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절은 가족 간 유대를 확인하는 기간이다. 동물은 다 키우면 부모 자식이 떨어져 남남이 되는데 인간은 그렇지 않다. 끊임없이 서로 궁금해하고 서로를 돌보고 심지어 그 관계가 4대까지 이어지기도 한다. 강한 유대감의 첫 번째 이유는 인간 아기의 양육 기간이 동물에 비해 아주 길다는 점이다.
동물 아기는 태어나자마자 서고 걷는데 인간 아기는 그렇지 못하다. 이것만 보아도 인간 아기가 얼마나 미숙한 상태로 태어나는지 알 수 있다. 인간 아기가 그렇게 출생하는 건 뇌가 크기 때문이다. 상대적으로 거대한 뇌를 가진 인간이 엄마의 태내에서 뇌를 다 키우면 출산이 불가능하다. 그래서 진화는 뱃속에서 적당히 키우고 빨리 내보내서 몸 밖에서 양육하는 방식의 손을 들어주었다.
두 번째 이유는 동물의 왕국에서 인간 육체가 지닌 취약함이다. 인간은 두꺼운 털도 없고 날카로운 이빨도 없으며 자신을 방어할 손발톱 또한 가지지 못했다. 닭만큼도 빨리 뛰지 못하고 독수리만큼 멀리 보지 못하며 개만큼 잘 듣지 못한다. 뿐인가, 개구리처럼 점프도 못하고 곰처럼 예민한 후각도 없으며 철새처럼 내장된 GPS도 갖추지 못했다.
이러한 인간이 자연 속으로 들어가면 그야말로 속수무책이다. 이러한 약점을 보완하기 위해 인간은 기막힌 생각을 했다. 연약한 개체들은 뭉치기 마련이다. 자신의 취약함을 감지한 인간은 어떤 생물종보다 단단한 결속을 고안해 냈다. 자연 속 생물들은 소위 고등동물이 될수록 결속이 약해지는 게 보통이다. 하등한 개체들은 똘똘 뭉쳐 살지만 말이다. 그런데 아주 특이하게도 인간만이 이러한 경향을 역행했다.
진화의 역사 속에서 가장 고등한 동물이 된 인간은 그 독립성에도 불구하고 어찌 뙜든 서로 끈끈하게 지내려고 안간힘을 쓴다. 과거 농촌 사회는 말할 것도 없고 파편화된 도시 속에서도 인간은 틈만 나면 친구를 만든다. 지인 중에는 주말의 식당에서 옆 테이블 사람과 합석해서 같이 집으로 향하는 사람도 있다. 모임도 많이 만들고 행사도 틈틈이 하고 아침 산책길에서도 인사하고 말을 트는 게 인간이다.
‘뭉쳐야 산다’는 동서고금, 아니 자연생태계의 진리를 가장 적극적으로 실천하는 게 바로 인간이다. 그러니 인간 가족이 끈끈한 이유는 다시 밝힐 필요도 없다. 그렇다. 이웃집 사람하고도 친절하게 지내는 게 인간 본성인데 부모와 자식, 가족과 친척 사이는 더 말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다 자랐으니 이제 부모 곁을 떠나 독립한다? 그거야 자유지만 부모와 친절하게 지내면 이웃집 사람보다 몇 배 좋다는 결론이 나온다. 외롭지도 않다. 조부모, 증조부모, 삼촌과 이모와 고모도 마찬가지다. 혈연으로 맺어진 관계를 굳이 소홀히 할 필요가 있겠는가.
남남 사이는 틀어지면 안 보면 그만이지만 혈연과 가족은 불화했다가도 다시 만나고 경우에 따라서는 더욱 살갑고 다정하다. 한동안 연락도 없이 지내도 어느 날 전화하면 반갑게 받아주는 게 가족이고 친척이다. 누구든 어떻게든 뭉쳐 살아야 하는 연약한 인간이 도대체 왜 가족을 저버릴 수 있겠는가. 이번 추석에도 이런저런 사연은 뒤로 하고 따스함과 포옹으로 서로를 확인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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