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차 세계대전 중 창설된 미국의 정보기관 전략정보국(OSS, CIA 전신)의 활약상은 전설로 남아 많이 알려졌다. 그러나 OSS를 구성했던 1만3000명 중 4천여 명의 여성 요원들이 이룬 공헌은 거의 알려지지 않았다. 그녀들은 정보를 해독하고 선전물을 제작하고 독일 포로를 심문하고 비밀을 훔치고 분석하는 등 다양한 첩보활동에 참여했다. 여성 요원들은 제2차 세계 대전의 모든 전장에서 위험에 처한 채 이 모든 일을 해냈다.
OSS 여성 요원 바버라 라우워스
제2차 세계대전 중 OSS가 이탈리아 시에나와 그 주변 지역에 주둔한 독일군의 사기를 떨어뜨리기 위해 전개한 ‘자우어크라우트 공작(Operation Sauerkraut)’도 여성 요원인 바버라 라우워스(Barbara Lauwers)가 직접 지휘하여 큰 성공을 거뒀다.
바버라 라우워스는 1914년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브르노에서 태어났다. 그녀는 총명한 젊은 여성이었고 브르노에 있는 마사리크 대학교에서 법학을 공부했다. 법학 박사 학위를 받은 후 변호사로 활동했다. 그녀(결혼 전 이름 보제나 하우세로바)는 결혼하여 1941년 남편과 함께 미국으로 이주했다. 진주만 공습 이후 그녀의 남편은 미군에 입대했고 1943년 6월1일 그녀는 미국 시민권을 받았다.
그녀는 바로 미 육군에 입대하여 플로리다에서 신병 교육을 받았다. 이후 여성 육군 군단(WAC)에 배속되어 특수 교육을 받고 OSS에 배치되었다. 알제리에서 첫 해외 근무를 마치고 1944년 6월5일 연합군이 로마에 입성하자 라우워스는 이탈리아 OSS 부대로 전속되었다. 그녀의 코드명은 주카(Zuzka)였다. 그곳에서 그녀는 자우어크라우트 공작 프로그램 개발에 직접 참여하고 실행하였다.
자우어크라우트 공작
OSS는 제2차 세계대전 중 독일군의 사기를 저하하기 위해 이른바 흑색선전 또는 전복적 선전을 활용했다. MO(Morale Operations)라고 명명한, 독일군의 사기(士氣)를 떨어뜨리는 일종의 심리작전을 전개하였다. OSS 내에 MO 전담 부서를 운영했다. 당시 기밀로 분류된 ‘MO 현장 매뉴얼(1943년)’에 따르면, MO란 물리적인 수단이 아닌 모든 전복 조치로 정의되어 있다. MO의 목적은 적국이나 점령지 내에서 불화, 혼란, 무질서를 조장하고 확산시키는 것이다. 점령지 지하 저항조직을 격려하여 적국에 대한 전복 활동을 조장하며 적국 국민의 사기를 저하하는 것이다. 또한 적국 협력자들의 신뢰를 떨어뜨리고 점령지역 주민들이 적국의 지배에 맞서 저항과 반란을 일으키도록 장려하고 지원하며 사기와 저항 의지를 고취하는 것이다.
MO의 수단은 개인 및 지하 집단과의 접촉 및 조작, 뇌물 및 협박, 소문 위조(독설적인 편지 작성, 오해의 소지가 있는 정보 문서 위조, 적의 문서 및 정기 간행물 위조, 적에게 허위 명령, 규정 및 선언문 인쇄 포함), 적국 및 적이 점령한 국가 내에서 파괴적인 기만을 위해 사용하는 공식 또는 준공식 유엔 기관과 식별할 수 없는 허위 전단지, 팸플릿 및 그래픽 등이다.
OSS가 이탈리아 전선에서 ‘자우어크라우트 공작’이라 명명된 것도 MO의 일환이었다. 이 공작은 1944년 7월20일 일단의 독일군 장교들이 총통 히틀러를 암살하려 시도하면서 시작되었다. 쿠데타 실패에 첫 보도가 나온 지 불과 몇 시간 후 이탈리아 전선에 배치된 OSS의 MO팀은 독일에서 들려오는 소식을 이용할 방법을 궁리하느라 바빴다. 히틀러 암살 시도를 적절하게 선전하고 신속히 유포한다면 독일군의 사기를 떨어뜨릴 수 있다고 판단했다. 몇 시간 후 자우어크라우트 공작을 개시했다. 공작의 목표는 독일군 지도자들 사이에 고조되는 불안에 대한 소문, 가짜 명령, 그리고 전단을 유포하여 독일군의 사기를 저하하는 것이었다.
1943년 7월20일 라우워스는 이탈리아 나폴리 남쪽 아베르사 포로수용소로 가는 지프차를 타고 있었다. 그녀의 임무는 독일 포로들을 심문하고 전선에 침투하여 선전물을 배포할 병사를 선정하는 것이었다. 그녀가 포로 심문에 투입된 이유는 독일어, 영어, 체코어, 슬로바키아어 및 프랑스어에 능통했기 때문이다.
