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98년 영국의 도시계획가 에버지저 하워드는 ‘미래의 전원도시(Garden City of Tomorrow)’라는 책에서 이상 도시로서의 전원도시(Garden City) 모형을 제시했다. 전원도시는 문자 그대로 도시와 전원의 공간적 기능을 적절히 조화시킨 모습으로 더 나은 생활을 영위할 수 있는 공간적 틀을 뜻한다.
1900년대 초 일본을 통해 우리나라 도시계획에까지 지대한 영향을 미친 이 전원도시론의 등장 배경에는 1차 산업 혁명이 자리한다. 19세기 초 증기 기관의 발달로 시작된 영국의 산업혁명은 도시 생산성의 혁신을 가져왔다.
그러나 일자리가 늘어나며 도시로 엄청난 인구가 유입되었고, 과밀화된 도시 주거 환경은 열악해졌다. 공장에서 배출된 매연과 오수가 환경을 오염시키고 이는 사회적 문제로 번져 나갔다.
이러한 배경에서 인간적인 삶을 위한 공간에 대한 논의가 시작되었다. 삶의 방식에 대한 문제를 도시의 구성으로 해결하고자 다양한 이상도시론이 제기되었다. 이 중 하워드는 인구 과밀화를 막고 자연과 접할 수 있는 도시를 구성하기 위해 구체적인 도시의 모습을 제안했다. 400ha에 달하는 시가지 규모와 약 3만2000명의 인구 등 수치화된 도시의 틀과 운영방식이 도시계획안으로 등장했다. 증기 기관으로 인한 일상의 변화가 삶의 터전인 도시의 새로운 모델을 가져왔다.
그뿐 아니라 철도의 발달은 공간 개념의 변화를 초래했다. 기차 덕분에 동일한 시간에 과거의 몇 배에 달하는 공간상의 거리를 이동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교통 경제상으로 보면 이는 공간의 축소를 의미한다. 이틀을 꼬박 걸어야 도착할 수 있었던 서울-인천 간 거리도 철도의 등장과 함께 반나절도 되지 않는 거리가 되었다. 항구·정박 설비·도시도 전체 국민처럼 서로서로 3분의 2 정도씩 가까워질 뿐만 아니라, 모두 그만큼씩 국가의 중심부로 가까워졌다. 1차 산업혁명으로 불리는 시기에 철도 산업의 확장은 계속해서 공간상의 거리를 좁혀 나갔다.
2차 산업혁명은 1차 산업혁명에서의 주동력원인 석탄이 석유와 전기로 바뀌는 시점에 놓인다. 기차가 도시 간 이동의 공간적 축소를 낳은 것처럼 자동차는 이보다 더 개인적인 공간 범위의 축소를 가져왔다. 정해진 시간과 기차역·철로 등 장소적 제한이 있는 기차에 비해 자동차는 개인의 소유가 늘며 시간적 자유를 갖게 해 주었다.
자동차 시스템의 출현은 속도의 개념 또한 편리의 개념으로 변환시켰다. 자동차 시스템은 자동차-운전자가 사회생활을 스스로 시간표화 하도록 함으로써 자기 생산적 시스템을 가진 개인을 출현시켰다. 공간적으로 확대되었으나 시간상으로는 압축된 방식으로 살도록 자동차 이용자를 제약하기도 했다.
1차 산업혁명 시대, 철도가 도시 공간을 살해했다는 이야기는 당시 공간감의 대변혁을 짐작케 한다. 우리도 모르는 사이 등장한 새로운 기술이 일상을 변화시키고 있을 때 우리가 살고 있는 도시 시공간의 변화를 즉각적으로 감지하기는 쉽지 않다. 물리적으로 존재하는 공간이 기술에 의해 점점 가까워지고 동시화되기도 하며 기다림의 시간은 정보의 처리 속도만큼이나 단축되어 우리 삶 속에 존재하지 않는 시간의 단위가 되어 가고 있다.
흥미로운 것은 실제 세계의 공간감이 몇 차례의 산업혁명과 함께 파괴되어 온 것 같지만 다른 공간들 또한 탄생했다는 사실이다. 도시와 도시를 잇는 철로와 도로는 경관으로서의 도시 공간을 재편하고 길 위의 공간에 대한 사유를 가능케 했다.
이후, 2012년 경제학자 제레미 리프킨은 컴퓨터라는 새로운 기술의 등장과 함께 3차 산업혁명을 최초로 정의했다. 그러나 그는 기술에 주목하기보다 사람들이 인터넷을 사용하는 방식과 변화한 커뮤니케이션 양상에 집중했다.
인터넷은 물리적 공간을 벗어난 가상공간을 출현시켰다. 단순히 실제 공간과 대비되는 가상이 아니라 사람과 사람이 커뮤니케이션할 수 있는 사회망으로서의 가상공간은 그 중요성이 매우 크다.
개인 아이디로 탐험하는 인터넷 세계에서 사람들은 물리적 공간을 넘어 어디든 갈 수 있는 공간적 자유를 얻었다. 각 개인이 철로나 도로망이 아닌 인터넷망을 통해 원하는 어디로든 이동할 수 있는 시스템이 된 것이다.
나아가 인터넷의 등장은 보이지 않는 가상 세계를 만들어 오히려 공간의 확장을 가져왔다. 공간이 철도에 의해 살해되었다는 다소 자극적인 관점은 4차 산업혁명의 시대에 오히려 다채롭게 부활하고 진화하고 있는 공간의 개념으로 대체할 수 있다.
가상과 현실이 융합된 메타버스적 도시는 눈에 보이는 세상 너머로 우리를 초대하며 초월세계(Metaverse)를 체험하게 하고 세계와의 만남을 가능케 한다. 현실과 가상을 넘나드는 도시 공간은 도시의 경험을 다각화한다. 물리적 공간과 결합한 가상 세계에서의 전자 산책, 증강현실과 함께하는 물리적 공간에서의 경험은 도시의 새로운 산책자들을 만들어낸다. 인터넷이라는 기술은 우리가 가꾸며 살아가야 할 또 다른 공간을 부여했다는 점에서 새로운 도시 영역을 만들어냈다고 볼 수 있다.
미래 세계를 그린 소설과 영화는 새로운 기술의 원리를 소개하기보다 그 기술 안에서 살아가고 있는 인물들에게 집중한다. 변화된 환경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은 기술의 수용과 동시에 또다른 가치를 고려하게 된다.
확장되고 유동하는 도시 공간 안에서 일상의 변화는 관찰할 수 있는 하나의 형상보다 계속해서 변화하는 흐름으로 이해되어야 한다. 4차 산업혁명이 가져온 길 위의 삶은 우리의 길, 그리고 삶을 새롭게 직조하는 형태로 지금 이 순간에도 도시 공간을 끊임없이 변화시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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