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증시가 사상 초유의 활황을 이어가고 있다. 5월 하루 평균 거래대금이 60조 원을 넘어서는 투자 열풍 속에서 미래에셋증권은 국내 증권사 최초로 ‘분기 순이익 1조 원’ 시대를 열었다. 시가총액은 일본 대표 투자은행 노무라홀딩스까지 뛰어넘었다.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한국 증권사가 아시아 금융시장 중심 플레이어로 부상할 것이라 예상한 이는 많지 않았다.
그러나 이런 흐름을 누구보다 먼저 읽고 움직인 인물이 있었다. 바로 미래에셋그룹 창업자 박현주다. 그는 IMF 외환위기 직후인 1998년 ‘박현주 1호 펀드’를 내놓으며 한국 투자문화를 바꿨고 국내 투자자들에게 장기투자와 글로벌 자산배분이라는 개념을 대중화시켰다.
흥미로운 점은 글로벌 투자 시대를 연 선구적 금융인의 삶의 터전 역시 ‘세계’를 품은 이름이라는 점이다. 박 회장이 20년 넘게 거주 중인 곳은 서울 서초구 방배동 고급빌라 ‘월드빌리지(World Village)’다.
바람개비론

1958년 전라남도 광산군 평동면에서 태어난 박현주 회장은 광주제일고등학교를 1977년 졸업한 뒤 1978년 고려대학교 교육학과에 진학했다. 이후 경영학을 복수전공하며 자연스럽게 자본시장에 눈을 돌렸다.
1980년대 초중반까지만 해도 증권업은 지금 같은 선망 업종이 아니었다. 당시 주식시장은 규모가 매우 작았고 투기성이 강한 ‘야바위 판’이나 ‘투전판’이라는 부정적 인식이 강했다. 증권사 직원은 사회적으로 엘리트 대접을 받지 못했다.
하지만 박 회장은 투자 금융의 시대가 올 것이라 직감했다. 1986년 동양증권 영업부 평사원으로 입사한 그는 뛰어난 영업 성과를 올리며 3개월 만에 대리로 승진했고, 1년여 만에 과장 자리에 오르는 등 일찌감치 두각을 나타냈다.
이후 동원증권 중앙지점장 시절에는 전국 증권사 지점 실적 경쟁에서 늘 최상위권을 기록했다. 당시 그가 직원들에게 강조했던 문장은 지금도 유명하다. “바람이 불지 않을 때 바람개비를 돌리려면 앞으로 달려나가는 길뿐이다.” 기다리기보다 먼저 움직여야 한다는 뜻이다. 훗날 미래에셋의 공격적 글로벌 전략과도 그대로 연결된다.
IMF 위기 속 미래에셋 창업
박 회장은 1997년 미래에셋벤처캐피탈과 미래에셋투자자문을 설립하며 창업에 나섰다. 당시 나이 마흔이었다. 시기는 최악이었다. 곧 IMF 외환위기가 터지며 한국 경제 전체가 붕괴 직전까지 몰렸다.
하지만 그는 남들과 다르게 봤다. 모두가 시장을 떠날 때 오히려 투자 기회가 열린다고 판단했다. 그 결과 등장한 것이 ‘박현주 1호 펀드’다. 당시만 해도 주식형 펀드는 생소한 개념에 가까웠지만 결과는 폭발적이었다. 출시 수개월 만에 100%에 육박하는 수익률을 기록하며 국민적 화제를 모았다. 미래에셋은 이에 그치지 않고 대한민국에 ‘1인 1펀드’ 문화를 정착시킨 적립식 펀드 열풍을 주도하며 성장을 이어갔다.
박 회장의 투자 철학은 명확했다. “다수가 몰리는 곳에서는 큰 수익이 나오기 어렵다.” 그는 늘 ‘소수의 시각’을 강조했다. 남들이 외면하는 시장, 아직 주목받지 못한 산업에서 기회를 찾는 것이 그의 주요 전략이었다.
2000년대 초반 닷컴 버블 붕괴 당시 인터넷 기업 투자,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해외 자산배분 확대, 최근 글로벌 시장서 우주 산업과 AI·로봇 분야 투자까지 모두 같은 흐름이다.
특히 시장이 주목하는 부분은 미래에셋의 우주 산업 투자다. 현재 미래에셋증권은 스페이스X 투자로 1조 원대 평가이익 기대를 받고 있다. 국내에서는 여전히 우주 산업을 낯설게 바라보는 시선도 적지 않지만 박 회장은 일찌감치 글로벌 우주 시장의 성장성을 간파한 것이다.