라우워스는 “포로들을 심문할 때 최전선을 넘어 우리의 선전물을 배포할 의향이 있는 반(反)히틀러 성향의 병사를 찾고 있다”라고 말했다. 그녀는 자신이 선정한 포로들에게 새로운 정체성을 부여하고 그들과 함께 그들의 이야기를 기억하도록 노력했다. 일종의 전향 공작이었다. 이틀 만에 16명의 독일군 포로를 전향시켰다. 전향한 독일군 포로들에게 적절한 휘장이 달린 독일군 제복을 입히고 위조 신분증, 독일 소총과 탄약 40발, 야전 장비, 시계, 액면가 2300~7800리라 생존용품 그리고 MO의 선전자료 3000장을 지급했다. 이 계획이 처음 고안된 지 나흘만인 7월25일, 전향한 독일군을 세 팀으로 나누어 적진 후방으로 침투하였다. 그들에게 선전물을 나무에 못박거나 건물 안에 두거나 거리에 뿌리라고 지시하였다.
자우어크라우트 공작은 큰 성공을 거두었다. 전향해 공작에 투입된 독일군 포로들은 심리 선전 활동을 펼치는 것 외에도, 주둔 독일군의 위치를 포함한 매우 중요한 정보를 가지고 돌아왔다. 이 공작은 매우 성공적이어서 제2차 세계대전 동안 이탈리아 외 프랑스 전선에까지 확대되었다.
외로운 전쟁 여성 연맹
라우워스는 자우어크라우트 공작팀에서 유일한 여성 요원이었다. 그녀는 ‘외로운 전쟁 여성 연맹(독일어 VEK)’ 캠페인을 창안하였다. 이 캠페인은 휴가나 외출 중인 독일군이라면 누구나 옷깃에 하트를 달면 여자 친구를 사귈 수 있다는 믿음을 갖게 하여 독일군 장병들의 사기를 저하하려는 의도로 개발되었다. 하트는 독일군에 배포된 전단에 등장했던 연맹의 상징이었다. 독일군이 하트를 달고 있으면 연맹 소속 여성들이 다가와 친구가 되어 주겠다고 했다. 이 캠페인 내용 중에는 독일군들의 아내나 여자 친구, 누나가 불륜을 저지르고 있다는 암시를 주는 내용도 있는데, 이는 독일군의 사기를 심하게 저하하였다.
1944년 여름, 사랑하는 최전선 군인 여러분! 언제 다시 휴가를 갈 수 있나요? 언제쯤 힘든 군인의 의무를 잠시 잊고 며칠 동안 기쁨과 행복, 그리고 사랑을 만끽할 수 있을까요? 저희 연맹 가족은 여러분의 영웅적인 투쟁을 잘 알고 있습니다. 아무리 용감한 사람이라도 때로는 지치고 부드러운 베개와 따스함, 그리고 건강한 즐거움이 필요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우리는 당신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외국 도시에서 휴가를 보내야 하는 당신에게, 전쟁으로 인해 집을 잃은 당신에게, 아내도, 약혼녀도, 연인도 없이 세상에 홀로 남겨진 당신에게. 우리는 당신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이 편지에서 우리의 상징을 오려내세요. 모든 커피숍, 기차역 근처 모든 술집에서 유리잔에 잘 보이도록 붙여주세요. 우리 VEK 회원이 곧 연락드리겠습니다. 앞마당에서 당신이 가졌던 꿈과 외로운 밤의 갈망이 이루어질 것입니다... 우리는 당신의 돈이 아니라 당신을 원합니다. 그러므로 (누구에게든) 우리 회원 카드를 항상 보여주세요. 우리 여성들은 조국과 조국 수호자들에 대한 우리의 의무를 잘 알고 있기에, 어디에나 회원이 있습니다.
물론 우리도 이기적입니다. 오랫동안 우리 남자들과 떨어져 지냈으니까요. 주변에 외국인들이 너무 많은데, 다시 한번 진정한 독일 청년을 품에 안고 싶습니다. 이제 망설임은 없습니다. 당신의 아내, 누나, 애인도 우리 중 하나입니다. 우리는 당신과 독일의 미래를 생각합니다. 독일의 미래는 멈춰 있고, 녹슬고 있습니다. 외로운 전쟁 여성 연맹.
이 공작은 매우 성공적이어서 미국의 일간지 워싱턴 포스트는 1944년 10월10일 ‘이탈리아 전선에서 휴가를 온 독일 병사들은 귀국길에 옷깃에 얽힌 하트를 꽂기만 하면 여자 친구를 찾을 수 있다’라는 제목의 기사를 실을 정도였다.
라우워스의 또 하나의 성공적인 임무는 독일군에 징집된 수백 명의 체코 및 슬로바키아 병사들이 전선을 넘어 연합군 영토로 진입하도록 설득하는 선전물을 제작하는 것이었다. 이 메시지는 전단과 BBC 방송을 통해 이탈리아 북부에 배포되었다. 그 결과 600명의 체코슬로바키아 군인이 연합군 쪽으로 전선을 넘었는데 이들 중 다수는 라우워스의 선전 전단을 가지고 있었다. 이 공작의 성공으로 라우워스는 ‘청동성 훈장’을 받았다.
제2차 세계 대전이 끝난 후 라우워스는 미국으로 돌아왔다. 그녀는 미국의 소리(VOA) 방송과 국립과학원에서 일하다 의회도서관에 연구 분석가로 입사했는데 1968년 은퇴하기 전까지 20년간 일했다. 그녀는 은퇴 후 오스트리아를 방문하여 9년 동안 머물렀고 국제 난민 기구의 비엔나 사무소에서 일하다 1977년에 워싱턴으로 돌아왔다. 그녀는 2009년 8월16일 워싱턴 D.C.에 있는 재향군인 병원에서 사망했다. 그녀의 나이 95세였다. 그녀가 참여하고 창안한 자우어크라우트 공작은 스파이 세계에서 적군 포로를 이용한 매우 대담한 심리전이었다고 평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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