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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재수의 新삼국사 산책
대릉원 90호분, 99호분 무덤주인
90호분은 미사흔와 보미의 쌍무덤, 99호분은 복호의 홑무덤
정재수 필진페이지 + 입력 2022-08-11 18:10:52
 
▲ 정재수 역사 작가
 경주 대릉원의 황남대총(98호분)은 눌지왕(남분)과 아로왕후(북분)의 쌍무덤이다. 그런데 눌지왕 능원 주변의 무덤 배치를 보면 눌지왕의 남분을 기준으로 동북쪽에 쌍무덤인 90호분이, 동남쪽에 홑무덤인 99호분이 각각 100여m 간격을 두고 같은 선상에 위치한다. 두 무덤은 황남대총 남분의 좌청룡과 우백호 역할을 한다. 이는 두 무덤의 주인공이 눌지왕과 특수관계에 있는 인물임을 보여준다. 다만 90호분과 99호분은 발굴 조사된 적은 없다.
 
90호분은 미사흔(미해)와 보미의 쌍무덤
 
우백호(동북쪽)에 해당하는 90호분은 중대형급의 쌍무덤이다. 두 개의 봉분을 합친 남북길이는 80.1m이다. 남분은 동서길이 57.25m, 높이 13.8m 이고, 북분은 동서길이 59.5m, 높이 16.0m이다. 북분이 남분보다 봉분 크기가 다소 커서 북분은 남성, 남분은 여성으로 추정된다.
 
90호분의 북분은 눌지왕의 둘째 동생 미사흔(미해)의 무덤이다. ‘신라사초’ <눌지천왕기>이다. ‘17년(서기 433년) 수계 계유 4월, 미해(美海)공이 졸하니 나이 41세이다. 공은 전아하고 청수하며 사람을 아끼고 선비에게는 몸을 굽힐 줄 알았다. 일찍이 실성의 명으로 야인(왜)에게 사신으로 가서 십수년이 지나서 비로소 돌아왔다. 그 왕녀 보미(宝美)가 공을 사모하여 딸 나해(羅海)를 낳고서 도망쳐오자, 제상(堤上)공의 양녀로 삼아 침궁에 속하게 했는바 공은 감히 스스로 차지하지 못하고 왕과 복호(卜好)에게 바치니 무릇 기쁨과 걱정을 함께했다. 공은 야인의 배와 노의 이로움을 깊이 알아 우리 함선을 보수해 대적케 했다. 야인이 허다히 투항해온 바 모두 공의 신하가 돼 쓸모 있게 하는데 많은 공을 세웠다. 이때에 이르러 병이 위독해지니 왕이 손을 잡고 눈물을 흘리며 하고 싶은 바를 묻자 공이 말하길 “신제는 죽어서 나라를 위하는 영령으로 해상을 보호하리니 형왕은 슬퍼하지 마소서” 했다. 왕이 마침내 서불감으로 추증하고 태공의 예로 장사지내니 나라 안팎의 사람들 모두가 애석해 마지않았다(十七年 水鷄 癸酉 四月 美海公卒年四十一 公典雅淸秀愛人下士 嘗以實聖之命使于野人十數年而始還 其王女宝美慕公生女羅海 而逃歸以爲堤上公養女使屬枕宮 公不敢自居獻于王及卜好 而 凡有喜憂同之 公深知野人舟楫之利 命繕我艦以敵之 野人多歸降皆屬公臣以爲用多有功績 至是病劇王執手下淚問其欲爲公曰 臣弟死爲國靈以保海上兄王勿悲 王乃以舒弗 邯贈之葬以太公禮 中外莫不哀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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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8호분(황남대총)과 90호분, 99호분의 배치도 [사진=필자 제공]
  
미사흔은 서기 433년 41세(393~433)로 사망한다. 특히 ‘신라사초’는 남분의 주인공도 밝히고 있다. <소지명왕기>이다. ‘7년(485년) 목우 을축 정월, 대원부인 보미(宝美)가 홍했다. 나이 82세이다. 미해릉에 장사지냈다(七年 木牛 乙丑 正月 大元夫人宝美薨 壽八十二 葬于美海陵).’ 여성무덤인 남분의 주인공은 미사흔이 왜에 볼모로 가있으면서 혼인한 왜 인덕왕의 딸 보미(宝美)이다. 보미는 485년 82세로 사망하여 미사흔(미해)릉에 묻혔다.
 