또 하나 눈길을 끄는 것은 ETF(Exchange Traded Fund)시장 전략이다. 상장지수펀드라 불리는 ETF는 주식처럼 거래소에 상장되어 실시간으로 편리하게 사고팔 수 있는 펀드다. 특정 주가지수나 원자재 가격 움직임에 연동되도록 설계되어 소액으로도 여러 우량 기업에 분산 투자하는 효과를 누릴 수 있다.
미래에셋 글로벌 ETF 브랜드인 글로벌엑스(Global X)는 AI·로봇·반도체·우주산업 등 미래 테마형 ETF에 강점을 가진 플랫폼이다. 글로벌엑스는 2008년 미국 뉴욕에서 ‘평범한 ETF를 넘어서(Beyond Ordinary ETFs)’라는 기치를 내걸고 출범한 혁신 테마형 ETF 전문 운용사다.
박 회장은 전 세계 ETF 시장의 중심지인 미국을 공략하기 위해 2018년 2월, 약 5억 달러(약 5500억 원)를 전격 투자해 이 회사를 인수했다. 시장에서는 이를 두고 “박현주의 투자 철학이 가장 선명하게 드러나는 사례”라고 평가한다.
돈은 아름다운 꽃
박 회장의 투자 철학은 그의 독서 이력과도 연결된다. 그는 가장 큰 영향을 받은 책으로 앨빈 토플러의 <제3의 물결>을 꼽는다. 정보화 혁명과 산업 구조 변화를 다룬 이 책은 박 회장에게 미래 산업 흐름을 읽는 시각을 심어줬다고 한다.
또 다른 책은 데이비드 포트럭의 <클릭 앤 모르타르>(Clicks and Mortar)다. 미국 대형 증권사 찰스 슈왑의 성공 사례를 다뤘다. 인터넷 시대 금융산업이 어떻게 바뀌는지를 보여준다. 온라인(Click)과 오프라인 거점(Mortar) 융합을 통한 미래 금융 플랫폼 전략에 큰 영감을 준 것으로 알려졌다.
박 회장의 경영철학은 2007년 출간된 그의 저서 <돈은 아름다운 꽃이다>에 가장 잘 담겨 있다. 그는 꽃이 지며 씨앗을 맺고 수많은 꽃을 다시 피워내듯 돈 역시 우리 사회의 건강한 미래를 위한 ‘씨앗’이 되어 올바르게 순환할 때 진정한 가치를 지닌다고 강조한다.
실제로 그는 사회공헌에 적극적이다. 2000년 3월 75억 원 규모의 사재를 출연해 ‘미래에셋박현주재단’을 설립했다. 2010년부터는 미래에셋자산운용 등에서 받는 배당금 전액을 기부하고 있다. 2026년 기준 16년간 누적 기부액은 약 347억 원에 달한다.
네모반듯한 요새형 고급 빌라
박 회장이 거주 중인 월드빌리지는 서초구 방배동을 대표하는 고급 빌라 가운데 하나다. 1999년 준공된 이 단지는 지하 1층∼지상 6층, 2개 동, 총 36가구 규모로 조성됐다.
무엇보다 눈길을 끄는 건 단지 분위기다. 방배동 일대 고급빌라 상당수가 경사지에 위치한 반면 월드빌리지는 넓고 반듯한 평지 위에 자리 잡고 있다. 차량은 모두 지하주차장을 이용하고 지상은 나무와 산책로 중심의 정원형 공간으로 꾸며졌다.
외부 도로보다 단지를 한 단계 높게 조성해 바깥 시선을 효과적으로 차단한 점도 특징이다. 내부 정원과 저층 세대가 쉽게 노출되지 않아 단독주택 같은 안정감과 프라이버시를 느끼게 한다. 입지도 우수하다. 서리풀공원과 인접해 쾌적성이 뛰어나고 서래초·방배중·서울고 등 명문 학군과도 가깝다.
박 회장이 2001년 매입한 세대는 전용면적 243.46㎡(약 74평) 규모다. 분양 당시 시세는 10억 원 안팎이었으나 2024년 4월 동일 면적이 30억 원에 실거래됐다. 현재 매물 호가는 35억 원에서 40억 원 안팎을 오가고 있다.
부동산 업계는 이곳에 박 회장의 주거 철학이 반영돼 있다고 본다. 그는 평소 ‘집은 투자 대상이 아니라 오랫동안 살아가는 공간’이라는 소신을 밝혀온 만큼 안정감과 프라이버시라는 본질적 주거 가치를 우선시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세계 자본시장을 향해 거침없이 시야를 넓혀온 금융투자 리더 박현주. 그가 20여 년 전 둥지를 튼 집의 이름은 운명처럼 ‘월드빌리지’였다. 그 이름은 미래에셋그룹을 글로벌 기업으로 키워낸 그의 대담한 투자 비전을 떠올리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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