는 이미지를 부각하며 지지층을 확장했다. 결과적으로 RN은 기득권적 중도좌파가 놓쳐 버린 민생의 언어를 흡수했고 ‘극우’라는 이미지에서 벗어나 민생주의 우파로 변모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그렇다면 왜 마크롱식 중도좌파는 실패했을까. 표면적으로는 개혁을 외쳤지만 실제로는 엘리트 중심의 정책과 과도한 PC 담론, 위선적 도덕주의가 누적된 피로를 키웠다. 세금과 규제는 늘어났지만 청년과 서민이 체감하는 삶의 무게는 가벼워지지 않았다. ‘친기업적 개혁’과 ‘사회적 정의’라는 이중 메시지는 현실에서 충돌했고, 그 사이에서 대중은 “우리 삶을 건드리지 말라”는 절규로 응답했다. 과도한 자유주의의 방종과 위선이 결합하면서 중도좌파는 신뢰를 잃었고 광장은 이를 가차 없이 심판했다.
프랑스의 경험은 한국 정치에도 거울이 된다. 한국 국회 역시 협치보다는 대립으로, 합의보다는 투쟁으로 기억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국민은 결국 생활의 문제를 묻는다. 집값, 일자리, 에너지 요금, 지역경제 같은 일상적 민생이 해결되지 않는다면 광장은 언제든 제도 정치를 대체할 수 있다. 그리고 그 순간, 정치의 주도권은 엘리트가 아니라 광장과 연대한 세력이 쥐게 된다.
따라서 프랑스 사태가 국민의힘에게 주는 시사점은 명확하다. 추상적 이념 대립이 아니라 민생의 언어를 전면에 세우는 리더십, 국회 안에 갇히지 않고 광장의 불만을 연대의 힘으로 제도화하는 정치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프랑스가 보여준 교훈은 간단하다. 민생을 말하지 못하면 광장이 대신 말한다. 한국 정치가 이 경고를 외면한다면 비슷한 파국은 결코 남의 일이 아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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