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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체성 무척추동물에서 사회성 곤충, 포유류를 거쳐 인간에 이르는 진화의 과정은 자연선택에 성공한 종들의 파노라마이다. 사회적 진화의 차원에서 보면 4개 집단이 상위를 차지하는데, 군체성 무척추동물, 사회성 곤충, 인류 이외의 포유류들, 그리고 안류이다. 이들은 각기 나름대로 특유한 사회생활의 기본적 성질을 지닌다. 사회생물학의 창시자 에드워드 윌슨은 이러한 과정에 숨겨진 역설을 발견했다.
소위 하등동물에서 고등동물로 오면서 신체 구조의 복잡성과 특수화가 이루어졌는데, 결속, 이타성 그리고 협동성 등 사회적 생존을 위한 주요 성향은 이 순서를 따라 감퇴했다는 점이다. 결국 사회적 진화는 개체의 체계가 더욱 정교해짐에 따라 오히려 지연되었다. 더 똑똑해질수록, 더 복잡해질수록, 더 이기적이 되어 왔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몸의 유연성이다. 하등동물일수록 신체적으로 융합하기 쉽다. 점액아메바는 단세포로 살다가 생존환경이 나빠지면 다른 개체들과 다세포 구조를 만든다. 이 과정에서 핵융합이 일어나 포자 형성을 하기도 한다. 사회성 곤충인 개미나 벌은 하나의 거대한 유기체처럼 움직인다. 하지만 고등동물일수록 사회적 결속력은 약해진다. 독자적 생존이 어느 정도 가능하기 때문이다.
인간의 사회성은 어떨까? 최근 막을 내린 경주 APEC 정상회담을 보아도 인간이 얼마나 자신의 이익을 위해 상대와 잘 협상하는 존재인지 알 수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자신이 가장 경계하는 국가인 중국의 수장 시진핑 주석에게 최대한의 예우를 했고 귓속말을 하는 친밀감도 보여줬다. 21개 국가 정상들의 일거수 일투족, 표정 하나하나는 자국의 이익에서 자유롭지 못했을 것이다. 그렇다. 인간은 고등동물이지만 척추동물의 이기적 한계에 갇혀 있지 않다. 인간은 이기성을 줄이지 않고도 사회적 진화의 정점에 올라왔다. 그 비결은? 지능이었다.
높은 지능 덕분에 인간은 과거를 기억하고 미래를 설계한다. 세대를 넘는 계약까지도 가능하다. “네 할아버지가 내 할아버지를 도왔으니, 나도 너를 돕겠다”는 식이다. 게다가 인간은 혈연관계에 치중한다. 촌수를 따지고 족보를 만들고 혈통을 관리한다. 이렇게 혈연 선택의 원리를 사회 시스템에 통합한다. 하지만 여기에도 부작용은 있다. ‘이기적 버금집단’의 형성이다.
부부, 형제자매, 친구 모임, 심지어 이해관계로 뭉친 집단들이 각자의 이익을 추구하기 시작하면 사회 전체의 통합성은 휘청거리기 시작한다. 회사 내 파벌, 정치권의 계파, 지역 간 갈등. 이 모든 것이 고도로 발달한 인간 사회의 불가피한 이면이다. 이들은 나름대로의 목표를 추구하면서 사회가 하나의 단위로 운영되는데 지독한 제약을 가한다. 전체라는 완전성을 희생하면서 ‘우리 편’의 생존을 우선시한다. 곤충 사회의 완벽한 조화를 부러워하면서도 인간은 그렇게 살지 않는다.
역설적이지만 이 이기심은 인간이 10억 년 사회진화의 하향 곡선을 역전시킨 원동력이다. 우리는 아주 영악한 이기성을 가졌다. 협력이 이익이 된다는 것을 계산할 줄 알고 오늘의 희생이 내일의 보상임을 믿는 능력이 있다. 윌슨의 사회생물학은 우리에게 재미있는 거울을 보여준다. 인간은 자신의 유전자를 다음 세대에 전하려는 매우 영리한 동물로서, 이기심으로 무장한 채 서로 도우며 앞으로 나아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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