90호분은 미사흔과 보미의 쌍무덤이다. 훗날이라도 90호분을 발굴하면 북분에서는 초기단계 금관이, 남분에서는 후기단계 금관이 나올 가능성이 높다. 특히 보미 무덤인 남분에서는 왜 계통의 토기도 일부 출토될 것으로 보인다.
 
99호분은 복호(보해)의 홑무덤
 
좌청룡에 해당하는 99호분은 동서길이 52.5m, 남북길이 50.3m, 높이 12.6m로 중형급의 홑무덤이다. 동서길이가 남북길이보다 2m정도 큰 것은 시신을 안치한 목곽이 동서방향으로 배치되었기 때문이다.
 
99호분은 눌지왕의 첫째 동생인 복호(보해)의 무덤이다. <눌지천왕기>이다. ‘25년(서기 441년) 백사 신사 3월, 왕의 동생 복호(卜好)공이 홍하니 52세이다. 왕의 예로 장사지냈다. 공은 마음이 깊고 정이 도타우며 큰 뜻을 가졌다. 고구려에 있을 때 선정을 다해 쓰임이 있었고, 용모는 겸손하며 수려했다. 각지에 성을 쌓고 말갈을 대적하고 부여(백제)와 결호하는데 공을 세워 중흥을 이뤘다. 왕이 이를 알아주지 못함을 애통하게 여겨 보해(복호)사당을 세워 제사지냈다(二十五年 白蛇 辛巳 三月 王弟卜好公薨 年五十二 葬以王禮 公沈敦有大志 在麗地 悉其善政而來用 又容降麗 築城各地 連結末曷扶餘 大有功績 以致中興 王哀痛不己 立宝海廟而祀之).’
 
복호는 서기 441년 52세(393~441)로 사망했다. 특히 99호분을 복호릉으로 추정하는 이유는 북쪽 70m 거리에 인접한 천마총(155호분) 때문이다. 천마총은 마립간시대 가장 늦게 조성된 5세기 말경의 후기 무덤으로 천마도(天馬圖) 말다래(장니)와 후기단계 금관이 출토된 중형급(지름47m)의 홑무덤이다. ‘신라사초’는 천마총 무덤주인을 분명히 밝히고 있다. 복호의 아들(서자) 장이(章伊)이다.(※ 다음편 소개 예정)
 
99호분은 복호의 홑무덤인 복호릉이다. 마시흔릉인 90호분(북분)과 마찬가지로 초기단계 금관이 출토될 가능성이 높다.
 
 
▲ 눌지왕 형제 관계도. [사진=필자 제공]
  
3형제 무덤의 상징성
 
눌지, 복호, 미사흔 3형제는 보반(保反)여왕이 낳은 내물왕(선비계)의 아들들로 최고의 골품을 가진 적통이다. 이런 까닭에 3형제는 실성왕(흉노계)으로부터 집중적인 견제와 핍박을 받았다. 복호와 미사흔은 고구려와 왜에 볼모로 가며, 눌지는 변방으로 쫓겨나 죽음으로 내몰리기까지 했다. 하지만 이들 3형제를 철저히 보상받았다. 눌지가 쿠데타를 성공시켜 왕통을 이었고, 복호와 미사흔은 형 눌지왕의 치세를 든든히 지원하며 떠받쳤다. 이들 3형제로 인해 신라 김씨왕조는 내물왕 계열로 확고히 자리 잡았다. 3형제의 무덤은 바로 내물왕 계열의 상징물이다.
 
대릉원 90호분(남분)과 99호분은 눌지왕의 동생 미사흔과 복호의 무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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